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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미소공위 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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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미소공위 재개!

[해방일기] 1947년 4월 11일

1947년 4월 11일

마셜 미 국무장관이 소-영-중 3개 연합국 외무장관에게 4월 8일부로 보낸 편지 내용이 4월 11일 공개되었다. 3개국으로 보낸 편지지만, 실제 내용은 소련을 상대로 한 것이다.

[모스크바 12일발 AP합동] 미 국무장관 마샬 씨는 4월 8일부 서한으로 조선 사태에 관한 성명을 소·영 양 외상 급 주소 중국 대사에게 전달하였는데 11일 발표한 바에 의하면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남조선주둔미군사령관은 현재까지 수차나 미소공동위원회를 재개시키고자 노력하였으나 북조선주둔소군사령관은 공위 협의에 있어서 대부분의 조선 지도자를 제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방법을 항상 고집하였다.
(2) 모스크바 협정 체결 후 16개월이 경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 문제에 관하여서는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으므로 미 측은 조선의 정치 문제 해결을 위한 업무를 즉시 재개하는 것을 요망한다.
(3) 조선의 독립을 회복시키는 데 있어서 소련은 가급적 속히 미 측과 협력할 것을 요망한다.
(4) 소 측이 미 측과 협조하는 데 있어서는 다음 두 가지 사항이 유의되어야 할 것이다.
가) 조선의 독립책을 진전시키며 해결시키는 목적으로 소련은 미 측과 함께 미소공동위원회 재개에 대한 합의에 노력하되 이는 민주주의적인 자유의사 표시의 권리를 존중하는 원칙 하에서 하여야 할 것.
나) 1947년 하기 내에 현재까지의 미소공동위원회의 업무를 워싱턴 모스크바 양 당국이 재검토하기 위하여 기일을 결정할 것.
(5) 한편 미 측은 모스크바 협정에 인한 책임을 유의하고 있는 만치 이 이상 지연됨이 없이 이 협정의 목적을 조장시킬 조치를 남조선에서 단독적으로 취할 수밖에는 방도가 없다. (<동아일보> 1947년 4월 13일자)

파리 외상 회담에 임해 16개월 전의 모스크바 회담 결정 중 실행에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던 조선 문제에 관심을 촉구한 것이다. 2월에서 3월에 걸친 하지의 워싱턴 체류의 목적도 적어도 일부는 이 편지 작성을 위한 자문을 얻는 데 있었을 것이다.

(1)항에서 조선 문제에 진전을 보지 못한 책임이 소련군 사령관에게 있다고 주장한 것은 미국 입장에서 당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이 (5)항에서 "협정의 목적을 조장시킬 조치를 남조선에서 단독적으로 취할" 것을 언명한 사실이다. 조치의 내용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소련과의 협력 없이 취하는 조치라면 극단적으로 해석해서 단독 건국까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보도가 전해지자 민주의원, 민통, 한민당, 독촉국민회, 국민의회, 반탁투위 등 조선의 우익 단체들이 즉각 열렬한 환영의 뜻을 표했는데, (<경향신문>, <조선일보> 1947년 4월 13일자) 대개 (5)항의 내용을 "강경한 태도"니 "완강한 정책"이니 치켜 올렸다. 그런데 이 내용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는 사실을 4월 14일 입법의원에서 장면 의원과 하지 사령관 사이의 문답에서 알아볼 수 있다.

장면 : 모스크바 발 외전에는 마 국무장관이 통일 조선 정부 수립에 소련이 불응이면 남조선에 독립 선언을 하겠다고 전하였는데 사실 여부와 또 만약 그가 오보일 때 동 통신에 대해서는 여하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지 : 마샬 씨는 그런 말을 하지 않은 것 같다. 또 씨가 그런 말을 할 리가 없다. 그리고 나로서는 외국에 있는 통신원을 처단할 근거가 없다. (<조선일보> 1947년 4월 16일자)

하지 자신이 4월 12일 발표한 성명서에서도 "강경한 서한"이라고 했다. 국무장관의 편지가 자신의 입장을 잘 반영한 데 만족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강경한 정도가 단독 정부 수립으로까지 해석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이었을 것이다.

"소련 외상 몰로토프에게 보낸 마샬 장관의 강경한 서한은 조선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시종여일한 것을 증명하는 동시에 미국이 조선에 통일 독립 국가를 건설하려는 확호한 의도를 명시한 것이다. 본관은 조선 문제가 상층부에서 취급하게 된 것을 기뻐하며 조선에 있는 미국인들은 다만 미점령 지대에 있어서 경제 정치 문화의 발전을 조장하고 통일된 번영한 조선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경향신문> 1947년 4월 13일자)

마셜의 편지는 미소공위 재개를 필연의 일로 닥쳐온 시점에서 미국 입장을 정리한다는 요식적 의미를 담은 것이었다. (1)항에서 실패의 책임을 돌리면서도 소련에 대한 요구를 담은 (4)항에서는 "민주주의적인 자유 의사 표시의 권리를 존중하는 원칙"이란 완곡한 표현을 쓴 것도 그 때문이다. 몰로토프 소련 외상은 편지를 받은 지 10여 일 후에 답장을 보내왔다.

[모스크바 23일발 AP합동] 몰로토프 소련 외상은 과반 조선 문제에 관한 마샬 국무장관 성명에 대한 회한을 전달하고 이어서 모 외상은 미소공동위원회를 금년 5월 30일 서울서 재개할 것을 제안하였는데 동 회한 내용은 대략 여좌하다.

