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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정치판의 사설 파이프라인 걷어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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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정치판의 사설 파이프라인 걷어내야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33>'공정사회' 내주며 '엿'바꿔 먹지 말라

서울시내 한 백화점에서 인접 공용도로를 불법으로 점거하고는, 한 해 2000만 원 이상 어치를 사가는 VIP고객들의 외제차만을 그 자리에 주차해 주는, 희한한 광경이 며칠 전 TV뉴스에 나왔다. 흔히 볼 수 있는 소소한 부조리의 한 모습이라 치부해 버리면 그 뿐일 수도 있었다. 그냥 넘어 갈 수도 있었다. 허나 유명 백화점과 부유층이 서울 한 복판에서, 불법으로 치외법권적 좌판을 벌여놓고, 세상사람 시선 깔아뭉개며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주차금지'와 '견인지역'이란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으나, 백화점 측이 임의로 그어 놓은 주차선이 너무 선명했다. 지나가는 순찰차는 백화점 주차 담당직원의 인사만 받고 유유히 사라진다. 서울시 민원센터에 신고한다. 안온다. 한 시간쯤 지나서 "기자가 취재 중"이라 했더니, 그제서야 구청 단속차량이 허겁지겁 달려온다. '불법'이 불편하거나 무서워해야 할 '세상'은 그 곳에 없었다. 선량한 시민들이 울화통을 터뜨리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세상 살아가는 데 방해받지 않고 그래서 불편 없는, 자기들끼리의 사적(私的) 이익을 서로 보장해 주는 사설(私設) 파이프라인만 보였다. 백화점과 부유층과 단속관청만을 서로 이어주는 특수 파이프라인이다. 시스템이다. 그 파이프라인을 타고 흐르는 것은 결코 '공정(公正)함'이 아니다. 지금 이 나라에서 MB정권이 하는 것과 비슷한 행태다. 이 나라 곳곳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상징적인 사건 하나가 백화점 옆에서 눈에 띄었을 뿐이다.

이 나라는 지금 사설 파이프라인의 전성시대다. 가장 공정하게 관리되어야 할 입학시험 출제과정에서도 감춰진 사설 파이프가 발견되었다. 수험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주관한 상급학교 진학시험의 출제요원이 되었다. 대입수능에서도 그랬고 고입선발고사에서도 그랬다. 모두 "시험을 보는 자녀가 없다"는 사전 각서까지 쓰고, 개인적 이해관계가 있음을 숨겼다고 했다.

이해 다툼의 현장에서 심판을 맡은 사람이 어느 한 쪽 당사자와 은밀한 사설 파이프라인으로 이어져 있다면, '공정'을 잣대로 한 올바른 처리 결과가 나올 수 없다. 특히 교육계에서 거듭 그런 사례가 불거지는 건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말썽 많은 사학분쟁 조정위원회에서 또 그런 잡음이 튀어나왔다. 사립대학 분쟁 조정권을 갖고 있는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위원장이 한 쪽 당사자의 소송을 수임한 로펌의 대표 변호사인 사실이 드러났다.

동덕여대 설립자를 가리는 소송 이야기다. 이 로펌은 바로 회계비리가 드러나 물러난 전 총장 쪽 소송을 맡고 있다. 남몰래 한 쪽 당사자와 진한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이 분쟁을 조정하는 '우두머리 심판'을 맡고 있는 건 '공정'이 아니다. 정부측에서 대놓고 큰 소리를 못 친다는 소리도 들린다. 안팎으로 사설 파이프라인이 난마처럼 얽혀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이야기다.

요즘 이 나라에서 법무부 장관을 하려면 대통령 부인을 "누님"이라 부르고, 그 누님이 "재진아"하고 부를 정도의 사설 파이프라인은 있어야 한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공정'보다, 눈짓만 해도 알아차리고 일을 처리하는, 사적 친분관계가 파이프라인을 타고 흘러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 총장도 장인이 대통령의 친형과 육사동기쯤은 되어야 내정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 권재진 법무장관 후보자. 권 후보자는 김윤옥 여사가 평소 "재진이"라고 부를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고 한다. ⓒ뉴시스

일반 각료들에게도 이런 저런 사설 파이프라인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나라 대통령과 장관들은 비슷한 전력(前歷)이 인연이 되는 동질(同質)의 사적(私的) 인간관계가 '끈적끈적하게' 이어져 있다. 바로 그 사설 파이프라인을 통해 '위장전입', '투기탈세', '병역면제'의 공범의식(위장전입은 주민등록법위반 범죄다)이나 동료의식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도 이 칼럼을 통해 지적했듯이, 이 나라는 MB가 '사조직의' '사조직에 의한' '사조직을 위한' 사설정치를 하는 나라가 되어 있다. 동지상고는 나와야 4대강 삽질에 참여할 수 있고, TK출신이거나 소망교회 신도이거나, 그도 아니면 고대라도 졸업해야(필자도 고대를 나오긴 했다) 얼굴을 내밀 수 있다고 했다. MB는 '공정사회'노래를 불렀으나, '공정'은 애당초 이 정권 가치판단의 기준이 아니었다. 대통령 스스로부터 오로지 사설파이프라인이 모든 것의 잣대라고 했다.

