에너지 문제는 우리 경제의 사활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 한국의 에너지 소비는 200조 원 규모로 2011년 GDP 1081조 원의 약 15%이다. 석유, 석탄, 가스 등 에너지자원을 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금액이 140조 원으로 대외의존도가 97%에 이른다.
석유류에 비해 지나치게 싼 전기 가격
우리나라의 에너지 시장에는 매우 부조리한 구조가 고착되어 있다. 석유류에 비해서 전기 가격이 지나치게 싸서 전기가 낭비되고 있다. 2000년 이후 2011년까지 11년간 우리나라의 전기 사용량은 239TWh(18조 원)에서 455TWh(41조 원)로 증가했다. 반면 에너지용 석유류(수송용 연료와 산업 소재용은 제외)의 소비는 3000만 톤에서 1500만 톤으로 절반이 줄어들었다. 자유시장경제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경유 같은 석유류 가격이 지난 11년간 2.8배나 상승하는 동안 전기 가격은 1.2배 인상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같은 열량을 기준으로, 2000년에는 전기 가격이 경유 가격의 1.4배 수준이었으나, 11년이 지난 2011년에는 전기 가격이 경유의 0.6배로 역전되었다.
전기 가격이 지나치게 싸서 생기는 대표적인 낭비현상은 고급에너지인 전기를 난방용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가축을 키우는 축사와 농업용 비닐하우스의 난방에 전열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상점 중에는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이 나가도록 문을 열어놓는 방법으로 고객을 유혹하기도 한다. 이 모두 전기 가격이 지나치게 싸서 생기는 시장왜곡 현상이다. "전기로 난방을 하는 것은 생수로 빨래를 하는 것과 같다"는 말까지 나돈다.
냄새나고 위험한 경유나 휘발유에 비해 플러그만 꽂으면 쓸 수 있는 편리하고 안전한 전기는 비싸야 마땅하다. 그래서 대다수의 선진국에서 전기 가격은 경유 가격에 비해서 상당히 비싸다. 아래 표에서 보듯이 미국의 전기 가격은 경유 가격의 1.2배이며, 일본은 1.9배, 독일은 1.7배, 이탈리아는 2배이다. 그런데 한국의 전기가격은 유독 싸서 경유 가격의 0.6배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전기 가격이 싼 이유가 핵발전(우리나라에서는 '원자력발전소'라는 용어를 많이 쓰는데 나는 '핵발전소'라는 단어를 선호한다)의 비중이 높고 핵발전의 원가가 낮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2012년 현재 전기의 생산원가는 디젤이나 휘발유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경유 가격이 전기에 비해서 170%로 비싼 이유는 경유에 약 70%의 세금이 부과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정부 정책에 의해 가격이 왜곡된 것이다.
두 도로 모델을 응용한 문제 해결 방법
성능이 비슷한 두 개의 보완재인 전기와 경유 중에서 경유에는 정부가 세금을 많이 부과하여 매우 비싸고, 전기에는 세금이 적어 싸게 파는 바람에 전기로 소비가 몰려 부작용이 큰 상황에서, 이를 바로잡으려면 어찌해야 할까를 생각해보자. 해답은 경유의 세금을 내리거나 전기에 붙는 세금을 올려서 적정한 가격으로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이 문제를 앞에서 검토한 두 도로 모델을 응용하여 해결해보자.
값이 싼 전기로 수요가 몰리는 현상은 좁고 가까운 길로 차들이 몰리는 현상과 비슷하다. 이때 차량의 속도가 느려지듯이, 전기로 지나치게 몰려서 정전사태 같은 무질서의 낭비가 생긴다. 이를 '두 도로 모델'과 유사하게 도식화하여 표현한 것이 다음 그림이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두 도로 모델'에서 '한계세금'을 부과하듯이 전기에 세금을 부과하여 무질서를 줄이고 국민 전체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것이다.
ⓒ박창기 |
이 정책의 효과를 검토하기 위해서 우리나라의 장기 전력수급계획을 다음 표에 정리해보았다. 지식경제부가 수립한 '제5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보면, 전력가격은 연간 4.1% 정도로 인상하고, 2020년에는 2010년에 비해서 소비를 27% 증가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29조 원을 투자하여 핵발전소 10기를 새로 건설하여 핵발전의 비중을 31%에서 44%로 올리겠다는 것이다. 즉, 전기가격을 낮게 유지해서 소비를 늘리고 핵발전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50%의 탄소세를 부과했을 때 효과
내가 공평한 질서를 회복하는 방안으로 제안하는 방안은 전기에도 경유처럼 세금을 부과하여 에너지 가격 간의 불합리한 가격 차이를 줄임으로써 무질서의 비용을 줄이자는 것이다. 지금도 전기사용자들은 3.7%의 전력산업기반기금을 납부하는데 이를 전기탄소세로 전환하고 세율을 5% 정도에서 시작하여 점차 올려서 2020년에는 50%의 세율을 목표로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2020년에는 약 30조 원의 전기탄소세가 걷힐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정책을 아래의 표 '50% 탄소세 부과 시나리오'에 도식화했다. 전기 가격은 정부의 계획과 같이 2020년에는 킬로와트당 130원이 되는 것으로 보았다. 세금을 포함하면 195원으로 오른다. 전기가격이 10% 오르면 전기 소비가 약 4% 감소한다고 추정되므로, 전기 소비는 증가하지 않는 것으로 가정했다. 전기 소비가 늘어나지 않으니 핵발전소를 건설할 필요가 없어진다. 전기 소비금액이 40조 원에서 60조 원으로 증가하고, 여기에 50%의 세금을 부과하면 30조 원의 세금이 걷힌다. 전기소비자들이 납부한 30조 원의 세금은 정부가 복지정책 재원 등에 쓸 수 있다. 연간 30조 원의 세금은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이 발표한 복지재원의 대부분을 감당할 정도로 큰 금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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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면 핵발전소 추가 건설을 중단하고 노후화된 원전을 폐기하여, 핵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을 31%에서 26%로 낮출 수 있다. 이 계획이 지나치게 급격한 변화를 추진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일본과 독일 등이 핵발전소를 전부 폐기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과 비교해보면 오히려 온건한 정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세금 부과로 가격이 오르면 당초 계획 대비 21%인 16조 원의 전기가 절약될 것으로 추정했다. 우리나라 화력발전소 생산원가의 약 85%가 외국에서 수입하는 석탄, 가스 등 원재료비이므로 16조 원의 소비 감소는 13조 원 정도의 원료 도입 감소를 의미한다. 논의의 편의상 전기 소비 감소가 다른 연료의 소비 증가를 유발하지 않도록 관리했다고 가정하면, 에너지 원료 수입대금의 감소는 외환보유고 증가와 국내투자 그리고 소비로 연결되어, 경제성장을 유발하여 고용을 창출하게 된다. 단순하게 13조 원의 국민소득 증가 효과를 추정할 경우, 이는 2020년 예상 GDP 1600조 원 기준으로 약 0.8%에 상당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부가가치의 60% 정도가 인건비로 지출되므로 8조 원의 인건비가 증가하며, 이는 연봉 4000만 원의 일자리가 20만 개 창출되는 것에 비견된다. 우리나라의 실업자가 100만 명 수준임을 감안할 때 이는 매우 큰 숫자다.
