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2일 2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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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구두 신고 열심히 헛 돈 쓰는 정권"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36> '삽질 전문가' MB의 '삽질 에러'
또 4대강의 다리 하나가 붕괴조짐을 보였다. 경남 창녕군 남지읍 남지리와 함안군 칠서면 계내리를 잇는 남지 철교다. 교각 한 개가 땅 속으로 30cm가량 내려 앉아 상판 3개가 기울며, 다리에 금이 간 게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의 붕괴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4대강 사업
오홍근 칼럼니스트
"검찰·조중동·청와대…新삼권분립시대"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35> 잘못 굴러가는 나라
삼권분립이란 다 알다시피 국가의 권력을 입법ㆍ사법ㆍ행정의 3권(三權)으로 나눠 서로 견제하게 함으로써, 권력의 남용을 막고,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 조직의 원리다. 요컨대 3권이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정치 제도다. 불행하게도 이나라 현대
4대강사업, '홍수예방과 무관' 확인됐다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34>'24조 원' 제길 찾아 보내줘야
중부지방 폭우가 시작된 7월 26일 아침 한 보수 신문이 최근 장마 이후 4대강의 안전도를 평가한 단독기사를 크게 보도했다. 토목과 환경 분야 전문가 8명에게 의뢰해 7월 21일부터 3일간 조사해 보았더니,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올해 장마에서 홍수예방효과를 거뒀다"는 분
사설정치판의 사설 파이프라인 걷어내야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33>'공정사회' 내주며 '엿'바꿔 먹지 말라
서울시내 한 백화점에서 인접 공용도로를 불법으로 점거하고는, 한 해 2000만 원 이상 어치를 사가는 VIP고객들의 외제차만을 그 자리에 주차해 주는, 희한한 광경이 며칠 전 TV뉴스에 나왔다. 흔히 볼 수 있는 소소한 부조리의 한 모습이라 치부해 버리면 그 뿐일 수도 있었
'도청' 목적은 보도인가, 도둑질인가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32>민주당 도청 사건, '장물아비'까지 드러났다
민주당 대표실 도청의혹 사건을 놓고 세간의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일부 언론과 야당에서, 이번 사건이 명실 공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에 의해 저질러졌다 주장하고, KBS가 관련 사실을 부분적으로 시인하고 있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가 어렵다. 지금
'4대강 재앙' 시간이 없다. 당장 해야 할 일은…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31>수렁에 더 깊이 빠지기 전에
4대강이 심상치 않다. 엄청난 폭우가 쏟아진 것도 아닌데, 이강 저강에서 수상한 소리들이 끊이지 않는다. 철교 무너지는 소리, 둑 내려앉는 소리, 강의 이 구석 저 구석이 사정없이 패 내려가는 소리, 강바닥을 가로지르던 지름 1m나 되는 수도관이 급물살에 부러지는 소리,
윗물이 흙탕물이기 때문이었다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30>MB, 스스로를 역사 앞에 세워보라
임기 60개월 가운데 40개월이 지나갔다. 계산상으로야 20개월이나 남았지만, 대선이 내년 12월이라 실제로 대통령 노릇할 날은 글쎄, 얼마나 될까. 나라는 바야흐로 '비리투성이'다. 윗물인 대통령이 그렇게 말했다. 취임 초부터 윗물이 맑았더라면, 그렇게 40개월
미쳐 돌아가는 세상이 도래하는가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29>자칭 '보수', 건강해져야 한다
바야흐로 미쳐 돌아가는 세상이 도래하는 느낌이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희한한 이야기들이 예삿소리처럼 둥둥 떠다니고 있는데도, 자주 들은 이야기라선지, 사람들은 이제 별로 놀라지도 않는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그렇게 실성해 넋 빠진 '사건
'땅 내주고 쌀 바꿔먹기' 방조만 할 것인가?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28>왕따 당하며 박수치는 분단당사자
영토는 헌법이 규정하고 있다. 제 3조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정했다. 북한의 헌법도 '조선반도와 주변도서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영토'로 규정하고 있다. 물론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나 '조선반도와 주
못된 짓 골라하는 게 공정사회인가?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27>'극우'가 '파견'한 북한 특수부대
필자가 '그' 광주에 들어간 건 그해 5월 20일이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31년 전 바로 오늘이다. 취재기자였다. 출장명령을 받고 서울을 출발한 것은 전날인 19일이었으나, 계엄군들이 광주로 접근하는 길을 모두 다 막고 있어 들어갈 수가 없었다. 외부세력의 합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