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참사 한 달을 넘긴 지금, 어느덧 사회는 또다시 조용해졌다. 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의 근본적인 문제점과 우리와 같은 사회의 또 다른 구성원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떠돌고 있는 이들에 대한 고찰은 사라지고 참사는 그저 '피보호자에 의한 방화 사건'으로 잊혀져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한 달 동안 여수 현장에서 유가족들과 피해자들과 함께 보호소 실태에 관한 조사활동을 벌였던 이철승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상임대표(경남외국인이주노동자상담소 소장·씨알감리교회 목사)가 <프레시안>에 글을 보내왔다.
이철승 대표는 이 글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로지 목적에 의해 써먹히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정부의 '정주화(定住化) 금지 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다시금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편집자>
10명의 사망과 17명의 부상.
지난달 11일 일어난 여수의 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 사건이 만들어낸 숫자다. 무려 27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고 다쳤지만 이 참사에 대한 기억은 어느덧 옅어지고 있다.
수사기관과 언론은 수감 중이던 이주노동자가 탈출을 위해 고의로 저지른 방화로 서둘러 사건의 원인을 결론지어 버렸다. 사회 역시 사건의 진상규명이나 근본적인 원인 찾기에는 관심이 없다. 심지어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한 무관심에 대한 반성조차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직 사고 현장에서 일하던 근무자 몇 명에게 책임을 묻는 것으로 이 모든 기억을 덮으려고 하고 있다.
여수에서 보낸 한 달, 남은 것은 부끄러움이었다
지난 한 달간 나는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시민대책위원회'의 일원으로 여수 현장에 있었다. 여수에서 만난 피해자들과 유가족들 각각의 기막힌 사연 앞에서 나는 지난 10년 간 내가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인권운동에 몸 담아 왔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인권단체들과 연대해 벌였던 '현대판 노예제도' 산업연수제 폐지 운동, 2003년 11월 '강제추방반대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를 위한 100여 일의 농성, 그리고 지난해 4월 전국 이주노동자 대회까지….
미등록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이 없이는 이주노동자의 노동인권 개선은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수도 없이 정부 당국에 촉구해 왔지만 2007년 오늘 그들이 겪고 있는 현실은 역시 처참했다.
결국 그들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고 사는 것을 막으려는 정부의 '정주화 방지 정책'이 허물어지지 않는 한 안 되는 일이었다. 지난 시간의 노력들이 아직 혈통민족주의 장벽을 넘어서기에는 벅찼던 모양이다.
여수화재참사 또한 마찬가지다. 이 사건의 근본적·사회적 배경에는 바로 '이주노동자의 합법화냐 정주화 방지냐'라는 대립점이 자리 잡고 있다.
정부가 비자 만료 기간을 넘어 체류하는 사람들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강제추방 정책을 실시하는 배경에는 혈통민족주의와 애국주의가 있다. 우리 시민사회와 지식인은 또 어떤가? 놀라울 정도로 방관자로 일관하고 있지 않은가? 시민사회와 지식인들의 이같은 '구경' 역시 민족 단위의 국민국가 체제와 '국익'이라는 환상에 갇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수화재참사 또한 마찬가지다. 정부가 제 발로 돌아갈 처지가 못 되는 이주노동자들의 처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오로지 강제추방만을 집행해 온 것이 이같은 참사를 불렀다.
그간 몇 차례 선별적 또는 일시적인 '양성화 조치'가 있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인력 부족을 겪고 있는 고용주들을 위한 배려에 불과했을 뿐이다.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전향적인 정책은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외국인보호소는 '보호시설'이 아니라 '감금시설'이다
여수 참사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지적되는 외국인보호소 운영 실태도 마찬가지다. 현재 출입국관리법은 52조에서 미등록이주노동자 보호에 대해 20일이 넘지 못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퇴거명령서를 발급 받고도 즉시 퇴거가 어려울 경우는 집행이 가능할 때까지 보호조치할 수 있도록 한 63조에 근거해 보호 기간을 편법적으로 운영해 왔다.
