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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75>
환영 2
이튿날 새벽, 서쪽 벽 위에 동학과 민족운동의 지도자들 모습이 계속 보이더니 동학 토벌과 반민족행위자들의 흉한 모습들이 또한 계속 보였다. 조병갑, 홍계훈, 이용태, 이완용, 이용구, 송병준 등은 알아보겠으나 그밖엔 누구인지 모를 수십 명의 모습들이 꼭 그 무렵의 흑
김지하 시인
2003.05.09 09:14: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74>
환영 1
누구던가 서울에서 손님이 와, 누구던가 서울에서 거절할 수 없는 손님이 와 술을 많이 많이 마시고 그 뒤로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물만 마시고 누워 있었다.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데 이불 위로 같기도 하고 옷 위로 같기도 하고 맨살 위로 같기도 하고 날카로운
2003.05.07 08:55: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73>
검은 산, 하얀 방
그 뒤 며칠 있다 어둑어둑한 저녁 때 가운뎃방 흐릿한 전등 밑에서 내 마음 속에서부터 갑자기 무슨 소리가, 무슨 시행들이 울려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아내에게 받아쓰라고 부탁하고 곧 구술하기 시작했다. 제목까지도 흘러나왔으니 '검은산 하얀방'이었고 즉각 나
2003.04.26 08:57: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72>
향목(香木)
그 토성 주변에 독충이 많고 특히 사막 특유의 지네와 전갈이 많은데 무역풍이 불 때 가장 독이 많고 물려서 목숨을 잃는 사람도 많아 토성을 지을 때 그 독에 대해 가장 강력한 해독제요 방독제인 인근 사막 오아시스에 피는 여러 꽃잎들을 채취하여 흙벽돌 만들 때 짓찧어
2003.04.25 09:48: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71>
무화과
무화과는 비파와 함께 윗녘지방엔 없는 과일이다. 내 어렸을 적 목포에서 보고 강원도와 서울에서 구경도 못하던 무화과를 해남에서는 남동집 마당에서 늘 보고 또 그 열매까지 따먹으니 새삼 고향의 정겨움을 말로 다 못한다.바로 그 〈무화과〉란 제목의 시를 쓴 것이 그무
2003.04.24 08:59: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70>
음유시인
그림 잘 그리고 시를 잘 쓰고 공부 잘하는 큰놈 원보의 재능은 이미 잘 알고 있었으나 작은놈 세희의 재능에 대해서는 나는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혼자서 가방을 메고 유치원에 가는 아이 뒷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여서 전학이란 쉽게 할 일이 아니로구나 생각만
2003.04.23 08:43: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69>
백방포(白房浦)
해남에서 바다쪽으로 조금 나가면 강진쪽과 땅끝쪽 길이 갈라지는 곳 부근에 백포마을, 또는 백방포 마을과 함께 그 뒷산인 백방산이 우뚝 서 있다. 본디 섬지방과 제주, 그리고 중국으로 가고 중국에서 오는 배가 드나드는 포구였으며 섬으로 귀양길 떠난 인사의 가족이 귀
2003.04.22 08:53: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68>
손님들
김민기 아우가 결혼한 뒤 조선옷을 입고 들렀고 송기숙 형님이 화가 홍성담 아우와 함께 들렀으며 내게 앞으로 낼 책의 인세를 선불해서 집값을 치르도록 도와준 외우(畏友) 최동전 형이 왔었다. 그리고 악어 형님 부부가 도예가 윤광조 형 부부와 처남들 강준일, 강준혁 등
2003.04.21 08:55: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67>
아내의 집
예전에 〈바다아내〉라는 영화가 있었다. 폭풍으로 배가 파선한 뒤 뗏목 위에서 한 수녀가 한 남자에게 마치 아내와 같은 존재가 되었길래 훗날 그 남자가 그 수녀를 내내 찾아다니는 영화다. 그 바다에서만의 아내노릇을 하는 검은옷 벗은 수녀의 한때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
2003.04.19 08:59: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66>
문경새재
문경새재 바로 밑 고사리골에는 이대 김옥길(金玉吉) 총장의 별장이 있었다.술과 내적 갈등으로 인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나의 건강에 대한 소식을 듣고 김총장께서 나를 고사리로 초대했다. 참으로 편안한 땅, 즉 '노안지(老安地)'였으니 총장님께는 더없는 쉼
2003.04.18 08:4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