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2일 2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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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잠을 깨우는 텃새들
서연의 '농막(農幕)에 불을 켜고' <12>
“여름엔 농부가 새를 깨우고, 겨울엔 새가 농부를 깨운다.”맞는 말도 같다.여름엔 지천으로 널린 게 일이다.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인 새벽에 일어나는 게 미덕일 때가 많다. 겨울은 아무래도 다르다. 사람 나름이겠지만 일이 많지 않은 걸 내세워 게으름 좀 피워보는 걸
서연 농부
자연이 뭐길래
서연의 '농막(農幕)에 불을 켜고' <11>
어느 해 봄, 집 뒤란 가래나무에 길다란 수꽃이 치렁치렁 달릴 무렵이었다. 나무 우듬지에 있는 까치 둥지에서 “꺄악! 꺄악!”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새끼 까치들이었다.어린 생명들이 내는 소리가 반가웠다. 까치 녀석들이 둥지를 짓던 무렵, “그래 새끼 잘 치
겨우살이, 그 머나먼 길의 초입에 서서
서연의 '농막(農幕)에 불을 켜고' <10>
봄은 처녀, 여름은 어머니라 하고, 가을은 문득 미망인이라 하다가 겨울은 또 오갈 데 없는‘계모’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개인적으론, 여성의 자궁처럼 느껴온 겨울을 계모라 하니 놀랍다.잎을 모두 떨군 채 빈 몸으로 서있는 겨울나무들. 마른 잎들이 허리가 꺾인 채
벤 놈과 베인 놈
서연의 '농막(農幕)에 불을 켜고' <9>
산 능선 위로 펼쳐진 하늘이 몹시 푸르다. 구름도 한 점 없다. 그 푸르름이 너무 깊어 보여서 일순 막막하고 아득해진다. 그 와중에 세찬 골바람 한 줄기가 골짜기를 흔들며 지나갔다. 황갈색으로 물이 든 느티나무의 잎들이 그 하늘을 배경으로 우수수 날렸다.가을이 깊어지
동네고모의 쓸쓸한 가을
서연의 '농막(農幕)에 불을 켜고' <8>
“말만한 처녀를 이리 가두어 놓았으니, 얼마나 애가 타셨을까.”“내사 뭐 데리고 있고 싶어서 그랬겠수? 하루라도 빨리 내쫓고 싶어도 어디 마땅한 사람이 있어야지?”어느 집에 시집 못 간 과년한 처녀라도 있다는 말인가. 지나가는 나그네가 들었다면 그런 뜻으로 들었을
바람 바람 바람
서연의 '농막(農幕)에 불을 켜고' <7>
미당 서정주의 바람이 있었다.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다. - <자화상> 부분세인들은 ‘기인’이라 부르고, 친구였던 작가 천승세는 ‘평화를 쪼고 있는 천계(天界)의 파랑새’라 불렀던 천상병의 바람도 있었다.오늘의 바람은 가고내일의 바람이 불기 시작
민씨 노인
서연의 '농막(農幕)에 불을 켜고' <6>
태풍 <매미>는 이 산사(山寺)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 법당 뒤편, 아름드리 소나무 네 그루가 뿌리 채 뽑혔다. 빗물이 대지의 속살까지 질펀하게 적신 직후, 바람은 때를 놓치지 않고 고목의 뿌리를 들어올려 버린 것이다.산사의 사람들에겐 뜻밖의 산판 일이 생겼다. 기계톱
늑대와 추위
서연의 '농막(農幕)에 불을 켜고' <5>
사나흘 집을 비웠다가 돌아왔다.해거름 무렵의 여린 햇살을 받아서일까. 외진 곳에 홀로 서 있는 집이 해쓱해 뵌다. 빗질을 한 흔적이 선연한 토방과 그 위에 가지런히 놓인 헌 고무신 한 켤레, 자물쇠가 채워진 방문, 모두가 노을 빛으로 물들어 있다. 무슨 기척 같은 것도
겨울나기
서연의 '농막(農幕)에 불을 켜고' <4>
2000년 소설(小雪) 무렵에 도시생활을 접었다. 횡성의 이 산골로 들어와 맞는 겨울도 벌써 세 해째다.불을 켜지 않은 방안은 아침나절이 한참 지났지만 무척 어둡다. 집터가 서향인 이 외딴집엔 볕도 잘 들지 않는다. 더욱이 대설(大雪)인 오늘은 절기 값을 하느라 눈까지 내
어머니와 달개비
서연의 '농막(農幕)에 불을 켜고' <3>
봄가뭄이 계속 돼서 걱정이 컸다. 그래도 콩은 잘 올라와 주었다. 콩밭은 팥과 녹두를 심은 곳까지 포함하면 자그마치 1천여 평. 콩은 싹이 나올 때 흙 속에 수분이 넉넉해야 좋다. '가뭄에 콩 나듯이'라는 말은 그저 생긴 게 아니다. 가물면 그만큼 발아가 더디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