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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달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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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달개비

서연의 '농막(農幕)에 불을 켜고' <3>

봄가뭄이 계속 돼서 걱정이 컸다. 그래도 콩은 잘 올라와 주었다. 콩밭은 팥과 녹두를 심은 곳까지 포함하면 자그마치 1천여 평.

콩은 싹이 나올 때 흙 속에 수분이 넉넉해야 좋다. '가뭄에 콩 나듯이'라는 말은 그저 생긴 게 아니다. 가물면 그만큼 발아가 더디거나 아예 싹이 안 나오는 경우도 많다.

이 가뭄에 싹들이 올라오는 걸 보면 생명이라는 게 참으로 경이롭다.

한데 싹이 올라오고 자라는 것은 작물만이 아니다. 풀도 뒤질세라 올라왔다. 처음엔 개망초와 냉이, 꽃마리, 민들레, 보리뱅이 등 지난 겨울을 난 두해살이풀이 기승을 부렸다. 그러나 이 풀들은 밭을 갈 때 대부분 땅 속에 묻혔다. 대신 한해살이풀이 땅을 덮기 시작했다. 명아주와 개비름, 쇠비름, 여뀌들이다.

날이 가면서 밭이 좀 수상쩍었다. 콩도 잘 자라 주었지만 풀도 자라는 속도가 빨랐다. 때를 놓치면 저러다가 풀밭이 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어느 날 콩밭을 둘러보던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콩밭 맬 때가 됐다야. 콩이라는 놈이 사람에게 그런단다. '네 자식 먹여 살리고 싶거들랑 내 몸이 두 대 나왔을 때 매주라'고."

자세히 들여다 보니 콩은 벌써 본엽을 두세 장 남짓 달고 있었다. 콩잎은 먼저 홑잎인 떡잎이 나오고, 다음으로 역시 홑잎인 초생엽이 나온다. 3개의 잎으로 이루어진 본엽(3출엽)은 이 초생엽 뒤에 나온다. 어머니가 말씀하신 '두 대'란 본엽이 나온 마디가 두 개라는 걸 뜻했는데, 콩대를 보니 벌써 두 마디 넘게 자랐던 것이다.

초벌 김매기 할 때를 놓치지 않아야 콩을 많이 수확한다. 이 무렵에 김을 매주지 않으면 아직은 여린 콩이 풀에 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사람에게 큰 소리를 친다는 콩도 재미있는 녀석이다.

어머니와 함께 김매기에 나섰다.

"눈에 보이는 것만 매지 말고, 풀이 안 난 곳도 호미로 긁어 주어라. 그래야 풀이 쉽게 안 난다. 작물에도 좋고."

"뿌리를 끊지 말고 캐라. 그렇지 않으면 다시 싹이 나온다."

"뿌리에 붙은 흙을 잘 털어 주어야 풀이 빨리 죽는다."

어머니는 초보농사꾼인 아들에게 김 매는 요령을 간간이 챙겨주셨다.

"어머니, 힘드시지요?"

"잠자는 것보다는 힘들다야."

걱정할 것 없다는 뜻으로 눙치셨다. 해학이 담긴 말씀은 미안해하는 자식놈을 자지러지게 만들었다.

종일 엎드려 김을 매는 작업은 정말 중노동이다. 허리는 끊어질 듯 아프고, 오금도 저린다. 때로는 단순노동의 반복성 때문에 몹시 지루하다.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는 일어서서 김을 맨 이랑을 유행가 노랫말처럼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한편으론 남은 이랑이 몇이나 되는 지를 세어보기도 한다.

"지난 봄처럼 어깨가 아프면 이 밭에 난 풀이 아니라, 입안에 난 풀이라도 못 맨다."

올해는 그 어깨 통증은 없는 편이라고 일흔 둘이나 되신 어머니가 덧붙이셨다.

적적하셨던 것일까. 어머니가 갑자기 자식놈을 추켜세웠다.

