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잘 그리고 시를 잘 쓰고 공부 잘하는 큰놈 원보의 재능은 이미 잘 알고 있었으나 작은놈 세희의 재능에 대해서는 나는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혼자서 가방을 메고 유치원에 가는 아이 뒷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여서 전학이란 쉽게 할 일이 아니로구나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오후에 마당의 나무들 사이에서 혼자 돌아다니며 놀던 세희가 마루 끝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나에게 뜬금없는 질문공세를 퍼붓는 것이 아닌가!
"하늘은 왜 파랗지요?
바다는 왜 움직이지요?
흙은 무얼 먹고 살지요?
고양이는 왜 노랗지요?
나무는 왜 파랗지요?
나는 어디서 왔지요?"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서 귀퉁이에 있는 나의 서재로 꽁무니빼고 말았다. 어두운 서재에 들어와 앉은 나는 담배를 한 대 피워물고 빙긋 웃었다. 그리고는 혼잣말로 한마디,
"됐어!"
그런데 며칠 지나 한밤중에 식구들이 안방에 모여앉아 놀고 있는데 세희가 손짓발짓으로 춤추는 시늉을 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지금 그 내용은 기억해낼 수 없으나 나와 아내와 원보 세 사람이 다 깜짝 놀라서
"시인이다, 시인!"
"가수다 가수!"
하고 외쳤다.
"그래, 이 아이는 음유시인(吟遊詩人)이 되겠구나!"
이 소식을 전화로 전해들은 제 외할머니가 즉각 피아노를 한 대 사서 우체국을 통해 부쳤다. 세희가 처음엔 피아노를 좋아라고 둥당둥당 제멋대로 두드리며 놀더니 가까운 이웃에 있는 피아노선생에게 악보집을 갖고 가 며칠 배우다가 그만 선생에게는 물론 피아노 근처에도 영영 가질 않았다.
'이 아이는 음악은 못하겠구나!'
그런데 요 얼마전 '사디'라는 좋은 디자인학교에 입학해서도 공부를 때려치우고 일본풍의 '비쥬얼 락'을 한다고 기타를 배우러 다니더니 요즈음은 그것도 다 엎어버렸다.
'이 아이는 결국 문학을 하겠구나!'
그러나 인터넷 소설과 게임 시나리오 작가로 나선 원보와 함께 세희까지 문학을 한다면 온 가족이 문학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 생각을 바꾸기로 했으니 해남에서도 그 무렵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
'무엇을 가르치려 하지 말고 자유롭게 크도록 분위기만 만들어줄 것!'
해남 때의 한 사진이 지금 남아 있다. 음유시인의 가능성을 보였던 그무렵 유치원에서 막 돌아온 듯 가방을 멘 세희의 어깨를 안고 내가 함께 찍은 것인데 내 얼굴이 몹시 파리하다.
'아! 내가 아팠던 지난 십년 동안 이 아이의 우울을 어떻게 갚아줘야 한단 말인가?'
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빚이 많다. 그저 그 빚만큼 열심히 살다 가는 것말고 또 그 무슨 힘, 무슨 돈이 있어 그 많은 빛을 갚을 수 있겠는가?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