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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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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72>

향목(香木)

초가을이 왔다.

일년 중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시절, '토용(土用)'이 온 것이다.

어느 날 저녁 때 놀러온 동섭 아우와 마루에서 과일을 먹고 있을 때다. 어디선가 기이한 향기가, 짙은 향기가 나는데 짙은 며칠전부터 꼭 이맘 때면 코 끝에 와닿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문득 내가 20대에 즐겨 읽던 T. E 로오렌스, 그러니까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쓴 자서전인 《지혜의 일곱 기둥》이란 책속에 아라비아에서의 고고학 답사중 무역풍이 불 무렵 폐허가 된 한 토성에 들어가 그늘에 앉았을 때의 기사가 생각났다.

로렌스는 그때 바람 따라 흘러오는 아주 복잡한, 그러나 짙은 향기를 맡는다. 그것이 흙벽돌에서 나는 것임을 짐작한 로렌스는 벽돌 하나를 갖고 그 뒤 다마스커스의 한 이슬람고고학자에게 감정을 의뢰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그 토성 주변에 독충이 많고 특히 사막 특유의 지네와 전갈이 많은데 무역풍이 불 때 가장 독이 많고 물려서 목숨을 잃는 사람도 많아 토성을 지을 때 그 독에 대해 가장 강력한 해독제요 방독제인 인근 사막 오아시스에 피는 여러 꽃잎들을 채취하여 흙벽돌 만들 때 짓찧어넣어서 토성을 축조했으므로 무역풍이 불 때 바람을 타고 그 여러 꽃잎들의 복잡한 향기가 진하게 풍기는 것이며 그 효과로 지네와 전갈들이 토성 주변을 얼씬거리지 않게 되는 것이라고.

나는 문득 기억에 떠오른 이 이야기를 상기하며 동섭 아우에게 물었다.

"이 집 지을 때의 이야기들을 어른들한테 들은 일이 있는가?"

"야, 그라믄이라우, 들었지요 잉―."

"뭐라고 그러던가?"

"기둥이나 석까래용으로 나무를 베어다가 우선 흙속에 오랫동안 묻어놓고요, 한참 지난 뒤에는 그 위에다가 톱밥을 얹고 불을 지른다고 합디다. 그라믄 벌거지가 안 먹는다고―."

"또 다른 이야기는? 재목에 향나무 섞어 쓴다는 얘기는 없던가?"

"아 참, 아주 고급 향목을 섞어 쓴답디다. 그런디 그 향기가 독충이 제일 독이 많이 오르는 요즘같은 초가을에 제일 진하게 냄새를 풍긴다고요. 그래서 독충이 못 덤빈다고 하든디요 잉―."

"아항! 역시 그렇구나! 이슬람문화만 대단한 게 아니야! 우리의 민족문화도 그만큼 독과 향에 대해 알고 썼어. 그러니 요즘의 빈대 모기잡는 킬러가 얼마나 우스운가 말이야! 독과 향이라! 독과 향이라! 독충과 향나무라!"

"참말로 그렇구만이요 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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