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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한국 남편과 애인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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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한국 남편과 애인들(3)

코리안드림 - 한국에서의 중국조선족 <31>

여자든 남자든 사랑을 갈구하기 마련이다. 그녀는 또 두 번째 애인을 만났다. 그녀를 보면 어디서 저렇게 왕성한 정력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열적인 여자다. 그런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정신력이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여자다.

첫애인과 갈라진 후에는 이를 악물고 중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삼 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 그녀는 당시 종각대통여관에 들어있었다. 그녀 주변의 누군가 전수봉이라는 애인을 소개해줬다. 역시 미남이었다. 그녀는 스스로 미남 운이 있다고 자랑했다. 처음에 만났을 때에는 이상하게 기운을 차리지 못하더라고 했다. 워낙 약장사인 그녀였는지라 녹용, 산삼으로 남자를 보신시켰다. 남자는 마침내 남자구실을 못하는 병도 잘 치료되고 생기 있는 남자로 변했다. 남자는 한국음식도 잘 만들었고, 평소에는 그녀 어깨를 주물러 주는 등 다정다감해서 그녀를 홀딱 반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남자에게 중국장사를 가르쳐줬고 소비 돈도 푹푹 잘 주었다. 함께 동거하면서 합작해 돈을 꽤 많이 벌었다고 한다.

1997년 12월, IMF가 터지자 A는 애인을 데리고 중국으로 장사를 떠났다. 한국 돈의 중국 돈 환율은 4.6으로까지 내려갔다. 위장결혼서 7장을 가지고 가서 달러를 받아 한국에서 팔기로 했다. 당시 한국은 달러시장이 긴장해 환율이 20까지 최고로 올라갔다. 한 번을 잘 돌리면 진짜로 돈이 잘 돌아 돈다운 돈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돈을 보는 눈이 유달리 발달한 그녀였던지라 이 때다 싶어 야심이 발발해졌고 흥분했다. 그런데 위장결혼 요금 40만원(한화 당시 가격으로는 8천만원)을 간수한 남자가 없어졌다. 어서 달러를 바꿔야 한국에 가지고 갈 수 있었다. 그녀가 애를 태우는 중 어느 날 남자가 문뜩 전화를 해왔다. 이제부터는 너의 장사, 나의 장사를 갈라 하자고 했다. 돈을 다 챙기고 이런 전화를 해오자 A는 당연히 화가 진동했다. 조사를 해보니 애인은 벌써 다른 애인을 만나고 있었다. 삼 장사를 하다가 눈이 맞은 조선족여자 청해와 장춘 여관에 들어있었다. 그가 돈을 가지고 달아나 그녀는 중국에서 빚 구럭에 빠졌다. 위장결혼요금을 주었던 사람들이 그녀를 연금하고 머리칼을 잡아 뜯었다. 그렇게 1년 간 여권을 빼앗기고 하마터면 한국에도 돌아오지 못할 뻔 했다.

작년에는 갑자기 남자들이 달려들어 그녀 목에 칼을 들이댔다. 조선족 깡패들이었다. 그녀 애인이 어디에선가 또 그녀 이름으로 사기를 친 것이다.

“너의 애인이 너를 죽여야 빚을 갚겠다 하더라.”

깡패들은 그렇게 말했다. 하는 수 없이 애인의 빚 4만원(한화 5백20만원)을 대신 갚았다.

“그 자식 때문에 아직도 연길에서 위장결혼수속을 했을 때의 비행기표 값 5천 원(한화 65만원)이 빚으로 남아 있어.”

후에야 그녀는 자기 두 번째 애인의 남달리 영광스러운 역사를 알게 됐다.

감옥살이 4차, 혼인 5차, A가 제 6차.

A는 남자가 달아나기 전에 이미 혼인신고를 했었다. 그런데 이 일이 생긴 후에는 가만히 셋집을 옮겨버렸다. 나와 합숙한 동안에 그녀는 애인이 자기 주민등록을 말소해버렸다고 화를 냈다. 애인은 그 동안 여러 번에 거쳐 천육백만 원이나 가져갔었다. 그녀는 밑 빠진 항아리에 이제 더는 처넣을 수 없다고 애인과 관계를 끊어버렸다. 말소된 주민등록은 이제 돈 3만원을 내면 다시 등록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난 정말 남자 복이 없는 여자야.”

여자가 한탄했다.

미남운이 있다고 자랑 할 때와는 대조되는 표정이었다.

“다 돈을 보고 달려든단 말이야!”

그녀는 참으로 삼류소설 속의 주인공과 같이 엽기적이고 굴곡적인 운명이었다. 진지한 마음이 없으니 진지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것쯤으로 치부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조선족과 한국인의 결혼에 있어 상당한 부분이 비즈니스 결혼이라고 한다. 중국 흑룡강성 아성시의 한 마을에서는 23명의 여성이 한국인남자들과 약속하고 비즈니스결혼을 했다고 한다. 23명에게서 7백만원씩만 받아도 그 돈은 1억6천1백만에 달한다. 이 비즈니스에서 제일 처음 돈을 번 사람은 한국인남자들이었다. 이안주같은 사람이다. 이 사람은 두 번의 결혼에서만도 1천4백만원을 벌었다. 그 후에도 제3차, 4차 결혼해 돈을 벌었을지 모를 일이다.

국제결혼은 상품화되어 유통시장이 생겨나 한국인과 조선족 쌍방의 소개자들이 한몫 챙기고 있다. 한국체류를 원하는 조선족여자가 위장결혼의 비용을 지불하고 그 돈은 한국인위장남편, 조선족, 한국인 소개자들이 나눈다. 한동안 연길에도 섭외혼인소개소가 비온 뒤의 죽순마냥 생겨났었다. 이런 유통시장은 도덕관의 추락이 한국과 중국의 미진한 법규의 틈을 이용해 만들어진 것이다.

성이 상품화 된 역사는 인류가 상품사회로 진입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니 이런 의미에서 보면 결혼이 상품화된 것도 신기하지 않다. A와 같은 여자의 가치관이라면 전혀 이상하지도 않은 일이다. 중요한 것은 불법체류에 대응한 조선족의 한국입국에 위장결혼이 중요한 루트가 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국 위장결혼의 시장도 날로 흥성해진 것이다. 한국의 어느 여류소설가의 소설에서도 미국적 한국인 여성이 한국인 어린 총각과 위장결혼을 해주어 미국국적을 얻게 하는 스토리를 읽은 기억이 난다. 중국의 드라마에도 미국에서 시민권을 얻기 위해 미국 할아버지와 결혼한 중국 처녀의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후진적인 국가에서 경제력이 나은 국가에로의 비즈니스결혼은 국가적인 경제력의 차이가 있는 한 영원한 드라마인 것 같다.

그러나 위장결혼의 현실을 막고자 한국의 법도 많이 개진된 셈이다. A가 위장결혼을 했을 때만도 한국은 국제결혼에 특별한 법을 제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결혼해서 바로 주민등록증이 나왔고 반년이면 이혼도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이제는 국제결혼은 2년이 지나야 주민등록증을 발급한다. 중국에는 상정책, 하대책이라는 말이 있다. 위에서 정책을 제정하면 아래에서는 대책을 만들어낸다는 말이다. 2년이 지나야 주민등록증을 발급한다고 해서 위장결혼이 제지된 것은 아니다. 다만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위장결혼녀들에게 그만큼의 불이익이거나 위협이 다가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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