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나마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 동안 틀을 갖췄으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삼권분립은 말짱 도루묵이 되었다(MB정권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을 오히려 '잃어버린 10년'이라 한다) '형님'의 막강한 힘과 '영포라인'의 사조직까지 가세하면서, 청와대의 권력은 범접할 수 없는 욱일승천(旭日昇天)의 형국을 이루고 있다. 그 기세 때문일까. 법원 쪽에서는 일부 법관들이 정권 편들기를 했다 하여 국민의 신뢰와 '저울'의 고장 문제가 제기 되고 있는 상태다.
국회가 삼권분립의 한 축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지는 오래다. 이 나라 삼권분립은 바야흐로 한 없이 비틀거리는 중이다. 국회는 특히 검찰 '앞에만 서면 왜인지 작아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위상을 스스로 깎아 내렸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절정을 이룬 것은 지난 6월의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의 좌절이다. 여야 의원들이 대검 중앙수사부의 폐지에 합의했으나, 검찰이 필사적으로 반대하고 나서면서 좌절은 시작되었다.
중수부 폐지에 대한 검찰의 저항은 실로 상상을 초월했다. "상륙작전 중인 해병대 사령부를 해체할 수 없다"면서, '저축은행 수사'를 멈추는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수사로 말하겠다"는 협박성 성명까지 발표했다.(그때 일각에서는 "그렇지, 국회가 검찰의 사냥터 아니던가"하는 탄식도 나왔다) 사개특위의 여야의원들이 합의한 중수부 폐지안이 백지화 된 것은 청와대 때문이었다.
대통령의 "반대" 한마디로, '폐지'에 합의 했던 여당의원들이 재빨리 '폐지반대'로 돌아섰다. 그렇게 우리사회의 오랜 숙원이던 사법개혁은 물거품이 되었다. 국회는 자기 권위를 지켜 내지 못했다. 켕기는 게 있었는지도 모른다. 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 지휘권 행사 문제를 놓고, 그 요건을 '법무장관령'으로 정하도록 합의한 정부 쪽 방안을, 국회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바꾼 것은, 그나마 작을망정 자기 목소리를 낸 대목이었다. 허나 검찰은 그 대목에서도 반발했다. "합의 위반"이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대통령이 그러지 말라 했는데도 김준규 검찰총장은 사표를 던졌다. "합의가 깨지면 얼마나 큰 결과가 초래되는지 알아야한다"는 그냥 듣기에 거북스런 소리도 나왔다. 검찰은 역시 '겁나는' 조직이었다. MB는 왜 그런 검찰의 손을 들어줬을까. 대통령 산하의 정부기관인 검찰이 그렇게까지 '별난' 반응을 보인 데는, 대통령도 제어하기 힘든 '까닭'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저축은행 사건에 청와대 핵심참모가 관련돼 있어, 서로 타협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알아서는 안 될' 것까지 검찰이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빚어진 사태라는 견해를 말하는 사람도 있다. 여야 합의대로 중수부가 폐지되고, 대신 '공직자비리수사처'라도 생겨서 검찰청을 압수수색하면, '민간인 불법사찰'이건 'BBK'건 관련자료 다 나오게 돼 있다고 핏대를 올리는 사람까지 보였다. 청와대가 검찰의 뜻을 거스르기 힘들었을 것이란 해석이다. 그 힘 센 검찰이 지난 5일 또 한번 막강한 힘을 과시했다.
'저축은행 비리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 조사'특위가 기관 보고의 증인으로 채택한 검찰 간부들이 국회 출석을 거부했다. 검찰총장 직무대행인 대검차장과 대검 중수부장 등 6명에게 동행명령장까지 발부됐으나 그들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수사 중인 사항이어서 형사소추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출석거부의 이유였다. 그러나 여당의원인 특위 위원장은 "불출석은 입법부에 대한 도전"이라 규정하고, 6명을 '국회에서의 증언 감정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 소식을 접한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미 활동을 종료한 '사법제도 개혁 특별위원회'를 다시 구성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중수부 폐지'를 다시 논의하겠다고 했다. 대한민국국회,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참으로 애처롭다. 한상대 신임 검찰총장의 '별난' 취임사도 예사롭지 않은 최근의 검찰 모습과 궤를 같이 한다. 그는 위장전입과 병역문제 등의 논란으로 인사청문회의 경과보고서조차 채택되지 않았으나 임명장을 받았다.