이는 '보호'가 아닌 인신 구금이다. 나아가 국가권력이 영장도 없이 미등록이주노동자에 대한 불법감금을 관행적으로 자행해 왔다는 비판에서도 정부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
외국인보호소에 장기 구금되어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사유는 대부분 임금 체불과 여권 문제다. 임금 체불로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고용주에 대한 형사처벌은 솜방망이일 뿐이며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은 복잡한 민사소송 절차를 알지 못해 보호소에서 눌러 살든지 아니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출국할 수밖에 없다.
또 여권 기간이 초과되었거나 여권을 분실한 이주노동자는 자국 대사관으로부터 발급될 때까지 그 기간이 얼마나 걸리든 외국인보호소에서 마냥 기다려야 하는 실정이다. 결국 이같은 현실을 구실로 삼아 장기구금을 합리화해 온 것이다.
더욱이 보호소의 운영 실태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정부가 '외국인보호시설'이라 이름붙인 곳은 사실은 감금시설이었다. 이주노동자의 식성을 고려하지 않고 정해진 식단만 제공하면서 '먹든지 굶든지 맘대로 해라'는 태도로 일관했으며 턱없이 부족한 관리 인원도 일용직 경비원이나 공익요원으로 보충해 운영했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공무원들이 저비용 고효율의 업무능률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했던 것이다.
법무부 공무원의 천박한 인권의식도 참사의 한 원인
또 하나 지적해야 할 점은 일선에서 일하는 법무부 공무원의 천박한 인권인식이다. 물론 우리 사회의 평균적인 인권의식 자체가 워낙 낮기는 하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그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단지 행정지침을 어긴 행정사범에 불과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범죄자'로 규정하고 국익을 명분 삼아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조차 외면하는 법무부 공무원들의 인권의식을 거론하는 것이 생트집인 것일까?
이번 참사의 희생자 중에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이주노동자 1명이 있었다. 고인은 무려 11개월 20일 동안 보호소에 감금되어 있다가 변을 당했다. 여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임금 체불로 소송이 진행 중이어서 그는 꼼짝없이 보호소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본국에 있는 아내와 딸은 그 기간 동안 "곧 돌아갈 수 있다"는 그의 말만 믿어 왔다고 했다. 딸에게 "여권을 발급 받고 체불임금을 받아 돌아가는 대로 시집 보내주겠다"고 했던 약속은 지키지 못한 채 그는 세상을 뜨고 말았다.
또 다른 희생자 가운데 중국동포 한 명은 체류 기간이 남아 있는 합법체류자였다. 그가 보호소에 갇힌 것은 단지 취업규칙을 위반했기 때문이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자진 출두해 해결책을 찾고자 했던 그에게 돌아온 것은 오히려 '퇴거명령서'였다.
법무부 직원들이 최소한의 인권의식에 충실했다면 이 두 사람이 장기 구금되거나, 퇴거 조치를 당하는 일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더 이상 고집부릴 수 없는 순간이 왔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정부가 최소한의 합리적 조치에 나서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 있다.
정부는 우선 시민사회단체 전문가들과 함께 외국인보호소 실태 조사를 통한 개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미등록이주노동자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마련이라는 특단의 조처도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근본대책을 마련할 때까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단속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
이미 우리 사회의 국제결혼은 한해 총 혼인 건수의 15%에 육박하고 있다. 이미 다민족·다문화 사회로 급속하게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또 심각한 저출산으로 인해 전체적인 노동인력도 점점 그 부족분이 늘어날 전망이고 제조업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향후 10년 뒤에는 100만 여 명의 노동력이 해외에서 도입돼야 한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더 이상 이주노동자의 정주화 금지 정책으로 혈통민족주의만을 고집할 수가 없는 사회가 됐다는 것을 정부가 인정해야 한다. 단지 이주노동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전향적이고 진일보한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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