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한 처녀를 이리 가두어 놓았으니, 얼마나 애가 타셨을까."
"내사 뭐 데리고 있고 싶어서 그랬겠수? 하루라도 빨리 내쫓고 싶어도 어디 마땅한 사람이 있어야지?"
어느 집에 시집 못 간 과년한 처녀라도 있다는 말인가. 지나가는 나그네가 들었다면 그런 뜻으로 들었을 법도 하다.
'말만한 처녀'란 육묘 기간을 꽉 채운 하우스 안의 배추 모종을 이르는 말이다. 주인은 밭에다 옮겨 심고 싶어도 품꾼 구하기가 어려워 이제야 날을 잡았다고 말을 받는다. 김씨 어르신네 배추 심는 날이었다.
'재 너머 사래 긴 밭' 같은 밭을 보니 다섯 마지기는 되어 보였다. 밭 끝이 아득하다. 나까지 포함하면 품꾼은 일곱. 남자는 나 혼자뿐이었다.
배추나 양상추 따위를 심고 난 뒤엔 말이 나오는 경우가 더러 있다. 포기 간격이 넓다거나 아니면 좁다거나 하는 말이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 가늠을 못했던 "너무 써멀어요" 하는 말은 너무 배게 심었다는 얘기였다. 미리 눈 동냥을 해두는 게 좋겠다 싶어 '고모할머니'라는 분에게 물었다.
"포기 간격을 어느 정도 잡는 게 적당할까요?"
"우리는 일을 머리로 하지 않는다우. 일은 이 손이라는 놈이 알아서 하지. 내 입 쳐다보고 있어봐야 뭔 소리 나올 턱도 없으니 내 손이나 보슈."
고모할머니는 모종삽을 들고 비닐을 피복한 이랑 위에서 몸소 시범을 보여 주셨다. 올해 예순 아홉인 이 할머니는 모종삽을 십자(十字) 형태로 찔러가며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새에 대여섯 개의 구멍을 만들어냈다. 구멍과 구멍 사이의 간격을 보니 길고 짧은 것도 없이 일정하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손이 알아서 일을 한다? 하긴 나도 그런 경우가 있다. 나는 내 E-메일 주소의 비밀번호를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E-메일을 주고 받느냐고? 답은 '손이 알아서 한다'이다. 빈말이 아니다. 머리로 이것인가 싶어 더듬어 가며 비밀번호를 쳐보면 '로그 인 실패' 창이 뜨면서 오류 메시지가 나온다. 이럴 땐 아무 생각 없이 두 손에 맡겨두는 게 상책이다. 손은 정확히 2초 이내에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메일의 창을 열어버린다.
고모할머니라는 분은 이 마을에서 '동네고모'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분이다. 옛 시골 마을이라는 게 일가붙이들이 모여서 집성촌을 이루는 경우가 많은데 고모할머니네도 그랬다. 집안에선 고모-조카 관계가 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집안 사람은 물론이고 언제부턴가 동네 사람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덩달아 고모라 부르게 되면서 '동네고모'가 된 분이다. 동네고모와 나이 차이가 꽤 나는 편인 나는 고모 대신 고모할머니라 불렀다.
"내 막내딸이 올해 서른 다섯이유. 그 아이 돌 전에 영감이 떠났으니 34년 째 혼자 사는 셈이지. 오빠라도 옆에 있었으니 이리 살았지 안 그랬으면 어느 홀애비한테 진작에 업혀 갔을 거야."
내 바로 옆 이랑에서 배추를 심던 고모할머니가 자신이 살아온 얘기를 꺼냈다. 옆에 있었다는 그 '오빠'는 다름 아닌 이 배추밭 주인인 김씨 어르신이다. 두 남매의 집은 서로 이웃해 있다.
"영감 죽고 나서 영감의 둘도 없는 친구가 가끔 찾아옵디다. 혼자 된 친구 마누라 생각코 찾아온 것인데 영감 살았을 땐 허물없이 지냈지만, 어째 갈수록 어려워지데. 나한테는 영감 친구지만, 마을 사람들에겐 과부 집에 찾아온 남정네로 보일 수도 있는 거라. 그래 그 사람이 들려서 술 한잔 달라고 하면 어쨌는지 아유?"
"아니, 어쨌는디유?"
나도 고모할머니의 말투를 흉내 냈다.
"옆집에 사는 오빠를 담 너머로 불렀지. 오빠가 있으면 술이 있다 하고 그래서 오빠랑 같이 셋이서 한 잔 하고. 오빠가 없으면 술도 없다 하고 그냥 돌려보내고. 과부가 어떤 남자랑 술 마시더라, 둘이 어쩌고저쩌고 하더라는 소리처럼 더러운 게 어디 있노?"
모두가 쪼그려 앉은 자세로 배추를 심는데 고모할머니는 그런 자세론 일을 못 했다. 선 채로 허리를 굽혀 배추를 심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쪼그려 앉은 채 일을 하다보면 나중에 오금이 펴지지를 않는다고 했다. 그게 벌써 10년이 넘는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한글을 배우지 못했다. '부처님 오신 날' 연등에 달 자녀들의 이름도 내가 대신 써 준 일이 있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자막이 나오면 읽을 수가 없어 화가 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못 배운 일을 해학으로 풀어놓기도 했다.
"내가 배운 것 없이 이리 무식하게 사니까 안돼 보일지 몰라도 댁보다는 편하게 살거유."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신가유?"
