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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 목적은 보도인가, 도둑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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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 목적은 보도인가, 도둑질인가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32>민주당 도청 사건, '장물아비'까지 드러났다

민주당 대표실 도청의혹 사건을 놓고 세간의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일부 언론과 야당에서, 이번 사건이 명실 공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에 의해 저질러졌다 주장하고, KBS가 관련 사실을 부분적으로 시인하고 있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가 어렵다.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지난달 23일 민주당 대표실에서 최고위원과 문방위원들이 비공개로 논의한 내용이 누군가에 의해, 발언의 토씨 하나 틀림없이, 한나라당에 건너갔고, 한선교 의원이 이를 기자들 앞에서 읽어댔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수사의뢰를 받은 경찰은 KBS 정치부의 한 기자 집을 압수 수색했으나, 이 기자의 휴대전화와 노트북 컴퓨터가 이미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다고 했다.

다른 곳도 아닌 국회에서, 제1 야당 대표실의 회의 내용이 고스란히 탐지(또는 도청) 됐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사태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야당의 사무실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도청 미수 사건이었지만, 당대표 사무실까지는 노리지 않았다. 더구나 이 나라의 야당 대표실에서 '탐지된' 내용이 흘러들어 간 곳은 여당 국회의원의 손바닥이었다. 후진국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저질러진 것이다.

사건 발생 20일이 다돼가는데도 두세 가지의 분명한 사실을 빼놓고는 아직 도 밝혀진게 없다. 도난품(회의 내용)이 분명히 있고, KBS가 관련돼있으며, '장물'이 흘러간 곳과 '장물아비'가 나타났을 뿐이다. '도둑'은 아직 특정되지 않았다. 민주당 대표실에서 '도난'당한 '회의내용'과 한 의원 손에 들어간 '장물'은 동일 품목이 분명하나, '회의내용'을 구체적으로 누가 한 의원에게 전달했는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 김인규 KBS 사장. ⓒ뉴시스
'장물' 자랑을 하다 '장물아비'로 밝혀진 한선교 의원은 민주당의 '발언록'을 공개 하면서, 발언록의 출처가 민주당이라 하고는 비행기를 탔다. 박희태 국회의장과 함께 유럽 출장길에 올랐다. 경찰은 출석요구서를 보냈으나 사람들은 국회의원 신분인 한의원이 경찰에 쉽게 나오지 않으리라고 보고있다. 워낙 희한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KBS 사장이 '벽치기'운운하며 벽에 '귀대기' 취재의 가능성을 말하더니, 11일 KBS 정치부는 "제3자의 도움을 얻어 회의 내용을 '파악' 했다"며 "언론자유 수호와 취재원 보호라는 언론의 대원칙을 지키기 위해 제3자의 신원과 역할에 대해 밝히지 않겠다"는 발표문을 내놓았다. KBS의 관련사실을 공식적으로 시인한 것이다.

KBS는 지난달 30일 발표한 공식 입장에서 "민주당이 주장하는 '식'의 도청행위를 한 적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KBS 국회 출입 기자가 민주당 회의 장소에 휴대폰을 두고 갔으며, 그 휴대폰의 기능으로 '도청'했다는 '의혹'에 대해 해명하면서였다. KBS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문제는 '제3자'다. KBS가 말하는 제3자는 '민주당 사람'을 지목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민주당 측은 펄쩍 뛴다. 경찰도 민주당 관련 부분을 철저히 조사했으며, KBS 측의 "'알리바이 만들기 해명'이자 '민주당에 대한 음해 의도'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KBS는 '제3자'가 누구인지 밝혀야한다.

전기 통신법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한 자뿐만 아니라 불법 도청을 통해 취득한 대화의 내용을 공개하거나 누설한 자에 대해서도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 정지에 처한다'고 했다.

실제로 '제3자'가 존재한다쳐도 KBS 정치부가 주장하는 '파악'의 주체는 KBS다. KBS나 '제3자'나 모두 불법을 저지른 상태다. 따라서 아무리 "나(우리)는 아니다"고 해도 미안한 이야기지만 KBS측은 주범이 될수 밖에 없다. 당연히 도움을 준 '제3자'는 종범이나 하수인이 될 것이다. 한선교 의원도 범법자이기는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바로 '파악의 목적'과 '파악한 내용의 용도'가 무엇이었느냐다.

아무리 민주당 측에서 공개를 거부한 공간이었더라도 순수한 보도가 목적이었다면, 그리고 '파악'한 내용이 보도에만 활용되었다면, 민주당 측에서 도청의혹 제기와 함께 수사를 의뢰하기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아직 그게 취재 기자와 취재원 사이의 관행이다.

물론 영국에서는 미디어 황제 머독의 '황색 언론'인 <뉴스 오브 더 월드>가 무려 4000명을 도청한 사실이 드러나 바로 엊그제 자진 폐간의 길을 걸어가기도 했다. 보도 목적이긴 했으나 정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KBS는 '보도하기 위해' 민주당 대표실의 회의 내용을 '파악'했는가, 그 '파악'된 내용을 보도에 활용했는가. KBS는 '시청료 인상'이라는 자사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기자들이 민주당 대표실 회의 내용을 '파악'해 한나라당 국회의원에게 넘긴건 아닌가. 다시 묻건대 KBS의 이번 '파악' 활동은 보도 목적이었는가, 아니면 도둑질 해다가 보도 이외의 목적에 쓰려 한 것인가 그것이 알고 싶다. 밝혀야 한다.

그러지 않아도 최근 '언론의 본분'을 놓고 KBS의 행태에 대해 너무나도 말들이 많다. 도가 지나치다는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당장 지난 9일 밤 9시 메인 뉴스에서는 부산의 '희망 버스' 이야기가 한 줄도 비치지 않았다. 전국 각지에서 빗줄기를 뚫고 1만 명이 버스를 몰아 부산에 모인 '사건'이 사실상 국내 유일한 공영방송의 자칭 '대한민국 대표 뉴스'에서는 기사 취급을 받지 못했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지난달에는 MB 측근인 김해수 한국 건설 관리 공단 사장의 부산 저축은행 비리 관련 의혹을 단독 취재 해놓고도 보도를 미뤄, 타사 보도 이후에야 허겁지겁 방송하는 사태도 있었다. 비슷한 사례로, 2년 전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의 의혹 보도 때도 그랬다. 위에서는 보강 취재가 필요하다 했으나, '노무현 시계'나 '박연차 정국' 때는 간부들이 그러지 않았다고 기자들은 말한다.

MB나 최시중 씨의 눈치를 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있다. 시청자를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한다. 결단코 공영방송을 사영(私營) 방송으로 착각하지 말라. 오늘날 공(公)과 사(私)를 구별 못하는게 바로 MB의 비극임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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