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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벽증언니의 열연(熱戀)의 고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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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벽증언니의 열연(熱戀)의 고뇌(3)

코리안드림 - 한국에서의 중국조선족 <36>

그러던 허씨 언니에게 남자가 생겼다. 한국인남자였다.

나는 워낙 일기를 쓰는 버릇이 있다. 이번에는 취재와 관련되기에 비교적 상세히 썼다. 허씨 언니에 관한 구절들만 일부 뽑아 적어본다.

***8월 1일:**

허 언니가 오늘 전에 없이 늦어서 왔다. 11시 15분의 마지막 마을버스를 타고 온 것 같았다. 아담한 수박을 들고 들어왔다.

"얼마에 샀어요?"

한국은 무슨 과일이든지 너무 비싸기 때문에 나는 또 한 번 놀라고 싶어서, 아니, 한국보다는 싼 과일값에서나 중국에 사는 보람을 느끼고 싶어 물었다.

"아니, 사지 않고 가져왔지."

아줌마가 즐거운 콧소리로 말했다.

"누가 사줬는데요?"

나는 내가 언젠가 빵을 사들고 왔을 때 허언니가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한국남자들은 여자에게 처음에는 빵이나 과일을 사주고, 두 번째는 밥을 사주고, 세 번째는 침대에 오르자고 할걸."

취재 때문에 남자들을 많이 만나고 전화도 많은 나에게 허 언니는 그렇게 침을 놓았었다. 허 언니는 수박을 쪼개어 이웃 셋집의 총각에게도 주었다. 그녀 표정을 보고 남자가 사 주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전화소리가 울리자 허 언니가 대뜸 달려가 받았다.

"예, 도착했어요. 고마워요...."

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전에 듣던 소리가 아니었다. 조금은 달콤한 꿀이 발린 냄새가 났다.

밤참으로 수박을 먹으며 언니는 참지 못하고 남자를 만난 이야기를 했다. 참치횟집 사장님의 소개로 선을 보고 온 것이다. 성은 하씨, 백화 음식점에서 실장으로 있다고, 아침 7시에 나가 저녁 9시 퇴근, 순박해 보이더라고, 그러나 손을 보니 많이 일한 손이라고 했다.

"아내가 고스톱을 쳐서 집을 다 날리고 아들 둘과 함께 있는데 아들 하나는 이미 성가했대. 돈은 별로 없는가봐. 전셋집에서 산대."

"성가하지 않은 아들이 있어서 괜찮을까요? 아직 고정 직업도 없다고 하잖아요....."

"그거야 내 쪽도 마찬가지잖아. 나도 딸 둘인데 하나는 성가하고 하나는 아직 안 했잖아."

계산이 이미 맞아떨어진 허 언니, 밑질 것도 신세질 것도 없다는 태도였다.

기분이 좋은 모양으로 얼굴 전체에 희색이었다. 나는 텔레비죤 위에 놓여있는 장미조화를 바라보았다.

"담배를 안 피운대."

첫선에서 그것이 가장 확신이 있는 부분이었다. 허 언니는 깔끔해서 게으른 사람을 질색했다. 그런 중에도 담배냄새가 싫어 식당에서 사장이 담배를 피울 때면 몸을 돌려 피한다고 했다.

불을 끄고 누웠는데 허 언니는 자신이 여태 사장에게 한국인이라고 말했던 것이 속에 걸린다고 말했다. 조선족인 것을 알면 임금체불을 당할 가능성이 많기에 일자리를 찾을 때마다 조선족이라는 것을 속인다고 했다.. 언니는 이웃에도 조선족인 것이 알려지는 것을 싫어했다. 그 통에 나는 이웃과 늘 얼굴이 마주치지만 한 번 실속 있는 통성명도 하지 못했다. 언니는 하 실장도 자기를 한국인여자로 소개받았기에 그런 줄로 알고 있어서 불안하다고 했다.

"괜찮아요. 남자가 괜찮고, 정말 마음에 들면 그 때 가서 말해도 괜찮지요뭐."
라고 위안했다.

