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는 비파와 함께 윗녘지방엔 없는 과일이다. 내 어렸을 적 목포에서 보고 강원도와 서울에서 구경도 못하던 무화과를 해남에서는 남동집 마당에서 늘 보고 또 그 열매까지 따먹으니 새삼 고향의 정겨움을 말로 다 못한다.
바로 그 〈무화과〉란 제목의 시를 쓴 것이 그무렵이다.
돌담 기대 친구 손 붙들고
토한 뒤 눈물닦고 코 풀고 나서
우러른 잿빛 하늘
무화과 한그루가 그마저 가려 섰다.
이봐
내겐 꽃시절이 없었어
꽃없이 바로 열매맺는 게
그게 무화가 아닌가
어떤가
친구는 손 뽑아 등 다스려 주며
이것 봐
열매 속에서 속꽃 피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일어나 둘이서 검은 개굴창가 따라
비틀거리며 걷는다
검은 도둑괭이 하나가 날쌔게
개굴창을 가로지른다.
동향 목포 출신의 평론가 김현형이 공들여 〈무화과〉를 평한 〈속꽃 핀 열매의 꿈〉이란 글이 있다. 그 평문의 맨 마지막이 "아아, 어둡다! 컴컴하다!"로 끝난다. 절묘한 예상이다. 나는 이 시 이후로 그리도 오랜 세월을 앓았던 것이니 이 시 안에 이미 어두운 예감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시란 짓거나 쓰는 것이 아니다. 시란 속에서 떨리고 밖에서 흐르는 넋의 감응이요 반응이니 하나의 예감인 것이며 좋은 평론은 시에 못지 않은 하나의 예상인 것이다.
고인이 된 김현이 떠나기 전에 내게 남긴 한 깊은 우정의 편지 같은 것으로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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