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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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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68>

손님들

아내가 내려올 때 장모님이 다녀가셨고 새 집을 얻자마자 김옥길 총장님이 내려와 축복을 해주고는 매우 흡족해하며 돌아가셨다. 얼마 안 있어 지주교님이 오셨다. 해남 아우들과 함께 진도대교와 우수영을 구경시켜드렸는데 건강이, 그 당뇨병이 심상치 않은 듯했다. 나와 아내가 행복해하는 걸 보시고 왠지 도리어 쓸쓸한 얼굴로 돌아가시었다.

이어 장선생님과 원주 일행이 한꺼번에 들이닥쳐서 해남 아우들과 함께 땅끝 사자봉에 올랐다 돌아와 큰 여관방에서 선생님은 아우들에게 일일이 난초 한 장씩을 쳐주시었다. 그런데 가실 때 내게 하신 한마디가 덜컥 가슴에 체했다. 그 한마디로 인해 나는 오래도록 고민을 해야 했다. 어머니에 관한 것이었다.

김민기 아우가 결혼한 뒤 조선옷을 입고 들렀고 송기숙 형님이 화가 홍성담 아우와 함께 들렀으며 내게 앞으로 낼 책의 인세를 선불해서 집값을 치르도록 도와준 외우(畏友) 최동전 형이 왔었다. 그리고 악어 형님 부부가 도예가 윤광조 형 부부와 처남들 강준일, 강준혁 등과 함께 와서 하룻밤 묵어갔다.

또 김기팔 형님이 박정기 형과 함께 내려왔다. 스님들도 들르고 목사님들도 들르고 신부님들도 들르고 증산교 사람들도 들르고 해남, 영암, 강진과 광주, 목포 양반들도 들렀다. 맞이하는 내쪽에서 보면 매일매일이 장서는 것과 같았으니 내 입에 술이 떨어질 날이 없었고 아내는 반찬과 안주 장만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

아아,

그 매일매일이 기쁨이고 행복이었으나 아내에겐 더 없는 고역이었고 나에겐 병의, 새로운 큰병의 시작이었다.

아내의 집은 바람이 드셌다. 바람을 재우고자 안마당에도 키높은 큰나무들을 심은 모양이었으나 그 때문에 집안은 나무 스치는 바람소리로 가득찼다. 밤엔 무엇인가 어둡고 스산한 그림자가 일렁거리고 도둑괭이들 울음소리에 적막이 적막대로 지속되는 때가 없었다. 장선생님은 마당의 큰나무들 때문에 자손이 지리지 못할 터이니 베어버리든지 뽑아버리라 하셨다. 큰나무들을 동섭 아우가 뽑아다 병원에 옮겨심는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큰나무들이 없어지니 바람이 너무 심해서 마당에 가득찬 돌맹이들마저 울부짖는 듯했다.

하루는 아침에 대문을 열던 아내가 소스라쳐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바로 대문 앞에 피투성이 괭이 한 마리가 누워 있었다. 불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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