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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의 두 번째 함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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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의 두 번째 함정(2)

코리안드림 - 한국에서의 중국조선족 <28>

해산달이 되어 병원에 갔는데 해산 대에 올라서도 오래 동안 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 몸이 지나치게 허약했다. 19시간을 앓다가 제왕절개수술을 했다. 아들을 낳았다. 1997년 1월 4일이었다.

“아기아빠는 해산하기 전까지는 괜찮게 해주었어요. 그런데 해산하고 일주일후 퇴원해 돌아오니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더라구요.”

나는 무슨 소리냐고 했다. 보경이는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잠자리가 심한 사람이어서 하루 저녁에도 수차씩 관계를 가지곤 했는데, 제왕절개수술로 간신히 해산하여 허약한 상태인 보경이는 남자를 받아줄 수 없었다. 남자는 자기 시중을 잘 들어주지 않는다고 트집을 걸었고 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강박적으로 관계를 가지곤 했다. 보경이는 몸이 눈에 뜨이게 축갔다. 한 번은 홍두깨에 맞고 한밤중에 엄마에게로 뛰어 갔다.

“밤중에 홍두깨 내밀 듯, 이라는 속담이 있지요. 저는 그 때 처음 홍두깨가 뭔줄을 알았어요.”

엄마는 그 때 강릉의 한 현장식당에서 일하고 있었다. 팔이 붓고 눈통이 부은 그녀를 보고 현장 노동자들이 남자를 사람도 아니라고 하며 모두 같이 가서 때려주자고 했다.

그녀는 남자에게서 밥먹듯이 매를 맞았다. 한 번은 그녀 입을 막아놓고 쇠파이프로 때려 머리 뒤통수에 혹 같은 것이 불어나기도 했다. 그녀는 머리를 만져 보라고 하며 나에게 상처자리를 보여주었다. 그녀를 전기줄로 묶어놓고 목에 칼을 대며 죽이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심하게 맞아 정신을 잃었는데 전신을 홀딱 벗겨 묶인 상태인 그녀에게 관계를 했다. 평소에도 밖에서 화가 많이 난 상태일수록 잠자리를 더 많이 요구했고, 거절만 하면 뚜드려 패곤 했다.

견딜 수 없어 세 번 가출했다. 한번은 그녀가 가출하자 그녀 시모에게도 손을 댔다. 엄마가 잘못해서 며느리가 나갔다고 마구 때려 시모가 입원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가출했다가도 다시 들어가곤 했는데 그런 일이 세 번 반복되었다. 아이가 있기 때문에 살려고 애를 썼다. 번마다 남자는 손이야 발이야 빌었지만 결국 마찬가지 상황으로 되돌아가곤 했다.

1997년 10월의 어느 추운 가을날 그녀는 또 남자에게 맞았다. 그녀를 홀딱 벗겨 다리와 팔을 전기 줄로 묶어 넣고 때려 정신을 잃게 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자는 없고 남쪽 방에는 시모가 아이를 업고 그녀를 지키고 있었다. 이대로 있어서는 아무 때든 맞아 죽고 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팔에 힘을 주어 전기 줄을 늘어지게 해놓고 겨우 팔을 빼어 냈다. 다리에 감긴 전기 줄도 벗겨내고 방에 있는 아무 옷이나 걸쳤다. 뒷문으로 가만히 밭을 지나 큰길로 뛰쳐나갔다. 멀리서 달려오는 차를 보고 큰길복판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차가 멈춰 서자 기사에게 무작정 실어달라고 빌었다. 기사가 그녀를 싣고 ‘동보성’이라는 중국 요리 집에 싣고 갔다. ‘동보성’ 사장이 그녀를 병원에 입원시켰다. 그녀는 자신이 병원에 실려 간 줄도 모르고 지각을 잃었다.

“그 때 엄마는 우리가 매일 싸우는 꼴 못 보겠다고 하며 서울로 올라간 뒤였어요. 병원에서 나오자 저는 법원에 기소했어요. 그 사람 이혼을 못하겠다고 했지만 법원에서는 인간으로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그 자리에서 이혼청구를 받아주었어요. 시형도 이혼하라고 했어요. 그 사람 1개월 구속당했어요.”

그 때로부터 그녀는 엄마의 소개로 서울의 ‘궁전다방’을 꾸리고 있는 한 언니사장의 집에 있으면서 몸을 춰 세웠다. 결혼 전에 50키로가 넘었던 체중이 45키로밖에 안되었다. 3개월 후부터는 서울 삼성부근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카운터를 보는 일을 했다. 아이 둘을 가지고있는 여 사장이었는데 그녀가 예쁘고 착하다고 음식점 일을 거의 맡기다시피 했다. 장사가 아주 잘 되는 집이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엄마에게 집을 사주었고 엄마의 집은 오빠에게 주었다.

