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끝내 한국국적을 땄다. 이름은 허영주였고, 호적에 형제는 없었다. 이름은 자기 이름이 아니라고 했다. 왜서 남의 이름을 썼냐 물었더니, 남편과 이혼한 시간이 한국결혼수속조건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이혼시간이 더 긴 여자의 호적을 빌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는 그녀 법적인 형제가 없었다.
두 딸애를 중국에 두고 온 것이 그녀는 속에 걸렸다. 더구나 딸애 남편이 한국에 돈벌러 나왔다가 1년 만에 검문 당해 강제추방을 당했다. 사위가 집에서 놀게 되자 큰딸이 고생하는 것이 가슴이 아팠다. 큰딸은 항상 그녀 가슴에 걸려있는 걸림돌이었다. 계부의 눈치밥을 먹으며 매를 맞으며 자랐던 딸이었다. 그는 딸애의 한국수속을 주선했다. 딸애는 집을 12만원에 팔고 4만원을 빼내 전셋집에 들고, 나머지 8만원(1천70만원 정도)으로 한국수속을 하여 나왔다.
허씨의 세집 텔레비죤 위에는 장미조화가 놓여있다. 가끔 텔레비죤 뒤에 있는 창문에 손을 뻗쳐 창문을 닫으려다 보면 화분이 위태할 때가 많다. 질그릇이라 떨어지면 박산이 날것이다.
"주의해, 꽃을 마스면(망가뜨리면) 이다음 제(나)가 간 다음에 난 누구와 말하겠어?"
그녀 말이 이상해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하도 외로워 이 꽃을 사놓았다고 했다.
"집에 들어와 꽃이라도 볼 수 있으면 덜 외로워진다오."
그녀에게는 애들이 가지고 노는 전기공이 있다. 공을 구들에 메치듯이 던지면 공중으로 튀어 오르면서 불이 반짝 켜진다. 이것은 왜 샀냐, 했더니 역시 외로워 텔레비죤을 볼 때 한 번씩 공중에 던져 번쩍 켜지는 불을 바라보곤 한다는 것이다. 그 말에 나는 가슴이 찡해났다. 내가 떠나게 되면 이제는 더는 혼자 못 있겠다고 했다. 딸애는 안산 쪽에 직장을 가지고 있으므로 같이 있을 수 없었다.
고된 주방 일에 지친 허씨 언니가 팔이 아파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나는 아마추어솜씨를 피워 안마를 했다. 안마가 별거더냐 하며 엎드린 그녀 잔 등을 손등으로 밀가루를 이기듯이 짓눌렀다. 언니는 흥흥 앓음 소리를 하면서 말했다.
"언니는 형부가 그냥 팔을 안마해주던데......"
"언니도 이제는 좋은 사람 만나 한물 더 살아야죠. 아직도 멋있게 살 날들이 가득한데."
"3년을 무슨 정신에 혼자 보내면서 지냈는지 모르겠소."
3년 동안 빚을 다 청산하고 연길 딸집에 다녀왔다. 두 사위와 두 딸과 손녀 하나가 그의 전부의 재산이었다. 형제와 조카들에게까지 다 선물을 사 가지고 갔다. 이것 역시 과거에 대한 청산이었다. 이제부터 그녀는 한국인이었다.
허씨 언니는 매일 아침 정확히 8시에 일어났다. 나도 아침 8시까지는 꼼짝 말고 자야 했다. 저녁에는 11시에 돌아와 몸을 씻고, 과일을 먹고, 빨래하고, 목욕하고 나면 거의 12시 반이 된다.
어느날 그는 큰사위의 심장병이 도졌다는 소식을 듣고 밤잠을 설치였다. 이튿날 아침에는 사위 부모 집, 즉 큰 사돈집에 전화를 했다. 손녀는 사위의 형님에게 맡기고 사위의 한국수속을 노력해보자고 했다. 아무래도 젊은 사람이 직업을 다 잃고 아이와 가무를 돌보니 병이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녀 판단이었다. 사위는 워낙 세무국 직원이었는데 한국에서 강제송환을 당하다보니 돈도 벌지 못하고 직업만 떼운 꼴이 되었다. 그러나 딸은 애를 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맡길 수 없다고 했다. 자기가 어렸을 때 계부 손에서 고통스러웠던 과거 때문에라도 아이는 그렇게 눈치 밥을 먹일 수 없다고 했다. 그 말이 엄마인 그녀 가슴에 못으로 박혔다. 딸은 애 아빠를 한국에 오게 하고 대신 엄마가 중국에 들어가 자기 아이를 보아달라고 했다. 그녀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밤잠을 설친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자 중국 연길에 있는 사위집에 전화했다.
"아버지가 앓는지 잘 살펴봐라, 응? 아버지가 아파하면 할머니에게 말해야 한다. 딸은 아버지를 잘 생각할 줄 알아야지, 안 그래?....."
한참이나 8살이 되는 외손녀에게 당부했다. 사위가 전화를 바꾸자 한국에 못나오더라도 딸을 이해해달라고 했다. 전화를 놓고 나서 허씨 언니는 사위가 불쌍해 눈물이 글썽해졌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는데 또 어느 날 중국의 동생이 전화해왔다. 백두산에 관광을 갔다가 차 사고를 당했는데 치료비를 보내달라는 전화였다. 그 날 밤도 허씨 언니는 잠을 잃었다.
"이 돈은 누님이 힘들게 번 돈이야, 병 치료를 잘해."
이튿날에 허씨 언니는 동생에게 중국 돈으로 3천원(한화 40만원)을 부쳐 보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