"나를 잡으러 온다고 무슨 편지가 와도, 글을 모르니 두 발을 뻗고 잘 수밖에 없는 기라."
배추 심는 일은 정말 만만찮았지만, 고모할머니의 입담에 취해 얼추 해나갔다. 오후로 접어들면서 이 할머니는 조금씩 뒤쳐지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앞서 나가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이 늙은이 일 뺏어가지 말아욧!"
자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일 못 한다고 소문나면 누가 일 와달라고 불러 주겠는가, 그러니 '발 맞추어 나가자' 그런 뜻이다. 물론 우스갯소리다.
이 할머니는 자신의 말로도 "이렇게 둥글둥글 산다우"라고 했지만, 정말 강의 하류에서나 만날 수 있는 조약돌 같은 분이다. 모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품꾼을 살 때 그 1순위는 항상 이 할머니였다. 같이 일을 해도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둥글둥글 사는 고모할머니에게도 쓸쓸한 날이 왔다. 어느 가을날이었다.
고모할머니의 오빠인 김씨 어르신이 '면민의 날' 체육대회에 참가하겠다고 집을 나서다 갑자기 쓰러지셨다. 구급차를 불렀지만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운명하셨다고 한다.
나도 깜짝 놀랐다. 그 전날 우리 집에 들르셨을 때만 해도 너무 정정하고 활달하셨기 때문이다.
"여든이나 된 나이에 내가 무슨 줄다리기에 나갈 건가 뭐할 건가. 노인들을 위해서 짚으로 새끼 꼬는 시합이 있다고 하니 거기나 바람 쐬는 폭 잡고 나가보는 거지."
"그러잖아도 마을에서 체육대회 때 먹을 돼지도 한 마리 잡아놓았는데 오셔서 놀다 가십시오. 술 한 잔 드릴까요? 소주하고 막걸리가 있는데 어떤 걸로?"
"아궁이에 청솔이 들어가나 마른 솔이 들어가나… "
술은, 청탁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씀이었다. 어르신은 소주를 딱 두 잔만 들고 일어나셨다.
"내일 보세. 그리고 저 콩밭에 있는 콩은 벨 때를 놓쳤네. 아침 이슬에 젖었을 때 베어야 콩 꼬투리가 안 벌어질 걸세."
김씨 어르신의 묘소는 지난 봄 배추를 심었던 바로 그 밭에 자리를 잡았다. 마을 사람들도 김씨 어르신의 죽음에 대해 대부분 실감을 못하는 듯했다. 워낙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관을 하고 흙을 다져 넣으면서 횡성 땅 특유의 <회다지 소리>로 의례가 진행됐다. 상여를 운반할 때 상두꾼들이 부르는 게 <상여소리>라고 하면, 하관 후 흙을 다져 넣는 과정에서 산역하는 사람들 - '달구꾼'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부르는 소리가 <회다지 소리>이다.
이 소리는 처음엔 망자의 한을 달래고 상주를 위로하는 '늦은 가락'의 회심곡으로 시작하다가 점차 달구꾼들의 신명을 돋구는 '잦은 가락'의 메나리조로 옮겨간다. 흙을 다질 때 발을 들어올렸다 쾅 밟는 '두발차기'와 '세발차기'의 율동도 따라 붙는다. 무덤 만드는 산역판에 무슨 신명인가 싶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이 메나리조의 신명은 달구꾼들의 힘도 돋구어주지만, 상주와 조문객들 사이의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들을 한 순간에 걷어낼 정도다.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 진다고 서러워 마라."
"에헤라 달회!"
"명년 3월 돌아오면 꽃은 다시 피련마는"
"에헤라 달회!"
"한번 가신 우리 인생 자취조차 간 곳 없네."
"에헤라 달회!"
회다지 소리가 절정을 이루는 속에 주위를 둘러싸고 앉아 있는 노인네들이 보였다. 고모할머니의 모습도 보였다. 노인의 눈물은 젊은것들의 그것처럼 유장하게 흘려 내리지 않는다. 다만 손가락 끝으로 간간이 찍어낼 뿐.
고모할머니는 오빠의 타계 이후 눈에 띄게 수척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감칠 맛 나고 해학이 넘쳤던 입담도 사라지고 말수도 거의 없었다. 길가에서 만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예전의 그 박꽃 같은 웃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마을 고샅에 나오는 경우에도 동선(動線)은 집 주변에 있는 '고무래 정(丁)' 자의 길을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 '고무래 정'자의 길 끄트머리엔 친구처럼 살아온 용규할머니와 금희엄마라는 분들의 집이 있었다. 어느 날 금희엄마를 만났다가 고모할머니가 걱정스럽다고 했더니 그랬다.
"주당을 맞아서 그래요, 주당을. 굿을 해서 풀어주면 괜찮을 거예요."
"아니, 주당을 맞으시다니 주당이라는 게 뭔 데요?"
"그런 게 있어요. 귀신인가 뭔 시커먼 것인가 하는 게 사람한테 씌워지는…"
어디 그랬을까. 아마 오빠의 빈자리가 너무 컸으리라.
어느 날 해질 무렵 김씨 어르신 무덤이 있는 밭을 지날 때가 있었다. 그런데 무덤 가에 누가 있었다. 발길을 멈추고 살펴보니 고모할머니였다. 멀지 않은 곳에 강이 있어서 가을 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어두워져서 돌아오는데, 그때까지도 그 무덤 가에 희부연 옷이 얼핏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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