그 후 그 남자는 도문에 있는 김보경의 엄마 집에 전화를 몇 번 해왔다가 오빠에게 욕을 먹고 더는 전화를 안 한다고 했다. 엄마는 1998년 3월 29일에 중국으로 들어갔다.

“강릉 ‘동보성’의 사장님께는 지금도 통화하곤 해요. 언제든 저를 구해준 은혜를 갚고 싶어요. 그 때 정신을 잃은 저를 병원에 싣고 가 입원시키고 입원비용을 전부 지불했었어요.”

“그 남자와 가장 중요한 갈등은 무엇이었어요?”

묻고 나니 스스로도 어처구니없는 물음이었다 싶었다. 그런 정도에 무슨 갈등운운이 필요한가. 첫 시작부터가 잘못이었다. 첫 연인에 대한 아픔에서 도망하려는 그녀의 급급한 마음이 한 남자를 무책임하게 따라나서게 했다.

“그 사람에게 저는 아내인데, 자질구레한 생활문제에서도 저의 말은 들어주지 않았어요. 저는 중국서 왔기 때문에 저의 말은 들을 것도 없다는 거예요. 자기 말은 틀리더라도 거역하면 안된다는 거예요. 음식을 하면 맛이 없다고 먹지 않고 트집을 썼어요. 그 동안 저는 동네사람들과도 만나지 못했어요. 못 만나게 했어요. 감옥살이였죠. 여하튼.....여하튼, 강릉 전체가 싫어요.”

그녀의 대답도 막연했다. 두 사람 사이에 맞는 부분이 많으면 중요한 갈등이라는 것이 있겠지만, 전체가 안 맞는데 중요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구분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녀의 마지막 마디의 말이야말로 그녀 진실이었다.

나와의 이야기가 그녀의 과거를 건드렸기에 그녀는 한참동안 첫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돈을 벌면 그 남자를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저의 친구가 그 남자에 대한 소식을 가끔 듣나 봐요. 10만원(한화 1천3백만원)을 내면 감형될 수 있대요. 친구들이 알아서 한다고 하는데, 돈벌면 진짜 돕고 싶어요. 그 남자 심장병이 있어 더 힘들 거예요.”

지하철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한 한국인 남자가 곁에 있었다. 나는 그 남자랑 결혼할거냐고 물었다.

“첫 남자와 너무 깊이 사랑했기 때문에 이 남자와는 아직도 결혼할 생각이 안드나 봐요.”그녀의 솔직한 표현이었다. 그러나 곧 “지금 사는 게 편해요”라고 대답하며 방긋 웃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해탈된 것 같은 편안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함정에서 금방 해탈되었을 때의 안도의 느낌과 같은 것이 아닐까? 그녀 인생에는 여전히 첫사랑과 첫 결혼을 잊게 해줄 수 있는 힘이 필요했다.

인생은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고 어떤 때에는 반드시 탈출구가 필요한 때가 있다. 김보경의 경우 한국결혼은 하나의 탈출구였다. 그만큼 선택이 쉬웠다.

일생의 문제인 결혼을 서로 한번 만나는 것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한국남자들과 조선족 여자들의 결혼이다. 이런 결혼은 결혼을 목적으로 하는 한국 남자의 경우에는 가장 본능적인 문제해결이 기본일수밖에 없다. 기본이라는 뜻은 다른 여건을 고려할 수 있는 시간, 공간이 마련되어있지 않다는 뜻이다. 즉 여자를 만나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겠다는 것이다. 중국조선족 여자의 경우는 결혼을 목적으로 한 한국남자보다는 더 복잡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코레안드림’ 때문이다.

‘코레안드림’을 위해 한국으로 떠나는 여성들은 대방의 건강상황, 직장관계, 경제력 등 여러 차원에서 볼 것이고, 탈출구를 찾는 여성에게 있어 재혼인 경우는 총각이거나 아이가 없는 남자를 찾으려고 할 것이다. 대방의 경제상황, 가족상황, 나이, 직장 등에 대한 극히 제한된 정보로 대방을 결혼을 결정하게 되는데, 이 속에는 허위 된 정보가 있을 가능성이 더 많다. 짧은 시간에 대방의 인간성을 다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가장 확실한 근거란 다만 시각에 의한 대방의 용모밖에는 없다.

여하튼 조건을 앞세우는 것이 한국남자와 조선족남자의 결혼이다. 그 외 가장 중요한 인간성문제에 대해서는 불확실성을 느끼면서도 다만 요행을 거는 수밖에 없다. 그만한 시간, 공간,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김보경과 같이 시급히 탈출구를 찾는 조선족여성에 있어 한국결혼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이 있다. 대신 이런 탈출구는 거품이 가득한 유혹일수도 함정일수도 있는 것이다.

“계속 한국에서 살 생각이세요?”
라고 물었더니 그녀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가 모국생활에서 멍든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고 행복한 가정에 참된 여자의 생활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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