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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박정희의 덫'에 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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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박정희의 덫'에 걸리나

'정치공세' 항변에 정치권 '십자포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궁지에 몰렸다. 인혁당 사건 재심 판결과 긴급조치 위반사건 재판에 관여한 판사들에 대한 실명공개를 "나에 대한 정치공세"라고 항변한 데 대해 다른 당은 물론 한나라당 내에서도 비판의 화살이 쏟아졌다.

"좋으나 싫으나 짊어질 과제인데…"

한나라당 인명진 윤리위원장은 1일 KBS 라디오 <라디오 정보센터 박에스더입니다>에 출연해 "박 전 대표 입장에서는 자기를 겨냥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문제는) 싫으나 좋으나 피할 수 없는, 자기가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는 과제"라고 잘라 말했다.
▲ 지난 달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국회의원 및 당원협의회운영위원장 연석회의에 박근혜 전 대표가 참석 당직자들의 보고를 경청하며 생각에 잠겨 있다. ⓒ뉴시스

손학규 전 지사도 이날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판사의 명단을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문제에는 유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도 "(이번 판결은) 검찰에서도 항소를 포기한 역사적 판결이다. 이에 대해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고 박 전 대표를 비판했다.

당 밖의 비난은 더욱 거셌다. 열린우리당에선 정동영 전 의장, 김근태 의장이 샌드위치 공격을 퍼부었다.

김 의장은 이날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그것이 어떻게 박 전 대표에 대한 정치적 공격인가"라며 "한나라당 대표를 지내고 경선 주자 중 한 분인 정치지도자가 이 정도의 역사 인식을 갖고 있다면 국민과 역사에 부담이자 모독"이라고 공격했다.

정동영 전 의장도 "정치지도자라면 정치적, 도의적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 도리"라며 "박 전 대표가 시기를 문제 삼으며 왜 날 탄압하느냐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조순형 의원도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장성민입니다>에 출연해 "실명공개가 반드시 박 전 대표에 대한 정치적 공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 의원은 "이번 보고서에는 긴급조치 외에도 몇 건의 사건보고가 돼 있는데 전부 초점이 긴급조치에만 맞춰지다 보니 박 대표 본인으로서는 자신에 대한 공세가 아닌가 하는 피해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은 "박근혜 전 대표는 술김에 박정희 흉을 봤다고 징역을 살아야 했던 사람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라며 "천륜의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응당 머리를 풀고 무릎 꿇어 사죄부터 해야 올바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대의 아픔을 나누는 모습이었다면 어땠을까"

박 전 대표 측은 발끈했다. 박근혜 캠프의 이정현 특보는 당 안팎에서 쏟아지는 비난에 "그러니 정치공세라고 하는 것 아니냐"면서 "박근혜 대표는 정치인 아닌가. 본인이 알아서 할 것을 왜 입장을 밝히라느니 사과를 하라느니 하느냐"고 항변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사회적 화두로 반복될 수 있는 유신시절의 '과거사'가 박 전 대표의 아킬레스건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그렇다고 대선경쟁이 가열될수록 거세질 당 안팎의 '박정희 때리기'를 피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박정희 정권 시절의 과(過)를 박 전 대표가 어떻게 소화하느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功)을 강조할 때는 "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다. 이것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천륜이다"고 했던 박 전 대표가 유신시절에 대한 냉정한 평가에 인색한 태도를 보이는 '불균형'에 대한 지적이 적지 않다.

인명진 위원장은 "누가 옆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몫은 아니지만 앞으로 대통령이 되려는 분이니 그것에 대해 자신의 마음과 의견을 국민들에게 말씀 드리고 이해를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소한 '박정희 시대'의 명암에 대해 보다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대 김형준 교수도 "박근혜 전 대표는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며 "역사적 사실은 숨길 수 없다. 박 전 대표는 아버지 박정희를 극복해야 하는데 오히려 위축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만일 인혁당 피해자 가족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시대의 아픔을 나누는 모습을 보였다면 누가 박근혜 전 대표를 욕할 수 있겠느냐. 욕하는 쪽이 오히려 역풍을 맞았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박 전 대표의 부적절한 대응이 오히려 화를 키우고 있다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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