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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거탑>과 여수참사, 그 공통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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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거탑>과 여수참사, 그 공통점은?

[기자의 눈]여수참사를 대하는 우리 정부의 태도

"삼촌은 1996년에 입국해 10년 동안 한국에서 막노동을 했다. 이런 일이 일어날지 꿈에도 몰랐다. 사고 현장에 시장이나 장관들이 많이 왔다 갔다고 들었다. 높은 분들이라는데 우리는 하찮게 봐서 그런지 그 누구도 손 한 번 잡아준 사람이 없었다. 말 한 마디라도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여수의 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로 세상을 떠난 이태복 씨의 조카딸인 원춘희 씨가 지난 12일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열린 유가족 기자간담회에서 털어놓은 말이다. 기자는 원춘희 씨의 말을 듣고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하얀거탑>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천재적인 외과의사 장준혁의 집도로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사망한 권순길 환자의 유족들은 여수 화재참사 이후 남겨진 이주노동자 유족들의 모습과 닮았다. 드라마 속 권순길 환자의 유족들은 장준혁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나는 돈도 필요없다"며 "진심어린 사과 한 마디 듣고 싶었다"고 절규했다.

<하얀거탑>과 여수참사, 남겨진 이들의 같은 마음
▲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렇게 힘든가요?" 남겨진 사람들의 하소연이다.ⓒMBC

드라마 <하얀거탑>의 최근 방영분에서 대학병원 외과 과장인 장준혁은 자신이 집도한 환자가 수술 후 갑자기 사망한 사건으로 소송에 휘말렸다.

내과 의사가 환자를 외과로 넘기면서 암세포가 폐까지 전이됐을지도 모른다며 검사를 더 하라는 충고를 했지만 장준혁은 이를 무시했다.

환자의 수술 자체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하지만 장준혁이 병원 내에서 자신의 권력을 다지고자 고군분투하던 그 시간, 환자의 병세는 날로 악화되고 있었다. 장준혁은 "한 번만 봐달라"는 간청도 모른 척했다.

결국 유족들은 "억울한 죽음을 밝히겠다"며 부검을 하고 소송을 제기했다.

물론 장준혁이 수술 후에 권순길 환자를 지극정성으로 돌봤더라도 환자는 사망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여수참사 또한 이미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세상을 떠난 9명의 이주노동자의 죽음은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 소송을 시작한 유족들이나 여수 참사를 불러 온 근본적인 원인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남겨진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모두 같은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억울해서 또 억울해서…"
▲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하얀거탑>과 9명의 이주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여수 화재사고. 이 두 가지 얘기 사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MBC

<하얀거탑> 속 환자와 여수 화재참사로 숨진 9명의 이주노동자. 이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억울함'을 남겨주고 떠났다.

드라마에서 유족들은 "장준혁 과장이 제때에 적절한 처치만 해줬어도…"라며 오열했고, 여수참사로 숨진 이들의 유가족들도 "불법체류자로 잡혀가지만 않았더라도…"라고 억울해 했다.

노동계 주장으로 40만 명에 달하는 이주노동자는 국내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소위 '3D 업종'에서 일할 사람으로 산업연수생제, 고용허가제 등의 정부 정책을 통해 국내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들은 빈번한 임금체불과 일상적인 사업주의 폭행 및 구타에 시달리다 도망쳤다는 이유로, 혹은 사업주가 폐업 신고를 하지 않고 어느 날 사라져버려 얼떨결에 '불법체류자'가 됐다. 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이 사실상 '불법체류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노동계는 주장한다.

더욱이 외국인보호소의 열악한 인권 상황 역시 전부터 계속 지적돼 온 문제다. 이주노동자 인권 운동을 벌이는 이들은 한결같이 "외국인보호소가 감옥보다 못하다"고 주장한다.

제도라는 것은 언제나 부족한 점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와 사회가 제도의 문제점을 들여다보고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을까.

힘 없는 사람들의 죽음을 대하는 방식…우리 정부는?
▲ 여수 참사를 대하는 우리 정부의 태도는 어떤 것일까? ⓒ프레시안

드라마 속에서 "장준혁의 의사 가운을 벗기겠다"는 동생의 거친 분노도, "남편이 왜 죽었는지라도 알고 싶다"는 부인의 눈물 젖은 하소연도 의사집단이 가진 막강한 권력과 든든한 장인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자본 앞에서는 한없이 왜소하기만 하다.

허름한 사무실에서 먹고 자는 '인권변호사'를 앞세운 유족들의 외로운 싸움은 애초부터 승산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증인은 커녕 의학적 자문조차 구하기 힘들어 기본적인 정보력부터 차이가 나는, 출발점이 다른 싸움인 것이다.

이 드라마는 장준혁과 유족들이 한 소송에서 각각 어떤 길을 걷는가를 뚜렷하게 대비시켜 보여주었다. 여수 화재참사 현장을 다녀왔다는 사람들의 증언도 같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주노동자 아누아르 씨는 "온갖 국회의원님들과 정부 관계자들은 다 들어가는 참사 현장에 유족들은 들어가지도 못하게 한다"고 전했다. 심지어 "한국 정부가 유족들에게 사고 사실을 통보하지도 않았다"는 말도 들린다.

현장을 찾아 온 유족 이철승 씨는 "중국에 있는 유가족들은 연락을 못 받았고 한국의 유가족을 통해 알게 됐다"고 말했고 또 다른 유가족 원춘희 씨는 "TV 뉴스를 보다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고 하소연했다.

아누아르 씨는 "정부가 사고 원인을 방화로 몰고가려고 하는 것 같다"고 답답해했다. 일년에 여러 차례 일어나는 단순 방화사고의 하나로 묻혀버리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이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잘못된 이주노동자 정책과 이주노동자의 인권에 대해 깊이 고민해달라는 이주노동자들의 호소에 우리 정부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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