그러나 사설 파이프는 없는 게 좋다. 없애는 게 좋다. 사설파이프를 걷어내지 않고서는 결코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다. '공정'을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우뚝 세워야 한다. 바로 언론이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엿 바꿔 먹는다'는 말이 있다. 한참 오래된 이야기다. 아이들은 고무신이 닳아서 구멍이 나거나 찢어졌을 때 쯤 엿장수에게 갖다 주고 엿을 바꿔먹었다. 아이가 엿에 지나치게 맛을 들이면서 사고가 난다. 새로 사다 준 고무신을 신어보지도 않고 엿을 바꿔먹는가 하면, 안방에 소중하게 둔 도자기까지 들고 엿장수에게 간다. 이 철없는 아이의 행동을 '엿 바꿔 먹는다' 한다. 탄식과 꾸지람이 바닥에 깔려있다.

요즘 특히 이 나라 언론이 '공정'과 '언론의 소임'을 '엿' 바꿔먹는 데 허비하느라 정신을 못 차린다. 공영방송 KBS는 당장 보도 목적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 '도청'을 감행해 놓고도 (설사 '제 3자의 도움'을 받았다 쳐도 도청의 주범은 KBS다) 연유와 책임을 말 하지도 않는다. 사직당국의 수사에도 진전이 없다. 사설 파이프라인 때문인지도 모른다.

백선엽 씨 특집방송은 '까닭을 알 수 없는' 뜬금없는 이야기다. 백 씨는 먹고 살기위해 일본에 불가피하게 협조한 '생계형' 친일파도 아니었다. 일제 때 만주에서 수많은 독립군을 악랄하게 학살한 간도특설대의 악명 높은 중위 출신이었다. 친일 인명사전에도 올라 있는 그를, 난데없이 전쟁 영웅으로 미화한 이유가 무엇일까. KBS는 이승만에 대해서도 5부작 특별방송을 준비 중이라 했다. 그러나 한 마디로 이승만에게는 해방 후 악질 친일파들의 '정리'를 방해한 씻을 수 없는 '죄'가 있다.

반민족특별위원회(반민특위)의 폐지를 밀어붙여 '친일청산'을 봉쇄함으로써, 오늘날까지도 이 나라 현대사가 뒤틀려 있는 비극을 부른 장본인이 바로 이승만이다. 4·19때는 187명이 이승만 때문에 총 맞아 죽었다. 그래서 그는 '학살 독재자'로 낙인 찍혀 해외로 쫓겨간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왜 다른 것도 아닌 국부(國父)로 변신해 나타나는가. 도대체 '친일'과 '독재'의 대명사격인 두 사람은 왜 되살아나는가. 왜 KBS는 엿을 바꿔먹고 있는가. 훗날의 '취직' 때문인가. 후손들의 '친일세탁' 때문인가. 흉흉한 소문이 꼬리를 문다.

MBC도 엿 바꿔먹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PD수첩' 작살을 내더니, PD들 잘못 발령했다고 언론사가 그것도 법원으로부터 쥐어박히는 망신을 당했다. 김미화 씨 몰아내더니 김여진 씨 출연에 겁을 먹고, 임원회의까지 열어 출연금지를 결의하는 별난 짓을 해댔다. "앞으로 MBC에는 출연하지 않겠다"는 명사들의 항의가 줄을 잇는다. 이게 다 언론이 제 길 걸어가지 못하도록 멱살 잡고 있는 최시중 씨 솜씨라고 사람들은 믿고 있다. 그의 손에는 채찍과 엿이 들려있다. 종편이라는 엿 때문에 조중동도 그의 앞에서는 꼼짝을 못한다. 그저 엿 바꿔먹기에 여념이 없다.

대통령과 장관들과 최시중 씨와 언론, 백화점과 부유층까지도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사설 파이프라인을 깔아놓고, '공정사회'를 내주며 총체적인 엿 바꿔먹기를 하는 중이다. 그게 지금 이 나라의 슬픈 자화상이다.

사설정치판의 사설 파이프라인은 모두 걷어내는 게 옳다. '공정사회' 내주며 엿 바꿔먹는 것도 이제 그만 두는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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