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기적 진전"과 "돌이킬 수 없는 피해" 사이…
박 전 대표는 현지시간으로 13일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JFK 주니어 포럼' 초청특강에서 "100% 만족과 이익을 줄 수는 없다고 해도, 최소한 양국 어느 쪽이라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는 국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라며 "미국이 산업적인 측면만을 갖고 쌀시장 개방을 요구한다면 한국민들의 동의를 얻어내기가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박 전 대표는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실제로 양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심할 경우 한미관계의 후퇴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경고도 분명히 했다. 유력 대선주자 중 한 사람인 그가 쌀시장 개방에 이토록 분명한 입장을 내세운 것은 심상치 않은 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박 전 대표가 '한미 FTA 신중론'으로 돌아섰다고 하는 해석은 수긍하기가 힘들다. 박 전 대표는 "현재 진행 중인 한미 FTA 협상이 성공적으로 매듭지어지면 한미관계의 미래를 획기적으로 진전시키는 큰 걸음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장밋빛 전망을 대전제로 그 말을 했을 뿐이다.
그는 "한미 FTA는 한미 양국이 성장과 발전을 공유하고 한국민과 미국민 모두에게 더 큰 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나가야만 한다"고도 했다. 이 정도면 FTA 찬성론으로서도 적극적인 찬성론이다.
"지지기반인 농심(農心) 다지기"
한마디로 한미 FTA에는 찬성하지만 쌀시장 개방에는 반대한다는 얘기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FTA 신중론자라는 해석은 오버"라며 "농민이 많은 TK지역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박 전 대표가 농심(農心)을 반영하는 발언을 한 것일 뿐"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 이 교수는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기반은 각각 수도권-도시근로자와 지방-농민으로 구분되는 경향을 보인다"면서 "물론 대선을 치르기 위해 농촌의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쌀 문제만 이야기 하는 몰이해에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쌀 문제가 협상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고 만약 개방됐을 경우 우리 경제에 미칠 파급력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지만, 박 전 대표가 유독 '쌀'만 언급한 데에는 '지지기반 다지기'라는 정치적 노림수와 그의 인식의 한계가 동시에 자리잡고 있다는 뜻이다.
만약 박 전 대표가 정말로 한미 FTA의 신중론자라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에 대해선 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방송 및 의료시장 개방, 제조업과 각종 서비스 산업시장의 개방을 통해 고통 받을 '한국민'은 논외의 대상일 뿐인가?
그의 진정성을 제대로 보이려면
이쯤 되다 보니 무심코 달력을 보는 순간 또 다른 의심도 들었다. 이번 주말부터 시작되는 설 연휴에 사람들이 '박근혜의 우리 쌀 사랑론'을 품고 귀향해 이야기꽃을 피워주기를 바란 것은 아닐까 하는…. "위기의 조국을 구하기 위해 나섰다"던 말도 양념처럼 곁들이면 박 전대표에겐 금상첨화일 테다.
적어도 13일 발언 전까지는 한미 FTA에 관해 원론적 입장만 밝혀 오던 박 전 대표가 갑자기, 그것도 미국에서 '쌀시장 개방 반대론'을 펼친 이유가 달력의 '빨간 날'처럼 선명해지는 순간이었다.
쌀 시장 개방으로 인해 예상되는 피해는 천문학적인 수준에 이른다. 누가 나서든 막긴 막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박 전 대표가 적극적인 미국 설득에 나선다면 바랄 나위가 없겠다. 개인적으로는 박 전 대표의 발언의 진정성을 믿고 싶다. 설마 한미 FTA라는 중차대한 문제를 '설연휴 용' 정도로 생각하는 대권 후보는 아니리라는 믿음이다.
강연의 맺음말에서 박 전 대표는 "한국과 미국 사이에는 '자유'와 '진리'와 '정의'라는 공통의 가치관이 있다. 이 공통의 가치관을 피와 땀과 눈물로 함께 지켜 온 50년의 역사가 있다"며 한미 관계의 '돈독함'을 강조했다.
그 자신이 정말 미국과 돈독한 관계를 갖고 있다면 귀국 전에 한 마디쯤 분명히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의구심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이 아닐까? 한미 FTA 협상은 그 자체가 불평등 협상이라고, 그리고 이쯤해서 그만 두는 것이 우리 경제와 사회를 위해 바람직한 것이라고.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