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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버리고 도망간 이승만, 국민에게 사과는커녕…
[해방일기] 1947년 4월 18일
1947년 4월 18일 입법의원에서는 '과도약헌안(過渡約憲案)'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18일 하오 2시 반 이후의 제54차 본회는 남조선 과도약헌안과 임시헌법기초위원회에서 기초한 임시민주헌법안이 있으나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처리 문제에 관하여 토의하여 41대 10
김기협 역사학자
2012.04.18 08:10:00
'친일파의 나라', 진짜 책임은 美에 있다
[해방일기] 1947년 4월 16일
1947년 3월 17일 입법의원에 상정된 '부일 협력자 민족 반역자 전범 간상배에 대한 특별 법률 초안'이 해방 후 친일파의 처벌 대상을 가장 구체적으로 적시한 문서라고 서중석은 평했다(<배반당한 한국 민족주의>(성균관대학교출판부 펴냄), 122~124쪽). 구체
2012.04.16 08:13:00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미소공위 재개!
[해방일기] 1947년 4월 11일
마셜 미 국무장관이 소-영-중 3개 연합국 외무장관에게 4월 8일부로 보낸 편지 내용이 4월 11일 공개되었다. 3개국으로 보낸 편지지만, 실제 내용은 소련을 상대로 한 것이다. [모스크바 12일발 AP합동] 미 국무장관 마샬 씨는 4월 8일부 서한으로 조선 사태에 관한 성명을
2012.04.13 08:42:00
'엿장수' 군정 재판, 최대 수혜자는?
[해방일기] 1947년 4월 9일
미군 진주 직후, 군정청의 사법 기구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고 법령 체계가 갖춰지지 않았을 때는 주둔군 군사 법정이 점령 지역의 유일한 법정이었고 맥아더 사령관의 포고령이 유일한 법전이었다. 그런데 사법 기구와 법령 체계가 만들어진 뒤에도 군사 법정의 군정(軍政)
2012.04.09 08:16:00
'사악한 것'보다 '우둔한 것'이 문제다!
[해방일기] 1947년 4월 6일 :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김기협 : 민정장관에 취임한 지 두 달이 되었습니다. 이 자리가 진짜 '민정'으로 넘어갈 때까지의 임시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두 달이 짧은 시간이 아니죠. 취임을 응낙할 때와 비교해서 이 자리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점이 있습니까? 안재홍 : 근본적으로 달라진
2012.04.06 08:09:00
여운형 테러의 또 다른 공범 <동아일보>!
[해방일기] 1947년 4월 4일
3월 17일 새벽 1시에 계동의 여운형 자택 사랑방에서 폭탄이 터졌다. 여운형이 집에 있을 때 기거하는 방인데 그는 집에 없었고 식구들도 다친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 날 뉴델리의 범아시아대회 참석차 출국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사건 직후 경찰은 사제폭탄으로
2012.04.04 08:15:00
中 국공 내전에 이북 군대가 참전했다고?
[해방일기] 1947년 4월 2일
1947년 3월 19일 중국공산당의 본거지 연안(延安)이 국민당 군에 함락되었다. 8개월 전 국공 내전(중국에서 공식 명칭은 '해방 전쟁') 발발 후 공산군이 최악의 수세에 몰린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이북 지도자들이 중국 공산군의 대대적 지원에 나섰다는 이야기가 있
2012.04.02 08:03:00
친일파 문제를 묵살한 미군정
[해방일기] 1947년 3월 28일
1946년 12월 12일 개원한 남조선과도입법의원(입법의원)은 문제가 많은 기구였다. 미군정의 의도에 따라 서둘러 만들어졌고, 그 때문에 선거도 엉망으로 치러졌다. 전국적 소요 사태 속에, 많은 좌익 인사들이 체포되거나 수배된 상황에서 치러졌으니 극우파가 '민선'
2012.03.29 08:47:00
여운형이 뉴델리에 갔더라면!
[해방일기] 1947년 3월 26일
하경덕, 백낙준, 고황경 세 사람이 뉴델리 범아시아회의 한국 대표단으로 3월 17일 떠났다. 여운형이 이 대표단의 수석대표로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떠날 날 새벽 그의 집이 폭탄 테러를 당했고, 그는 위험에 처한 가족을 버려두고 출국할 수 없다며 뉴델리 행을 취소했
2012.03.26 07:44:00
극우파 나팔수 <동아일보>의 쇼! 쇼! 쇼!
[해방일기] 1947년 3월 23일
3·22 파업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서중석의 <한국 현대 민족 운동 연구>(역사비평사 펴냄) 553~554쪽에서 발췌해 옮겨 놓는다. 3월 22일의 파업은 예고는 물론 어떠한 조짐도 없이 돌연히 행해졌다. (…) 철도 노동자들은 '남조선 철도 해고 폭압 반대 투쟁 위원회
2012.03.23 10:4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