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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잠을 깨우는 텃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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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잠을 깨우는 텃새들

서연의 '농막(農幕)에 불을 켜고' <12>

"여름엔 농부가 새를 깨우고, 겨울엔 새가 농부를 깨운다."

맞는 말도 같다.

여름엔 지천으로 널린 게 일이다.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인 새벽에 일어나는 게 미덕일 때가 많다. 겨울은 아무래도 다르다. 사람 나름이겠지만 일이 많지 않은 걸 내세워 게으름 좀 피워보는 걸 일종의 '권도'로 치부할 때도 있다. 지난 세월, 쉼 없이 흘려온 땀을 내세워 그렇다. 그럴 땐 동지섣달 기나긴 밤을 온 몸으로 겪어내고도 미련이 남는다. 동창이 밝아와도 모르쇠를 하며, 몸이라도 아픈 양 이불 속에서 '자반 뒤집기'를 하는 것이다.

집주인이 이러구러 하고 있으면 새들이 나선다. 아침나절의 창은 볕만 드나드는 곳이 아니었다. 겨울을 나는 작은 텃새들이 어우렁더우렁 무리 지어 수선스럽게 노래를 부르고, 그 노래는 곧바로 창을 넘어왔다.

이 누옥도 아침이면 "동창이 밝지 않았느냐"며 항상 난리였다. 창 너머 뒤란의 관목 숲은 작은 텃새들의 세상이었다.

박새와 쇠박새, 진박새, 곤줄박이 같은 박새과의 새들과 딱새, 노랑턱멧새, 멧새, 동고비, 붉은머리오목눈이처럼 모두 고만고만한 작은 친구들이 무리를 지어 지저귀곤 했다.

"쯔-삐! 쯔-삐!"

"삐-잇!, 삐-잇!"

새들의 울음소리처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게 있을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박새의 울음소리를 이렇게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잼처 들어봐도 난 썩 자신이 안 선다. 새 울음소리뿐만 아니라 자연계의 여러 소리들을 언어로 옮긴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같은 새의 울음소리도 번식기와 번식기가 아닌 시기에 내는 울음소리가 다르고, 번식기에도 짝을 부를 때와 자기 세력권을 경계할 때 내는 소리가 다른 경우도 많다.

어떤 조류학자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검은등뻐꾸기의 울음소리 셋을 써놓고, '당신은 이 셋 중 어떤 소리로 들었느냐'며 농을 걸고 있다.

"하하호호!"

"바보바보!"

"홀딱벗고!"

새 울음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에 따라 전혀 달리 들릴 수도 있다.

산기슭에 자리한 집들은 대체로 집 뒤편에 임연부(林緣部)를 둔다. 임연부란 숲의 가장자리로, 산을 치마에 비유하자면 그 치마의 끝자락 같은 곳이다. 그래서 둔덕 모양의 그곳은 위로는 숲이요, 아래로는 논밭이나 인가가 자리하고 있다.

이 임연부는 대체로 키가 크지 않은 관목들과 덩굴식물들로 이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곳엔 키가 큰 교목을 잘 키우질 않는다. 특히 임연부 아래에 집이라도 자리잡고 있는 경우엔 더 그렇다. 집에 드리우는 그늘도 달갑지 않을 뿐 아니라, 비가 많은 여름철엔 집 가까운 곳에 큰 나무가 있으면 낙뢰 걱정을 한다. 나무도 일종의 전도체인 까닭이다.

우리 집 뒤란의 관목 숲을 보면 겨울철엔 정말 새들이 반할 만도 했다. 숲 가장자리엔 신나무에 몸을 기댄 노박덩굴이 서 있고 칡덩굴, 환삼덩굴, 꼭두서니 같은 덩굴들도 관목들을 덮고 있어, 그 덩굴 밑이 새들에겐 아늑한 집과 같았던 것이다.

폭설이 내리면 그 덩굴 위에 쌓인 눈은 따스한 이불이 된다. 숲 밑은 또 단열이 잘 된 아늑한 집으로 변한다. 두릅나무와 산초나무, 초피나무, 찔레꽃 같은 가시가 달린 나무들도 많았는데, 이 나무들의 가시는 천적들의 출입을 막아주는 몫도 해주었다. 족제비나 들고양이가 그 숲 속으로 기어 들어올 땐, 아무래도 그 가시들 때문에 움직임이 굼뜰 수밖에 없다. 새들은 그 사품에 몸을 피할 수도 있었다.