(1) 미소공동위원회가 조선 독립에 관한 프로그램 실천에 실패한 원인은 미 측이 1945년 12월에 모스크바 삼상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존중하지 않았던 것에 기인한다.
(2) 소 측은 조선 임시 통일 정부 수립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여좌히 제안한다.
가) 조선의 양 분할 지구를 철폐하고 조선을 독립 국가로서 그의 정치적 경제적 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조선을 민주주의적 정당 사회 단체의 광범위적 참여하에 조선 임시 통일 정부를 수립할 것.
나) 전 조선에 보통선거권과 동등선거권을 부여한다는 원칙하에 민주주의적 기구를 설치할 것.
다) 조선을 독립 민주 국가로 진전시키고 조선의 경제문화를 향상시킴으로써 조선 재생에 원조를 부여할 것.
(3)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소련은 1945년 모스크바 삼상 회의의 결정 사항이 절대적으로 존중된다는 원칙하에 미소공동위원회를 5월 11일 서울에서 재개할 것을 제안함.
(4) 재개된 미소공동위원회는 그 업무 결과를 7, 8월경에 미소 양국 정부에 보고할 것을 동시에 제안한다.
그런데 이상 모 소 외상의 회한은 4월 19일부로 영 외상 베빈, 주소 중 대사에게도 전달하였다 한다. (<동아일보> 1947년 4월 24일자)

이 답신에서 지연의 책임을 미국 측에 미룬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각자 할 얘기 하고, 상대방이 묻는 책임을 묵살하면서도 그것 때문에 회담 재개를 재고할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재개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1947년 4월에 열린 파리 외상회담에는 미-영-소 외에 프랑스가 참가했고, 중국은 참가하지 않았다. 그래서 중국 측에는 주소 중국 대사를 통해 편지를 전한 것이다. 중국은 주요 연합국 회담에 제대로 끼는 형편이 못 되었지만, 조선 문제에는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南京 17일발 AP합동] 중앙 정부 발표에 의하면 외교부장 왕세걸(王世杰)은 과반 중국에 전달된 조선 문제에 관한 마샬 미 국무장관 성명서에 대한 회답 서한을 주소 중대사를 통하여 14일 미 마 국무장관에게 발송하였다 하는데 왕 외교부장은 이 서한에서 만약 미-소 양국이 조선 문제 해결에 대한 합의 도달에 실패한다면 전폭적 조선 문제 협의는 미 소 영 중 4개국 간에 진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제안하였다 하는데 그 서한 내용은 여좌하다.

(1) 조선의 장래는 중국으로서도 막대한 관계사인 동시에 또 중대한 관심사이다.
(2) 중국 인민과 중국 정부는 항상 조선 인민에게 가급적 조기 독립이 부여될 것을 유의 주장하여 왔던 것이다.
(3) 그러나 조선 독립 수립은 아직도 실천되지 않고 있다.
(4) 그러므로 조선인의 자유와 독립 획득에 대한 장기 투쟁 목적을 이 이상 지연 없이 실현시키기 위하여 중국의 견해 입장으로서는 만약 조선 점령 양국이 조선 문제 해결에 대한 합의 도달을 조기적으로 보지 못할 시에는 1945년 12월 모스크바 협정 당사자인 미 영 소 급 중국 간에 조선 문제가 전폭적으로 심의 협의될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경향신문, 조선일보 1947년 4월 18일자)

중국 측의 이 제안은 연합국을 대신해 모스크바 결정 실행을 맡은 미·소 주둔군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경우 연합국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분단 건국을 피할 수 있는 최후의 대안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제안이 합당한 것이었기 때문에 미국 여론에서도 호응이 있었다.

[뉴욕 19일발 AP합동] 뉴욕타임스 지는 만약 미소 양국이 조선 문제 해결에 있어서 합의를 보지 못할 시에는 미 소 영 중 4국은 마땅히 조선 문제를 심의하여야 할 것이라고 제안한 중국외교부장 왕세걸 주장에 관하여 여좌히 논하였다.

"미 소 영 중이 조선 문제를 심의하자는 중국외교부장 왕세걸 제안은 실제적이고 합리적인 것이다. 1945년 모스크바 결정에 있어서 조선에 대한 탁치에 관하여 영 중 양국도 포함되고 있는 만치 이러한 4개국 회의를 정식으로 소집할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선 장래에 관하여 가장 직접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국민은 중국일 것이다. 이미 장 주석도 언명한 바와 같이 만약 조선이 확립을 획득하지 못한다면 중국 독립도 완전치 못할 뿐 아니라 극동 평화 나아가서는 세계 안전 보장도 독립 못한다는 것이다. 여하간 현재 소련은 북조선을 기 지배하에 보유하려고 하고 있는데 그 이유로서는 이로써 소련은 연해주 급 여순 지구를 보호하며 만주에 있는 중공 측을 공업적으로 지지하고 일본을 부단히 위협하려는 것이다. 소련은 이러한 유리한 입장을 현재까지 미 측 압박으로 인하여 포기할 동의를 표시하지 않고 있으므로 명백히 조선 탁치에 관련될 당사자인 제3자가 조선 문제 해결에 있어서 공동 행동을 취할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동아일보> 1947년 4월 20일자)


인용한 신문 자료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로 가기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바로 가기 :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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