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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 돌아가는 세상이 도래하는가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29>자칭 '보수', 건강해져야 한다

바야흐로 미쳐 돌아가는 세상이 도래하는 느낌이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희한한 이야기들이 예삿소리처럼 둥둥 떠다니고 있는데도, 자주 들은 이야기라선지, 사람들은 이제 별로 놀라지도 않는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그렇게 실성해 넋 빠진 '사건'들이 이 땅의 초여름을 끈적끈적하게 누비는 중이다.

이른바 '부산저축은행사건'이 터질때만 해도 그 정도에 이르지는 않았으나, '고엽제 매립의혹'이 폭로되고 '남북비밀접촉' 사실이 불거지면서, 이들 세 사건을 하나로 엮어내는 '미친 짓'까지 고개를 들었다. 김 아무개라 자신을 소개한 한 네티즌의 주장은 줄거리야 초등학생용 만화정도의 수준이지만, 최근 이곳저곳에서 눈 부릅뜨는 유사한 억지소리와 궤를 함께하는 것 같아, 우려스러움이 증폭되고 있다.

'광주의 특정고교 인맥이 주도한 금융마피아 사건'(그렇게 불렀다)이 터져, '남한 친북좌파세력'이 수세에 몰리고 있다는 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금융마피아 사건'을 은폐하고, '친북좌파'들을 살리기 위해, '미군의 고엽제 매립의혹'이 제기됐으며, 북한이 '남북비밀접촉'사실을 폭로했다는 스토리가 등장한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김정일 정권이 남북한 좌익세력을 총동원해 대한민국을 분열시키려는 계략이라 했다.

여느 때 같으면 온라인을 떠도는 '그냥 해보는 헛소리'라 보고, 웃어넘기거나 무시해 버릴 수도 있으나,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라는데 있다. 엊그제 '반값등록금 시위'나 6·10 민주항쟁 기념일과 관련해서도 터무니없는 소리는 나왔다. 보수단체들은 유인물에서 반값등록금 집회는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내란 시도"라 했고, "6월 10일은 수치스런 반란의 날"이라 단정했다. 그래서였을까, 학생들에게 정부는 등록금 내기 힘들면 유급지원병으로 군대나 가라고 했다.
▲ 청계광장에 모인 시민들. 일부 한나라당 의원은 반값 등록금 집회에 대해서도 '색깔론'을 제기했다. ⓒ프레시안(최형락)

허나 '반값 등록금'은 이 나라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후보의 대선공약이었다. 6·10 민주항쟁을 기념하는 행위를 좌파행사라 시비해서도 안 될 일이었다. 어느 대목이 '수치스런 반란의 날'인지 알 수가 없다. 심지어 남과 북의 수뇌가 합의해 발표한 6·15 선언을 '반역 선언'이라며 폐기하라고 악도 쓴다. '국가 정통성'과 '정부 차원 외교행위의 일관성과 연속성'을 깡그리 부정하라는 이야기다.

"친북좌파가 창궐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종북세력은 북쪽이 그렇게 좋으면 북으로 보내라"는 외침도 있다. "나는 북쪽이 좋은 종북세력"이라 하는 사람 별로 눈에 띄지 않고, 전처럼 감옥에 갈만한 '사상범'이, 따로 모여 악을 써야 할 만큼 있어 보이지 않는데도 뜬구름 잡듯 자기들끼리 그런다. 온라인상에도 그런 소리가 부쩍 늘었다.

특히 4·27 재보선 이후 보수우파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지나친 위기감을 느끼는 듯하다. 김아무개 씨도 내년 대선을 걱정하고 있다. 자신들의 '안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기들 빼고는 모두 '종북'이나 '좌파'로 몰아대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때맞춰 대통령은 '80년 광주학살은 북한 특수부대 소행'이라는 주장에 동조하는 인사를 헌법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장관급)에 발탁했다.

발탁된 분은 '5·18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반대' 청원운동을 주도한 '국가 정체성회복 국민협의회'의 발기인이었으며, 현재도 극우성향 단체인 국제외교안보포럼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을 '반미·좌익단체'로 규정하기도 했다. 알다시피 5·18은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분명한 민주화운동이고, 최근 유네스코가 이를 인정했는데도 대통령은 그랬다. 이 나라 정부와 세계가 인정한 민주화운동을 대통령이 부정한 꼴이 되었다.

앞서 김 아무개 씨의 주장은 "이번 고엽제 사건에 미국 좌파와 한국 좌파가 연계돼 있는지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는 턱없는 내용까지 포함돼 유통되고 있다. 특히 한미동맹을 위태롭게 하는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등 "일부 좌익세력의 무리한 요구에 흔들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간곡한 목소리도 적혀있다. 에이전트 오렌지 등으로 알려진 그 맹독성 약제는 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이 땅에서도 뿌려졌다.

마스크나 장갑도 끼지 않은 채 맨손으로 철모에 받아 뿌려댔던 이 땅의 불쌍한 병사들은 이미 고령자들이 되었다. 고엽제 피해자로 남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다. 어느 미군기지 어느 지점에 '드럼통'들이 묻혀있는지 밝혀지지도 않았다. 더 이상의 처참한 비극을 막고 뒷수습을 위해서라면, SOFA 아니라 SOFA 할아버지라도 개정을 검토해야 한다. 미국에 대한 '애정 유무'와는 별개의 문제다.

'무리한' 요구를 해서라도 '흔들림'은 있어야 한다. '일부 좌익세력' 아니라도 그 문제는 요구해야 옳다. 그게 미국에도 좋다. 물론 한미동맹에도 좋다. 더구나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건 '보수'의 중요한 덕목이 아니던가. 그러고 보면 이 나라 보수의 우두머리임에 틀림없는 이명박 대통령부터 진정한 의미의 보수는 아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 민주주의와 인권을 원천적으로 심각하게 후퇴시켰다. 금융권 인사나 물가관리에서 보듯, 시장의 자유와 자율을 깔아뭉갰다.

공동체를 살아가며 이끌어가야 할 명예와 도덕성이 물건너 간 건 이미 오래다.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밥 먹듯 했다. 국민을 우습게 알면서 불안하게 했고, 지금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이야말로 사이비 보수에 엉터리 보수다.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정통 보수우파'의 잣대를 놓고 따져봐도 도저히 해석이 되지 않는 게 이 나라의 자칭 우파요, 자칭 보수다. 해괴한 우파요, 해괴한 보수다. 바로 한국형우파, 한국형 보수다.

자기들끼리 배타적 울타리를 쳐놓고, 자의적으로 구분해 명명(命名)한 '좌파'들을 향해 손가락질 해대는 게 한국형 사이비 보수의 본 모습이다. 이 땅의 보수라 자처하는 사람들은 이제부터라도 보수로서의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한눈이나 팔면서, 자기편이 아니라고 멋대로 경계선 그어대며 종북이니 빨갱이니 단정해 비난을 일삼는 건 자신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다. 이 나라 사이비 보수들은 건강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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