"올챙이 토란나물 먹듯이 너도 주섬주섬 일을 잘 한다야."

비유가 재미있어서 웃음부터 터져 나왔다. 토란 줄기를 말린, 사람이 먹는 그 묵나물을 연상하고 물었다.

"아니 어머니, 올챙이가 어떻게 토란 나물을 먹는답니까?

"하하하, 글쎄 거멍거멍 잘 먹는다더라야."

올챙이가 토란나물을 먹는다? 토란나물이란 게 뭘까? 수초나 이끼의 별명으로 혹 토란나물이란 게 있는 걸까. 사람이 먹는 그 토란나물은 아닐 터이고.

올챙이는 부드러운 수초와 돌에 끼어 있는 녹색 이끼 따위를 자잘한 이로 갉아먹는다. 좀 더 크게 자라면 양분을 보충하려고 다른 동물이나 동료 올챙이의 시체 따위를 먹을 때도 있다. 대지 위에 엎드려 김을 매는 사람을, 바위 위에서 수초나 이끼를 뜯어먹는 올챙이의 모습에 비유한 말일까.

"어머니, 이 풀의 이름을 아세요?"

김을 매시던 어머니에게 잎이 두세 닢 나온 '이름 모를' 풀의 이름을 물었다.

"글쎄, 이름이 입안에서 돈다마는 얼른 생각이 안 난다야."

대신 어머니는 그 풀에 대한 이야기 하나를 들려 주셨다. 그 풀이 얼마나 생명력이 질기고 번식력이 강한지를 보여주는 소화(笑話)였다.

농부가 뿌리 채 캔 그 풀을 손에 들고 얼렸다.

"울타리에다 걸어 놓아줄까.?"

햇볕에 말려 죽이겠다는 속셈이다. 풀이 말을 받는다.

"호습고 좋제."

"뭐라? 그럼 토막토막 잘라버려?"

"친구 많고 좋제."

풀의 말본새가 농부의 속을 사뭇 건드린다.

"에이, 이 녀석, 구덩이를 파고 묻어버려야겠다."

"아이고, 할 길 없이 죽겠구나."

나중에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에게 야생초들이 실린 책 한 페이지를 보여드렸다.

"혹시 이 풀 아닌가요?"

"맞다, 맞어. 그 풀이다, 바로 달구개비다야."

그 풀은 다름 아닌 달개비라고도 불리는 닭의장풀이었다. 보라색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풀. 초보농사꾼은 그 닭의장풀과 이렇게 첫인사를 나눴다.

'호습다'라는 말은 전라도에서는 자주 쓰이는 사투리다. 어느 <사투리 사전>은 '무엇을 타거나 할 때 즐겁고 짜릿한 느낌이 있다'는 뜻으로 풀이를 하고 있다. 닭의장풀이 '호습고 좋제'라고 말한 건, 자기 몸이 울타리에 걸리면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거릴 터인데 그러면 그네를 탄 것처럼 즐겁고 짜릿하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닭의장풀은 마디풀과에 속한 풀이다. 마디풀과의 풀이 대체로 그렇듯이 닭의장풀도 건조에 강하다. 뽑아서 이랑에 널어놓으면 말라 죽는 듯 보였다가도, 비가 내려 젖게 되면 다시 살아난다.

또 토막을 내면 토막이 난 각 마디마다 새 뿌리가 나온다. 트랙터로 밭을 갈면 마디풀과의 풀은 토막이 난 만큼 그 개체수가 급증하는 게 상례다. 닭의장풀은 그래서 오연히 말한다.

"친구 많고 좋제."

'할 길 없이'라는 건 '(어찌) 해볼 길 없이' 정도의 뜻이 아닐까.

한 때 농사꾼의 삶을 사셨던 어머니의 이야기는 정말 '호습다'. 한편으론 그 이야기들은 농경사회의 귀한 '문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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