찔레꽃과 노박덩굴에 달린 빨간 열매는 음식이 귀한 겨울철에 좋은 양식도 됐다. 그 열매들은 즙도 있어서 안성맞춤의 먹이였다. 환삼덩굴의 씨앗도 쑥대나 명아주에 달린 씨앗들과 함께 훌륭한 양식이었다.

이렇듯 관목 숲은 집과 먹을 것이 넉넉히 갖춰져 있었다. 새들은 자기 몸의 깃털만 잘 건사하면 겨울 한 철은 별 걱정 없이 날 만한 곳이었다.

이 숲에 사는 작은 새들이 내게 주는 기쁨도 컸다. 녀석들이 보여주는 그 빛나는 생명력은 언제나 깊은 감동을 주었다.

두 날개를 펴고 높은 하늘을 비행하는 큰 새들과는 달리, 이 작은 새들은 날개를 재게 퍼덕이며 낮게, 낮게 난다. 옮겨 갈 때도 멀리 날지를 않고 조금씩 그러나 빠르게 옮겨간다. 잠시도 한 곳에 머무르질 않고 곰비임비 떼를 지어 나는 그 작은 새들의 모습에선 '팔딱'거리는 생명 같은 게 가득했다.

또 그 무리울음 소리를 들어 보라. 그 지저귀는 소리는 샘에 떨어지는 수 많은 물방울 소리를 닮았다. '퐁퐁' 튀는 소리들이다. 한겨울 폭설이 내리고, 소소리바람이 나무와 마른 풀잎을 흔들다가 마침내 시린 가슴 속까지 파고들 때, 그래서 이불 속에서 깊이 잠들지도 못한 '노루잠' 따위로 늦잠을 자고 있을 때, 이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는 삶이란 저렇게 활기 넘칠 수도 있을까 싶게 다가온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

붉은머리오목눈이가 다름 아닌 뱁새다. 뱁새가 뭐 할 일이 없어 황새를 따라다닐까.

"참새가 어찌 봉황의 뜻을 알리요?"

참새에겐 참새의 삶이, 봉황에게는 봉황의 삶이 있을 게다. 귀천이 따로 있을까.
작은 새들을 너무 비하할 일도 아니다.

이 누옥을 찾아오는 새들은 이들 작은 새들뿐이 아니었다. 여름철엔 산 중턱의 외진 도린곁에서 살다가 겨울이 되자 내려온 직박구리와 어치도 있었고, 가래나무엔 알라꿍달라꿍한 옷을 입은 오색딱다구리와 굴뚝에서 막 기어나온 듯한 쇠딱다구리도 종종 찾아왔다.

그런가 하면 이 새들에 푹 빠져 겨울을 나는 내게 "지금도 겨울인가"하고 말하는 새도 있다. 멧비둘기다. 멧비둘기는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새다. 이 녀석의 첫울음은 미몽의 겨울에서 사람을 깨운다.

입춘, 우수가 지나고 헤실바실 눈이 녹기 시작하면 멧비둘기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구우 구루 구루!"

멧비둘기를 마을의 어르신들은 '구구새'라 불렀다. 듣고 보니 그 새 이름답기도 하다.

"서방 죽고 자식 죽고, 구우 구루 구루!"

"청승맞아 죽겠어. 저것 우는 소리를 들으면."

어느 초봄 비닐하우스 속에서 양상추씨를 묘판에 앉히는 여인네들 사이에서 오가는 얘기다.

봄이 오는 기미가 보이면 가정 먼저 자기의 세력권을 선언하고 짝을 부르는 새가 멧비둘기다. 산골에 들어와 긴긴 겨울을 보내다가 이 새의 울음소리를 처음 들었을 땐 마침내 봄이 오나 싶어 설렜다. 그러나 두 해, 세 해를 겪은 후엔 그 울음소리는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바뀌었다.

나보다 여러 해 먼저 농사를 시작한 어떤 선배는 "봄이 오면 도살장으로 끌려나가는 기분"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봄날의 대지 위에 선 농부들은 아직 씨를 뿌리지도 않았건만 지레 가을을 걱정할 때가 많다.

겨울 한철의 '노루잠'을 깨우는 멧비둘기의 울음소리엔 그런 깊은 한숨소리도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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