이 계산은 '핵발전소 건설에 투자하면 GDP가 증가한다는 것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새로운 핵발전소 건설에 쓰려고 했던 20조 원의 자금을 에너지 절약 사업과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투자하면 오히려 일자리가 더 많이 생긴다. 미국의 경우 10억 달러(약 1조 1000억 원)를 투자해서 화력발전소를 지을 때는 870개의 일자리가 생기고, 태양에너지 발전소는 1900개, 풍력발전소는 3300개, 대형건물의 에너지설비 개선에는 7000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한다(빌 클린턴, 『빌 클린턴의 다시 일터로』, 이순영 옮김, 물푸레, 186면). 이를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핵발전소 건설에 20조 원을 투자할 경우 1만5800개 정도의 일자리가 생기지만, 풍력발전소를 세우는 데 투자하면 6만 개의 일자리가 생긴다는 것이다.
세금으로 인해 전기 가격이 올라가면 기업들의 수출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우려는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의 경쟁국가인 일본과 독일의 전기세는 우리보다 2~3배 더 비싸며 중국도 우리보다 1.5배 정도 비싸다는 것을 감안할 때 50% 정도의 가격 상승은 큰 부담이 아니다. 전기 가격이 가격이 50% 올라간다고 해도 우리나라의 전기 가격은 일본이나 독일보다 많이 싸다. 세금 부과로 전기 값이 올라가면 수출기업의 경쟁력뿐만 아니라 물가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므로 5~7년에 걸쳐서 점진적으로 세금을 올리는 것이 좋다. 선진국들처럼 우리도 에너지 다소비 산업시대에서 저(低)에너지 산업사회로 변화되어야 하므로 이는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이다.
물가상승 압박은 부동산 가격안정과 환율 평가절상 등으로 해결하는 것이 좋다. 물론 전기 가격 상승에 따른 서민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가정용 기본요금의 인상폭은 최소화하고 상대적으로 싼 산업용 전기의 인상폭을 더 높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걷은 세금의 일부는 저소득층의 에너지 복지를 강화하는 데 써야 한다. 또한 택시와 트럭 운전자들이 부담하는 지나치게 비싼 연료비를 줄이는 데에도 쓰는 것이 좋겠다.
2012년 9월 현재 대통령 선거 후보들은 공통적으로 경제 민주화와 복지 강화를 주장하는데 정작 세금을 더 걷겠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다. 박근혜 후보는 법인세를 오히려 줄이겠다고 하고, 민주통합당은 새로운 세금은 없이 대기업과 부유층의 증세만을 이야기한다. 다분히 정략적이고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엄청난 복지 혜택은 약속하면서 세금을 늘리지 않겠다는 것은 재정 적자를 크게 늘리겠다는 것이다. 오히려 안철수 후보가 말하는 전반적인 증세가 상식적으로 맞다. 차라리 증세를 인정하고 어떤 세금을 올릴 것인지를 논의해야 한다.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복지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부가가치세를 올려야 한다는 논의가 있으나, 부가가치세는 전형적인 간접세로 소득재분배 효과는 없고, 즉각적으로 물가를 상승시키므로 좋은 방안이 아니다. 소득세나 법인세를 높이는 것도 기업의 부담과 개인의 소득 감소 때문에 쉽지는 않다. '전기탄소세'는 전기 사용량에 비례하는 것이므로 전기를 많이 쓰는 측이 세금을 많이 내는 직접세이다. 불공평한 것을 공평하게 만드는 한계비용세금은 이론적으로도 '참 좋은 세금'이다. 세금에 대해 한 가지 덧붙이면, 지나치게 복잡한 세금 항목들은 줄여야 한다. 휘발유 값만 해도 교통세, 주행세, 교육세, 부가가치세 등 너무나 많고 복잡한 세금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복잡하고 불합리한 제도들은 행정편의주의에 물든 관료들의 조직이기주의와 관련 있다. 복잡할수록 관료들의 권한과 이권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휘발유와 상관없는 교육세 100원은 폐지하여 경유와 휘발유의 가격을 조금 낮추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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