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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나는 '박근혜의 나라'를 생각하고 전율했다"

[기고]'친북좌파' 발언을 듣고…"잔인하고 기구한 천륜"

미국을 방문 중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인혁당 재심 판결에 대해 "내가 사과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라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며 사과 요구를 일축했다.
  
  그 대신 박 전 대표는 "친북좌파의 탈을 쓴 사람들은 잘못이 있다"며 "울진삼척 무장공비 사건 때도 민간인들이 죽고 군경이 희생됐지만 친북좌파들은 이에 대해 사과한 적이 없다. (나에게 사과하라는 등) 그렇게 말하기에 앞서 서해교전, 1.21사태, 울진삼척 무장공비 사건의 피해가족에 대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공세를 펼쳤다.
  
  한나라당의 유력 대권 주자인 박 전 대표의 이같은 발언이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박 전 대표는 "내가 아버지의 딸이라는 것은 천륜"이라면서 '정면돌파'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와 여러 모로 대조적인 위치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또 다른 여성 정치인인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이 긴급히 글을 보내왔다.
  
  박 전 대표에 비해 지지율을 훨씬 뒤지지만 얼마 전에 "박정희와 김대중의 시대를 뛰어 넘겠다"며 대선출사표를 던진 심 의원은 박 전 대표의 문제 발언과 미 하원에서 열린 2차대전 종군 위안부 청문회를 대조시키며 박 전 대표의 역사인식을 질타했다.
  
  심 의원은 청문회 개최에 앞장선 일본인 3세 미 하원의원과 박 전 대표의 역시안식을 견주며 "나는 잠시 '박근혜의 나라'를 생각하고 전율했다. 독재의 학살이 정당화되는 나라가 21세기 '선진화된 대한민국'이라니, 순간 암담해졌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힐러리 클린턴, 세골렌 르와얄 등 해외의 여성 정치인들뿐 아니라 대선을 앞둔 한국에서도 부쩍 여성 정치인들의 비중이 무거워지고 있는 시점에서,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의 대표적 여성 정치인인 두 사람의 역사인식을 비교해보는 좋은 기회라고 판단된다. <편집자>

  
  당혹스럽고 분통하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말하고자 한다.
  
  이 세상 모든 딸들에게 아버지는 있다. 그러나 어떤 한 사람에게는 단 하나의 천륜 외에 세상의 모든 천륜은 거론할 가치가 없다. 그 어떤 사람 역시 딸이다. 그리고 독재자의 딸이다.
  
  독재자의 전횡과 가혹한 통치 속에 수 많은 아버지가 쓰러지거나 사라졌다. 그 아버지의 딸들은 수십 년 동안 아버지의 이름조차 제대로 부르지 못했다. 가슴속에 고통과 한을 켜켜이 쌓아 두었다. 그러나 잔인무도한 독재자에게는 이것조차도 반역이었다.
  
  피눈물이 역사의 전부였던 시대의 이야기다. 다 지나가고 다 옛일이 된 줄 알았다.
  
  그러나 오늘, 독재의 훈장을 덕지덕지 달고 잔인한 시대가 행진하기 시작했다. 그 선두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서 있다.
  
  "박근혜 전 대표는 무슨 마음으로 청문회를 참관했을까?"
  
  박근혜 대표가 미국에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해 "내가 사과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다"며 "친북좌파들은 나에게 사과했냐?"고 오히려 공세를 퍼부은 그 즈음, 미 하원에서는 역사적인 청문회가 열렸다.
  
  미국 하원은 15일 2차대전 당시 일본군 종군위안부로 강제 동원됐던 할머니들을 출석시킨 가운데 이 문제에 대해 사상 첫 청문회를 개최했다. 청문회에는 한국의 이용수 , 김군자, 그리고 네덜란드인 얀 러프 오헤른 할머니가 참석했다.
  
  이들은 종군위안부로 끌려가게 된 과정, 일본군들로부터 겪은 수모와 강간 등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낱낱이 증언하고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역사바로세우기, 위안부 결의안 처리를 위한 미 의회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보도를 통해 접한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은 한마디 한마디가 폐부를 찌르는 고통이었고, 절규였다.
  
