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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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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67>

아내의 집

예전에 〈바다아내〉라는 영화가 있었다. 폭풍으로 배가 파선한 뒤 뗏목 위에서 한 수녀가 한 남자에게 마치 아내와 같은 존재가 되었길래 훗날 그 남자가 그 수녀를 내내 찾아다니는 영화다. 그 바다에서만의 아내노릇을 하는 검은옷 벗은 수녀의 한때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그 조건은 아마도 순결과 순정에 있었을 것이다.

나는 왜인지는 모르나 해남시절의 그 남동집을 '아내의 집'이라고 불러왔다. 그 남동 시절의 그녀가 왜 그리도 아리따웠던지! 그리고 두 아이는 왜 그리도 싱싱하고 실겁고 귀여웠던지!
아내는 내가 전화한 지 며칠 안 있어 이삿짐을 싸가지고 아이들과 함께 내려왔고 우리는 해남 단군전(檀君殿) 건너편의 대웅아파트에 방을 하나 얻었다. 그동안 동섭과 그밖의 여러 해남 아우들이 집을 알아보고 있었다.

한여름.

햇빛은 너무 뜨거워 무지개빛을 띄웠고 풀들은 너무 시퍼래서 차라리 자주빛을 띄웠다. 낮에는 아내와 아이들 함께 밥과 김치를 싸가지고 들판으로 연못으로, 가까이 있는 바다로 마구 놀러다녔고 밤이면 단군전 앞 잔디밭에서 풀모기에 뜯기며 튀김닭을 먹거나 소주를 마셨다.

아아!

그 한시절의 이름을 나는 감히 '행복'이라고 부른다. 날이 저물면 모기장 안에 누워 아이들에게 옛이야기를 해준답시고 엉터리같은 만담이나 무시무시한 괴담을 생각나는 대로 그 자리에서 지어 들려주거나 이상한 짐승울음소리를 흉내내서 아이들을 무서워하게 만들었다. 아이들 그 좋아하는 모습이라니!

그러나 나의 술만은 고질이었다.

아침에 눈만 뜨면 모기장 안에서 머리맡에 놓은 소줏병을 나팔분다. 그래야 제정신이 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온종일 마시고 밤엔 밤대로 밤이라고해서 또 마신다.

새 집에 들어가면 단호히 끊겠다고 매일 다짐했고 그때까지만 마신다는 거였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작은 놈 세희(世熙)를 데리고 단군전 앞길 건너에 있는 큰 아름드리 소나무숲에 산책 갔다.

솔밑에 있는 미끄럼대에 올라간 세희가 내게 보여주려고 재주부리는 걸 멀찌감치 보고 있는데 갑자기 한두 발짝쯤 앞에 사람 몸둥이만한 커다란 솔가지 하나가 쭈욱― 하니 큰소리를 내면서 찢어져 쿵― 하고 땅에 떨어졌다.
나는 어리둥절, 사태파악을 잘 못했다. 가까이 있던 사람 몇이 몰려와 그 솔가지를 가늠해보더니 나더러

"까딱했으면 큰 변 볼 뻔 했구망요―."

두발짝만 앞에 가 있었으면 죽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커다란 나뭇가지였다. 왜 난데없이 생솔이 찢어지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갔다. 그런데 그때 아파트쪽으로 난 길로 동섭 아우가 바삐 다가왔다.

"성님! 아무 일도 없으시오?"

"아무 일도 없는데…… 왜?"

"허, 그것 참!"

동섭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자주 가는 한 다방의 친한 레지 하나가 어젯밤 꿈을 꿨는데 그 꿈에 내가 죽었더라고 아침에 전화해서 괜찮으신지 알아보라고 하더란다.

"원 재수없이……."

그렇게 뇌까리다가 불현듯 깜짝 놀랐다. 이것이 죽을 운수 아니던가?

너무 좋아하고 너무 까불고 너무 퍼먹고 너무 떠들어대니까 단군할아버지가 노하신 걸까?

조짐은 계속되었다.

그날 낮 밖으로 난 큰 유리문을 열고 그 문 앞에 있는 손바닥만한 화단에 핀 들꽃을 보고 있는데 웬 새 한 마리가 휙 날아와 화단에 툭 떨어져 부르르 떨다 이내 죽어버렸다. 머리는 피투성이인 채로!

아내가 땅을 파고 새를 묻더니 한번 부르르 떨고 나서 나더러 오늘은 밖에 나가지 말란다.

집은 쉽사리 구했다.

남동끝자락 옛 천석꾼 천씨네 고가(古家)였다. 사랑채였는데 워낙 커서 본채를 방불했고 문간방도 대문 양옆에 둘씩 달려 있었다.

그 집.

남동집.

그렇다. 그 집이 바로 '아내의 집'이었다. 왜냐하면 그 집에서의 몇 달간이 아내에겐 아마도 일생에 가장 애틋하고 행복하고 아리따운 시절이었으니까.

나는 아침에 큰 막사발로 두잔씩이나 작설차를 마셔 작취(昨醉)에서 깨어나면 점심 때까지 마당의 돌을 치워서 한편에 돌덤부락을 만들고 흙을 골라 텃밭을 가꾸었다. 내 생전 이렇게 손발을 놀려 열심히 일해보긴 처음이었다. 아내는 가까운 시장에 가서 맛있고 싼 반찬거리들을 장봐다가 점심을 짓고, 나는 손발을 씻고 나서 학교와 유치원에서 막 돌아온 두 아이와 함께 밥을 먹는다. 아마 그무렵은 꼬박꼬박 점심을 두그릇씩 비웠던 것같다.

아내 얼굴에서 기미와 주근깨가 희미해지고 밝은 흰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리털이 새로 돋기 시작했다.

오후엔 해남의 아우들, 김성종(金聖鍾), 천용식(千鏞植), 김광식(金光植), 정지산(鄭址汕) 아우와 박순태, 임영오 아우들이 번갈아 오고 저녁엔 병원의 동섭과 동국 형제가 김기종(金奇鍾) 등 여러 친구들을 데리고 놀러왔다. 그야말로 매일이 축제였고 매시간이 굿이었다.

나는 젊은 그들에게 새로운 생명사상과 지역공동체운동에 관한 씨를 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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