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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김일성' 설은 박헌영이 원조?
[해방일기] 1947년 2월 27일
해방 후 이남 지역의 공산주의 운동에는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운동의 많은 부분이 비밀리에 진행되었고, 그에 대한 진술과 증언에도 파당적인 입장에 얽매인 것이 많기 때문이다. 당시 중견 운동가였던 두 사람의 회고를 읽으며 1946년 후반과 1947년 초반의
김기협 역사학자
2012.02.27 09:38:00
남조선 해방 정국의 縮圖 '국대안 파동'
[해방일기] 1947년 2월 24일
1946년 7월 13일 군정청 문교부의 국대안(국립서울대학교 설치 계획) 발표 이후 하반기 내내 격렬한 반대 운동이 계속되었고,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채로 겨울 방학에 들어갔었다. 2월 초 개학과 함께 반대 운동이 격렬하게 재개되었고, 그 주요 수단은 동맹 휴학(맹휴)
2012.02.24 10:08:00
김구의 정치 자금까지 '꿀꺽'하려던 이승만
[해방일기] 1947년 2월 22일
끝나가는 유엔 총회에 조선 문제를 상정하겠다고 12월 초 미국으로 떠난 이승만은 총회가 끝난 지 두 달이 넘도록 미국에 머물고 있었다. 하지가 워싱턴으로 소환된 1주일 후에야 비로소 미국을 떠날 뜻을 밝혔다. 장개석을 만나러 중국으로 가겠다는 것이었다.
2012.02.22 09:58:00
'고문권' 수호를 위한 경찰서장들의 '데모'
[해방일기] 1947년 2월 20일
작년 10월 좌우 합작 7원칙의 하나로 나왔던 토지 개혁 방침에 미군정이 동의한 것처럼 합작위 선전부장 박건웅이 2월 18일 발언했다. 극우 세력에서 이에 대한 반대가 쏟아져 나오자 며칠 후 농무부장 이훈구가 이 발언을 부정했다.
2012.02.20 10:12:00
美 점령군 사령관은 "미국의 찌꺼기?"
[해방일기] 1947년 2월 17일
1947년 2월 14일 하지가 워싱턴으로 떠날 때는 그가 남조선 점령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지 18개월이 조금 안 된 시점이었다. 그가 그 자리에 얼마나 더 있을지는 물론 그 시점에서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결과적으로는 18개월을 더 그 자리에서 지내게 되는 것이니, 3년간의
2012.02.17 08:17:00
하지의 '소환'에 어떤 의미가 있었나?
[해방일기] 1947년 2월 15일
2월 14일 워싱턴을 향해 떠나면서 하지 사령관이 발표한 성명서에 그 시점 그의 입장이 최대한 표명되어 있었다. 긴 성명서인데, 요점만 발췌해 놓는다. "조선 독립은 필연코 오리라는 것을 믿는다. 조선인과 연합국이 충분히 협력하면 그날이 속히 도래할 것이다. 조선 독립
2012.02.15 10:19:00
"반탁 세력, 너희들 속셈은 밝혀졌다!"
[해방일기] 1947년 2월 13일
미소공위 미국 측 대표 브라운 소장이 모스크바 협정과 미소공위에 관한 미국 측 견해를 몇 차례에 걸쳐 공표하기로 하고 첫 발표를 2월 10일에 내놓았다. 이후 2월 15일, 2월 18일, 2월 25일, 3월 4일까지 총 5차의 발표가 나왔다. 그 내용을 살펴보기에 앞서 그 시점에 브
2012.02.13 08:57:00
김구가 '반탁'에 목맨 진짜 이유
[해방일기] 1947년 2월 10일
안재홍의 민정장관 취임식이 2월 10일 오전 군정청 앞마당에서 열렸다. 2월 5일에 취임을 승낙하고 업무를 시작했는데, 이제 공식 취임에 임해 안재홍은 이런 성명서를 발표했다. "불초 금반 군정청 행정 기관 통괄 책임자인 민정장관의 취임에 당하여 약간의 소신과 당면한
2012.02.10 11:20:00
행정권 맡기며 경제권 안 주는 'Koreanization'
[해방일기] 1947년 2월 8일
1946년 12월 31일에 관재령(管財令) 제8호 "각종 귀속 사업체에 관한 건"이 군정청 재산관리관 비숍 중령의 이름으로 공포되었다. "제 귀속 사업체의 운영을 위한 이용, 보관, 재무에 관한 조선군정청 소속 각 행정관 각 기관 및 其 대행 기관의 책임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2012.02.08 08:00:00
"안재홍 선생, 민정장관 자신 있어요?"
[해방일기] 1947년 2월 6일 :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어제 민정장관에 취임하셨죠. 하지 사령관, 러치 군정장관에 이어 군정청 서열 제3위의 직책인데, 그보다도 조선인으로 최고 행정 책임자라는 의미가 큽니다. 몇 달 전부터 진행되어 온 군정청의 '조선인화'가 선생님의 장관 취임으로 한 차례 매듭을 지은 것입니다.
2012.02.06 08:1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