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6일 22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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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각의 곡절적인 국제 혼인 중매기
코리안드림 - 한국에서의 중국조선족 <37>
앞에 재미있는 배문석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배문석씨는 내가 보았던 대로 인정스럽고 정열적이어서 무슨 일이 있으면 그에게 부탁을 하는 사람들이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아직 미혼이었던 그에게 국제혼인 소개를 부탁했다고 하는 것도 이해되는 일이다.배문석 씨의 여행
리혜선 재중 조선족 작가
2003.04.04 09:40:00
결벽증언니의 열연(熱戀)의 고뇌(3)
코리안드림 - 한국에서의 중국조선족 <36>
그러던 허씨 언니에게 남자가 생겼다. 한국인남자였다.나는 워낙 일기를 쓰는 버릇이 있다. 이번에는 취재와 관련되기에 비교적 상세히 썼다. 허씨 언니에 관한 구절들만 일부 뽑아 적어본다.8월 1일:허 언니가 오늘 전에 없이 늦어서 왔다. 11시 15분의 마지막 마을버스를
리혜선 재중 조선족 자가
2003.04.03 09:16:00
결벽증언니의 열연(熱戀)의 고뇌(2)
코리안드림 - 한국에서의 중국조선족 <35>
그녀는 끝내 한국국적을 땄다. 이름은 허영주였고, 호적에 형제는 없었다. 이름은 자기 이름이 아니라고 했다. 왜서 남의 이름을 썼냐 물었더니, 남편과 이혼한 시간이 한국결혼수속조건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이혼시간이 더 긴 여자의 호적을 빌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2003.04.02 09:16:00
결벽증언니의 열연(熱戀)의 고뇌(1)
코리안드림 - 한국에서의 중국조선족 <34>
셋집을 몇 번 옮기다보니 한약재냄새가 코를 진동하는 제기동에서 또 허영주라고 하는 조선족과 합숙하게 되었다. 혼자 있을 때 전화를 받으면 그녀를 옥녀라고 찾는 사람도 있고 애자라고 찾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그녀 이름이 대체 어느 것인지, 성씨도 허씨인지 권씨인지
2003.04.01 08:46:00
위장결혼녀(2)
코리안드림 - 한국에서의 중국조선족 <33>
그녀가 지금 일하고 있는 집의 할아버지는 워낙 꽤 활동적인 기업인이었다고 한다. 할머니가 편찮으면서부터 그녀가 들어왔는데 할아버지가 잔소리를 많이 했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금방 옷을 갈아입히면 또 적시곤 했는데 그 때마다 할아버지가 화를 냈다. 어느 날 저녁 할
2003.03.31 09:21:00
위장결혼녀(1)
코리안드림 - 한국에서의 중국조선족 <32>
7월 8일, 이날도 서울의 날씨는 찌는 듯이 무더웠다. 오후 1시경에 서울 동대문부근에 있는 B에게로 떠났다. B라고 부르게 된 것은 그녀가 자기 이름을 말하기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셋집 언니가 소개해서 만나게 되었다.동대문 부근에 마중 나온 B를 따라 우불꾸불한
2003.03.29 08:57:00
그녀의 한국 남편과 애인들(3)
코리안드림 - 한국에서의 중국조선족 <31>
여자든 남자든 사랑을 갈구하기 마련이다. 그녀는 또 두 번째 애인을 만났다. 그녀를 보면 어디서 저렇게 왕성한 정력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열적인 여자다. 그런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정신력이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여자다.첫애인과 갈라
2003.03.28 09:28:00
그녀의 한국 남편과 애인들(2)
코리안드림 - 한국에서의 중국조선족 <30>
그 때로부터 A는 이씨와 합법적으로 동거했다. 주민등록증이 있었기에 브로커에게 수백만원의 돈을 주지 않고도 중국과 한국을 마음대로 드나들며 장사할 수 있었다.그 동안 그녀는 남대문시장물건을 가지고 중국으로 가고 중국에서는 한약재를 가져오며 장사를 했다. 집에서
2003.03.27 08:41:00
그녀의 한국 남편과 애인들(1)
코리안드림 - 한국에서의 중국조선족 <29>
“괜찮아, 쓰겠으면 쓰라구!”그녀는 성미가 통쾌한 여자였다. 다른 때에는 통쾌하다 못해 지나칠 정도다 싶었는데, 이번에는 그 통쾌함이 고마웠다. 어떤 때에는 감추어야 할 부분의 이야기도 들어 내놓고 말하곤 해서 민망한 때도 있었었다. 나에게만 하는 줄로 알았던 이
2003.03.26 09:47:00
미인의 두 번째 함정(2)
코리안드림 - 한국에서의 중국조선족 <28>
해산달이 되어 병원에 갔는데 해산 대에 올라서도 오래 동안 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 몸이 지나치게 허약했다. 19시간을 앓다가 제왕절개수술을 했다. 아들을 낳았다. 1997년 1월 4일이었다.“아기아빠는 해산하기 전까지는 괜찮게 해주었어요. 그런데 해산하고 일주일후 퇴
2003.03.25 09: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