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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살이, 그 머나먼 길의 초입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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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살이, 그 머나먼 길의 초입에 서서

서연의 '농막(農幕)에 불을 켜고' <10>

봄은 처녀, 여름은 어머니라 하고, 가을은 문득 미망인이라 하다가 겨울은 또 오갈 데 없는'계모'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개인적으론, 여성의 자궁처럼 느껴온 겨울을 계모라 하니 놀랍다.

잎을 모두 떨군 채 빈 몸으로 서있는 겨울나무들. 마른 잎들이 허리가 꺾인 채 나부끼는 풀 섶. 예전엔 화전이었을, 저 벌겋게 속살을 드러낸 황토밭과 진눈깨비 혹은 산을 넘어오는 바람소리. 설핏설핏 보면 풍경이 스산하고 을씨년스러울지 모르겠다.

그러나 겨울은 겨울대로 도처에 생명들의 천지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풀 섶엔 겨울을 나고 있는 두해살이풀들로 가득하고, 벌거벗은 나무들은 대신 온 몸에 겨울눈을 달고서 봄을 예비하고 있다. 이 은인자중하고 있는 생명들은 진초록으로 치장한 여름날의 생명들과는 달리 매우 내밀한 느낌을 준다. 세월이 흐를 만큼 흐르고 난 뒤에야 드러나게 될 비밀 같은 것, 그 비밀을 함부로 누설했다간 '이런 발칙한 것!' 같은 소릴 듣기 십상인 그런 천기(天機) 같은 게 이들 생명에서 읽혀진다.

벚나무의 가지를 부러뜨려 봐도
그 속엔 꽃이 없네.
그러나 보라, 봄이 되면
얼마나 많은 꽃이 피는가.

- 이뀨(一休)

벚나무는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가지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검붉은 겨울눈이 바로 꽃눈이다. 꽃은, 자궁 속의 아기처럼 그 속에 숨어있다. 꽃은 한겨울에 이미 있었다!

줄기와 잎자루 사이에 '떨켜'가 없어 그 큰 잎을 겨울에도 달고 있는 떡갈나무, 잎 만으론 부족했던지 흰 수피까지 벗는 자작나무, 그 섬세한 잔가지가 아름드리의 중심줄기와 조화를 이룬 느티나무, 하나의 잎눈으론 불안했던지 덧눈을 두 개씩이나 더 단 황매화 그리고 댕댕이덩굴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자기만의 겨울눈을 달고 한 세월을 나고 있다.

검붉은 잎눈을 점착성 액체로 에두르고 있는 칠엽수의 반짝이는 겨울눈도 눈에 띈다. 점액은 밀랍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동해(凍害)를 피하기 위해서다. 한편 홍자색 꽃이 말라붙은 채 떨어지지 않고 있는 배롱나무에선 겨울눈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배롱나무는 추위에 약하다. 겨울눈을 어느 깊숙한 곳에 숨겨놓고 있는 것일까.

둘러보면 이들만 겨우살이 하는 게 아니었다. 참죽나무의 어린 가지사이에 터를 잡은 노란쐐기나방의 고치나 도롱이벌레, 도토리의 술 달린 깍정이를 닮은 참나무의 벌레혹, 사마귀의 알집도 소리 없이 겨울을 나고 있다.

"소는 더운 여름날엔 이런 콩 깍지를 생각하며 일한단다. 농사 짓는 사람들은 또 겨울 한 철을 바라보며 살지."

어느 가을날, 콩 타작을 하던 중에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소가 콩 깍지를 좋아하는 건 '닭 소 쳐다보듯' 하는 그 닭만 빼고는 세상이 다 아는 일.

가을걷이도 모두 끝나고 김장을 하거나 메주 쓰는 일이 마무리되면 이젠 정말 본격적인 겨우살이만 남게 된다. 그러나 일이 없는 겨우살이가 노박이로 평화스러운 것만은 아니었다.

살아보니, "일이 없으면 죄 짓는 일이 많다"는 말을 실감할 때가 적잖았다. 쓸 데 없이 동네 마실 다니는 것도 그렇고, '덩더꿍이 소출' 같은 농사를 지어놓고도 대문 옆 헛청에서 쌓여 가는 술병도 그렇다.

"기한(飢寒)에 발도심(發道心)"이라는 말이 있다. 배가 고프고 추워야 도를 구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뜻이다. '기한'이야 본래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 가난한 농사꾼에겐 어찌됐든 천혜의 조건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동안거(冬安居)처럼 보내자고 스스로 다짐을 했던 겨울 한 철. 그러나 흐트러진 마음속에서 세월이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을 때 느끼는 그 절망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지난 겨울엔 몸으로 하는 일이 없는 대신, 마음으로 하는 일이 기승을 부렸다. 무수한 상념들, 그 하나 하나가 살아 꿈틀대고 바늘이나 비수가 되어 스스로의 마음을 찔렀다. 이런 저런 일들에 대한 자책과 그로 인한 내상(內傷), 농사를 지어서 과연 밥을 먹고 살 수는 있는 것인지, 보편적인 가치가 내재되어 있는 삶을 살고는 있는 것인지, 그런 쓸쓸한 자문들로 뒤범벅이었다.

입춘이 지나면서부터 거의 매일 흉몽에 시달렸다. 종이에 그려진 호랑이나 곰이 돌연 그림 속에서 뛰쳐나와 달려들고, 가위에 눌리는 일도 잦았다. 그러다가 이른 봄 얼었던 땅이 풀리기 시작하는 '따지기 때'가 되자, 현기증이 날 지경이 되었다. 이렇게 겨울을 보내고서도 또 새로운 농사를 준비해야겠다고 말할 수 있는가. 두렵고 딱했다.

뒤돌아보면 겨우살이는 그랬다. 자기 자신과 함께 사는 법이 너무 서툴렀던 것, 그것이 문제였다.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상념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것들과 이전투구로 싸웠다. 싸움의 결과는 참담했다.

이 겨울, 겨우살이를 하는 나무들을 다시 보며 배운다. 빈 몸으로 서있는 게 아니라 그냥 서있을 뿐인 나무들을 보며, 꽃눈을 단 채 겨울을 견디며 봄을 예비하는 게 아니라 그냥 꽃눈을 달고 있을 뿐인 저 나무들을 보며 다시 배운다.

나도 마음 속에 꽃눈 같은 마음이나 하나, 생각 없이 그냥 달아 볼 참이다, 이 겨울엔.

<필자 이메일: suna108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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