▲ 이명박 대통령은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한상대 검찰총장의 임명을 강행했다. ⓒ청와대 |
엊그제 그의 취임사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종북 좌파세력과의 전쟁 선포'다. 이나라 어느 법조문에도 '종북 좌파'란 말은 없다. 그저 MB정부를 비판하는 견제 언론과 진보세력을, '종북세력'으로 매도해 온 보수언론의 주장과 같은 맥락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법 질서를 어긴 공안사범은 실정법에 따라 처벌하면 된다. 처벌 대상도 못되는 부류를 '종북'이라며 분위기 잡고 겁주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범법 공안사범이 아무 처벌도 받지 않고 있었다면 그 역시 문제다. 검찰에 책임이 있다는 이야기다. '전쟁 선포'의 진짜 의도를 밝히라는 이야기다.
새로운 삼권분립의 시대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회·법원·정부를 대체하며, 새롭게 등장한 힘 센 권력기관을 일컫는 말이다. 그 첫 번째 자리에 검찰이 있다. 검찰은 삼권분립의 한 축이 되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모습으로 떠올랐다. 누구도 함부로 어쩌지 못하는 힘을 갖추고, 견제하면서 균형을 이루어냈다. 청와대가, MB가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검찰 외에 MB가 만든 또 하나의 '새로운 축'이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이다. 조중동은 종편채널이 확실해질 때까지만 해도 최시중 방통위원장 말을 잘 듣는 '순한 양'이었다. 그러나 모든 게 기정 사실로 굳어지고, 첫 방송일이 가까워 오면서, 서서히 MB정권과도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모습을 갖춰 가고 있다.
그들의 힘은 '보도할 가치가 있는' 뉴스를 마음대로 골라잡고, 원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가공·조작할 수 있는 기능과 권리를 쥐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객관적으로 뉴스 밸류가 있는 것도 자기들 필요에 따라 자의적으로 깔아뭉개거나, 확대 보도할 수 있는 권한도 갖고 있다. 그러나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게 있다. 국민들의 알 권리를 소중하게 받드는 소명의식을 외면해서는 안 될 일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분명한 잣대를 지녀야 한다.
신영철 대법관은 촛불시위 관련자들(헌법재판소의 잇단 결정으로 그들에게는 아무 죄도 없는 것으로 결판났다)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도록 휘하 판사들에게 외압을 행사한 법관이다. 그가 서울중앙법원장으로 있을 때 그랬다. MB정권 편들기 위해 그랬다. 그가 2009년 대법관이 된 후, 이용훈 대법원장이 그를 '엄중경고'로 솜방망이 처벌하자 전국의 판사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때 조중동만은 '신 대법관 구하기'에 나선다.
세 신문 모두 사설을 썼다. 그 중 한 사설 제목이 '사법부는 권력만이 아니라 여론 압력에서도 독립해야'였다. 저쪽 '여론압력'은 받아들이지 말고, 이 '여론압력'을 받아들이라는 이야기였다. 4대강의 문제나 사법제도 개혁 문제도 그들 손에 가면 MB정권에 유리하게 포장된다. 그렇게 정권과 상부상조 해왔다.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바야흐로 '검찰'과 '조중동'과 '청와대'가 서로 팽팽하게 새로운 삼권분립의 시대를 열고 있다. '견제'와 '균형'의 모양새도 갖췄다. 그 주변을 뱅뱅 돌면서 '재벌'도 한다리 끼어들려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세월이 하수상하면 별 해괴한 일이 다 일어나게 되어있다. 나라가 정상적으로 굴러가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가슴이 콱 막히는 이 답답함을 가눌 길 없다.
바른 민주주의 하는 대통령, 한눈팔지 않는 국회,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판단하는 법원, 중립 지키며 권한 남용 않는 검찰, 사명감 지켜가는 공기(公器)-언론, 지금이야말로 이런 말들의 제자리를 확실하게 찾아 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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