***8월 2일:**

아침에 허씨 언니가 어제 만난 하 실장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

"어제 만났을 때 저녁에 산 회 값을 치렀어요?"

물음이 뜻밖이었다.

그랬지만 목소리도 전에 없이 다정해 중국 억양이 전혀 없는 노긋노긋한 목소리였다.

"말씀 어쩜 그렇게 상냥하세요?"라고 농을 했더니 "한국에서는 무슨 일이든 꼭 짚고 넘어가야 하오. 나중에 사장이 나 때문에 회를 공으로 먹이면서까지 남자를 소개했다고 할 수도 있으니까, 나도 답변거리가 있어야 잖아."

허언니는 이렇게 딴전을 피웠다. 중국에서는 전혀 있을 수 없는 그녀의 물음과 대답이었다.

"그래 얼마를 지불했답니까?"

나는 시물시물 웃으며 이렇게 물었지만, 허 언니가 전화를 걸고 싶었던 의도는 다른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3만원이라오."

허씨는 여전히 허리를 아파했지만 전에 없이 환한 기분으로 출근했다.

***8월 3일:**

허 언니는 하 실장을 만난지 금방 이틀이 됐는데, 벌써 하씨에게 전화로 장황하게 일의 고달픔을 말하고 있다. 뚝배기 삼십 개를 혼자 씻고 팔이 너무 아프다는 것, 특별히 힘들다는 것 등이었다.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었는지 모른다.

"전화 올 때마다 좋은 친구 하재. 결혼할 수 있으면 더 좋고 안 돼도 그러재."

허씨의 커다란 눈가에 환희가 어렸다.

"이 아저씨는 워낙 횟집에서 회를 떴고, 지금 내가 있는 음식점의 사장은 카운터를 봤대. 그러니까 아저씨 워낙 기술이 좋은 분이신가 봐."

"그럼 아저씨가 회를 뜨고, 언니가 주방 잘 보니까 함께 횟집 하면 좋겠네."

"그럼 좋지. 사장사모님도 그렇게 말했다니까."

이씨의 눈빛에 꿈이 어렸다.

하씨는 월,화,수를 휴가로 가졌다고 하고, 허 언니는 두 주일에 한 번씩 일요일밖에 쉬지 못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언니 휴가일을 월요일로 바꾸죠, 라고 좋은 수나 생긴 듯 말했다. 그러나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월요일에는 손님이 많으므로 그렇게 쉴 수 없다고 했다.

"아예 이러는 게 더 좋아, 왜 하루 종일 피곤하게 만나겠어?"
라고 해서 내가 어리둥절해졌다.

"저녁에 잠깐잠깐 만나면 피곤하지도 않고, 서로 친구하고 좋잖아."

"무슨 말이세요?"

"아저씨 이혼한 사모님도 어딘가 있을 거구, 아저씨가 나이를 말하지 않지만, 너무 연세가 드신 것 같아. 사람은 순박해 보이고 고정하시겠지만."

허 언니는 한 사람을 후생의 반려로 정하자니까 여러 가지로 속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8월 4일:**

"비가 많이 내린다. 속까지 후련하다."

허 언니는 을지로 갈비 집에 있는 친구의 전화를 받으며 짜증을 냈다.

"중요한 사람에게서 전화가 오겠는데, 이렇게 길게 전화하면 어쩌나."
라고 하며 송수화기를 쾅 놓았다. 밤이 깊어가고 전화가 오지 않자 언니의 기분이 시무룩해 잠자리에서 뒤척거렸다.

***8월 6일:**

일요일이다. 허 언니가 아침에 개구리다리 볶음과 조개구이, 감자장을 해줘서 맛있게 먹었다. 오후 허 언니와 함께 장을 보았다. 저녁에는 허 언니가 하 실장의 칭커(請客, 식사초대)를 먹으러 갔다. 가기 전부터 자꾸 속이 뛴다고 했다. 쉰이 다 되었지만 아이같이 순진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곤색 양복을 입으니 횟집 주방아줌마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언니는 기분 좋은 얼굴로 돌아왔다. 그녀는 중국에서 몇 번 수술을 한 적이 있다. 남자에게 자기가 수술한 일들을 다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제 천천히 자기 사정이야기(조선족?)까지 할 예정이라고 했다.