  할머니들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들이 저지른 인권 유린과 전쟁 범죄 행위에 대해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는 점을 일본이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백인 종군위안부인 오헤른 할머니는 "전쟁은 끝났지만 우리 위안부들에겐 끝나지 않았고, 일본군은 내 청춘을 무참히 짓밟고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고 절규하면서 "일본은 전쟁 당시 잔학상을 시인하고 과거 오류들에 대한 역사를 똑바로 가르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사상 첫 일제 종군위안부의 실체를 밝히는 청문회가 열린 데는 일본인 3세 마이클 혼다 의원의 노고가 있었다.
  
  일본을 아버지 나라로 둔 마이클 혼다 의원이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고, 반성과 사죄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냈고, 이를 위해 청문회가 개최되었다는 사실은 나를 숙연하게 했다.
  
  아울러 바로 그 청문회 자리에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잠깐 참석했다는 사실은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했다. 바로 그 전날 역사의 범죄행위를 부정한 장본인인 박 전 대표가 어떤 염치로 그 자리에 참석할 수 있었는지 기가 찰 노릇이다.
  
  혼다 의원은 미국 내에 제기된 일본 종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아버지 나라라는 천륜의 이름 뒤에 숨지 않았다. 아울러 일부는 강제로 종군위안부가 된 이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라며 검증하자는 잔인한 논리를 대지도 않았다. 또 역사에 맡기자는 비겁하기 그지없는 주장도 하지 않았다. 아울러 왜 일본만 갖고 그러느냐는, 본질을 왜곡하는 주장도 물론 하지 않았다.
  
  일본인 3세 혼다 의원은 그 대신 "지금 우리가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일본정부로 하여금 위안부들이 당한 고통에 대한 책임을 시인하도록 할 역사적인 기회를 잃고 말 것"이라며 "일본 정부가 명확하고 분명한 사과를 해야 진정한 화해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륜을 어쩌란 말인가'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법원의 재심을 통해 무죄로 판결났다. 늦어도 너무 늦은 판결이었다. 법원은 이 사건을 상고하지 않음으로써 마지막 양심을 보였다.
  
  역사가 증언하고 판결했다. 이제 법원의 판결까지 끝났다. 박정희 독재정권에 의해 저질러진 잔악무도한 사법 살인은 한편의 가공할 정치 공작이었으며, 조작이었음이 역사적, 법률적으로 명명백백해졌다.
  
  이제 대한민국이 유족과 피해자 모두에게 사죄해야 할 때다. 책임 있는 사람들이 먼저 나와 머리를 숙여야 마땅한 일이다. 국민은 박근혜 전 대표의 사죄를 요구했다. 박 전 대표는 침묵했다.
  
  나 역시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또 한사람의 딸로서 박 전 대표의 대답을 기다렸다. 박 전 대표의 침묵이 천륜과 정의 사이에서 고민한 흔적으로 남기를 바랬다.
  
  그러나 박근혜 대표는 "친북좌파는 사과한 적이 있느냐"며 역사와 민중을 모독했다. 그리고 역사에게 맡기자는 말도 했다. 비겁하고 잔인하다.
  
  나는 잠시 '박근혜의 나라'를 생각하고 전율했다. 독재의 학살이 정당화되는 나라가 21세기 '선진화된 대한민국'이라니, 순간 암담해졌다.
  
  "천륜을 어쩌란 말인가." 박정희 유신 독재를 말할 때마다 박 전 대표가 해 온 말이다.
  
  박 전 대표는 인혁당 재건위 무죄 판결과 긴급조치 판결 판사명단 공개에 대해 '자신에 대한 정치공세'라고 주장했고, 급기야는 '친북좌파 선 반성론'까지 제기하며 진실을 회피했다.
  
  밝혀지는 진실에 눈감고, 이를 정치공세로 치부하는 것만으로도 숭고한 역사에 대한 또 다른 폭력이며 패악질이다. 더 나아가 유가족과 국민의 마음에 칼과 창을 들이대는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이 천륜 때문이라면 참으로 잔인하고 기구한 천륜이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이 사람이 박 전 대표인지, 아니면 독재자 박정희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 땅에 아버지와 딸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유신 독재에 희생된 수많은 아버지가 있고 또 지금 그 고통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딸과 아들이 있다.
  
  박 전 대표는 이들에게 마땅히 사죄했어야 하나 오히려 이를 내치고, 증오의 말로 또 한번 상처를 남겼다. 이제 국민과 역사는 잔인하고 야박한 독재자 부녀를 기억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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