***8월 8일:**

허씨 언니는 퇴근하자마자 자기가 일하는 식당에 전화를 했다.

"순두부를 냉장고에 넣으세요."

허씨 언니는 나에게 먹이려고 5백원에 순두부를 샀다. 그런데 사장이 자꾸 하 실장과 그녀 연애에 대해 농담하는 바람에 웃고 떠들다가 그만 순두부를 식당에 두고 왔다. 순두부를 냉장고에 넣으라고 사장에게 전화했는데,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진 사장이 또 농담을 해서 "몰라, 몰라..."라고 연발하며 전화를 끊는다.

***8월 9일:**

전에 없던 일이다. 허씨 언니가 오후 2시 반경에 왔다. 하 실장과 만나기 위해 옷을 갈아입으러 온 것이다. 갑자기 허씨 언니는 눈물을 흘렸다.

"나도 내 성질이 안 좋은 걸 안다니까. 어떤 때는 참지 못하고 눈물이 자꾸 나와. 요 전날에도 텔레비를 보면서 너무 눈물이 나와 혼났다니까."

"좋은 분을 만나고 있으면서 눈물을 흘리지 마세요."

"제가 오기 전에는 혼자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르오."

"괜찮습니다. 나도 그저께는 혼자 울었는데 뭘. 여나 아빠가 자꾸 오라고 하니까, 내가 얼마나 고달픈데, 누군 갈 줄을 몰라서 못 가느냐구, 시작한 일은 해야 되잖습니까. 여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안 가는 것도 아닌데. 라고 생각하니까 눈물이 나더라구요."

나는 동류의식을 부여하느라고 나의 눈물을 과장해 말했다. 알고 보니 딱히 울기까지 할 일은 없는 것 같았지만 언니는 3년 동안 위장결혼비용을 갚느라고 온갖 설움을 다 당했던 일이 생각나 가끔 울면 속이 시원하다고 했다.

허 언니는 손님이 없어도 미안해서 앉아있지 못하는 성미다. 돈 백만 원을 받으면서 주인의 가슴을 알찌근하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손님이 없으면 주인들의 심정이 좋을 수 없는데 자기까지 놀면 이중손실을 보는 게 아니냐고 사리 밝게 말했다. 시키지도 않는 냉장고를 청소했다. 두터운 얼음을 끄고 나니 팔이 아파 온밤 약 반창고(傷濕膏)를 부치고도 잠들지 못했다. 점심에는 사모 본가 집 식구 11명이 무슨 행사인가 하고 이 집에 왔다. 열한 개에 찌개를 끓이고, 오징어덮밥을 하고, 비좁은 주방에서 뱅뱅 돌아 쳤다. 밥그릇을 올려놓을 자리가 없어 냉장고 위에 올려놓았다.

사모는 언니가 교사여서 김치를 잘 못 담근다고 하면서 그더러 언니 김치를 해주라고 했다. 울화가 치밀었다. 월급 백만 원은 식당에서 일하고 받는 돈이지, 친정언니김치까지 해주라는 돈은 아니잖아, 라고 생각했다.

"화가 나서 김치를 하고 남은 배추겉잎은 다 쓰레기통에 집어넣어 버렸어. 기분이 좋았더라면 그걸로 저녁에 우거지 탕이라도 했지. 바빠 죽겠는데 사장은 개띠여서인지 회만 뜨고는 내빼잖아. 다른 식당에서 일해 보면 바쁠 때는 사장님도 뚝배기 하나라도 선반에 올려주는데, 이런 사장 첨 봤어."

허언니는 한참 울고 나서 이전에 기분이 상했던 일까지 말했다.

"하루는 사장이 이 허씨 언니는 과부야, 이런 말을 하지 않겠어. 기분이 상했어. 사모가 사장에게, 자기 그 말 잘못했어, 허씨 언니 얼마나 충격 받았겠어, 라고 하더라구."

내가 한참 위안했더니 허씨 언니가 갑자기 소리쳤다.

"오늘 또 순두부 두고 왔잖아! 화가 나서 나오다보니..."

우리는 같이 앙천대소를 했다. 어제는 사장이 농담해 순두부를 두고 나오고, 오늘은 또 화가 나서 두고 나왔단다. 나는 끝내 허 언니가 산 순두부를 먹지 못했다.

***8월 10일:**

밤 11시에 허씨 언니가 퇴근길에 삼겹살을 먹고 와 기뻐했다. 식당 주인집에서 삼겹살을 쪼끔 넣고 찌개를 끓여 아이한테만 다 건져 먹이는 바람에 몹시 먹고 싶었다고 했다. 횟집에서 일하지만 회가 워낙 비싸다보니 한 점도 먹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하 실장이 초대를 했다. 오늘은 하 실장에게 자기가 전셋집이 아닌 월 셋집에 산다는 것과 아무런 재산도 없다는 말을 했다고 했다. 하 실장은 돈이 없어도 마음만 맞으면 된다고 하더라며 허씨 언니는 근심 한 보따리를 덜어버린 표정이다. 두 사람의 사이가 점점 가까워지는 모양이다. 돌아와서도 전화를 하고, 이제 아침에도 전화를 할 것이다. 전화를 할 때마다 식당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일들을 하소연했다.

밖에서는 광복절 남북 이산가족 만남을 화제로 떠든다. 눈물이 나 볼 수 없는 화면들, 앞집 주정뱅이는 또 주정하고.

허씨 언니는 월급을 타자 사장에게 반팔 T샤쯔를, 사장 딸에게는 실 적삼을 선물했다.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는 것이 그녀 처세철학이다.

***8월 24일:**

허씨 언니는 아침 전화로 하 실장에게 화장품을 사놓아야 (하씨 집에) 가겠다고 떼를 쓰고 있다. 아침에 출근을 하려면 화장품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하 실장은 어서 혼인신고를 하고 자기 집에 짐을 옮겨오자고 했단다. 추석이 오라지 않은데 허씨 언니의 두 딸을 정식으로 만나고 싶다고 했다. 허씨 언니는 이제는 말해야지, 말해야지, 하면서도 아직도 조선족인 것을 말하지 못하고 있다.
.......

추석에 허씨 언니는 하 실장과 같이 여행을 갔다. 혼자 빈방에 앉아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진정 허씨 언니의 행복을 빌었다.

조선족과 한국인의 결혼에 대한 한국사회의 일반의 이해 때문에 그녀는 자기에 대한 하 실장의 감정이 식을까봐 근심한다. 조선족여자들과 결혼하는 한국남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여자가 재산을 빼 가지고 도망가는 것, 중국에 돈을 빼돌리는 것, 중국의 친척들이 찾아드는 것 등일 것이다. 사실상 한국에 시집간 여성들 중 상당한 부분이 한국가족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혼하거나 가출한다. 그만큼 조선족여성에 대한 신뢰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차피 한국과 중국의 경제소득차이로 조선족여성과 결혼한 한국인 남자는 처가에 경제적인 부담을 느끼기 마련이다.

알아본데 의하면 한족들은 한국에 가서 화교로 있으면서도 한국국적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족들은 한국국적을 가지고 싶어하고, 위장결혼녀들을 망라하여 한국에 있는 독신 여성들은 한국 남자와 결혼하려고 한다. 그만큼 동족이고 한 핏줄이기에 거부감이 없다는 이야기다.

하실장을 사랑하면서도 '조선족'이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아직도 한국에 딸 하나, 중국에 딸 하나가 있다는 말을 하지 못 하는, 매일 하 실장을 만나도 항상 불안한 그녀, 그녀의 심정을 하 실장이 알아주고 따뜻하게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중국에서는 추석이면 온 집 식구가 함께 모여 밝은 달을 쳐다보며 한가정의 따퇀왠(大團圓, 단란한 가족모임)을 상징한 월병을 먹는다. 허씨 언니는 이번 추석에는 과연 자신이 조선족이라는 것을 하 실장에게 실토했는지?

이 글을 쓰면서 다음 추석에는 허씨 언니가 하 실장과 함께 월병을 먹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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