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이재명 대통령의 베이징 국빈방문은 윤석열 전 정부 시기 얼어붙었던 한중관계를 정상화 궤도에 복귀시킨 분수령이었다.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거치며 양국은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의 질적 성숙과 전면적 관계 복원을 선언했다. 서울이 남·북·중 협력을 위한 창의적 모멘텀을 제시하자, 베이징 역시 ‘세 척 두께의 얼음이 하루아침에 얼지 않는다(冰冻三尺,非一日之寒)’는 외교적 수사로 신중함을 보이면서도 호의적인 조치들로 화답했다. 서해 잠정조치수역(PMZ) 내 중국 측 고정 구조물의 자발적 이동이나 한국 게임에 대한 판호(서비스 허가권) 추가 발급, 민생 중심의 양해각서 체결과 출입국 절차 간소화 등은 이러한 온기의 증거였다. 정상 간 셔틀 외교가 재가동되며 표면적으로는 ‘복원의 원년’을 통과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얼마 전 7월 초 베이징에서 개최된 세계평화포럼(WPF)에서 감지된 저류는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린다. 이 포럼에 참석한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가 짚었듯, 제도적 복원이 곧 구조적 갈등의 해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중관계의 심연에는 대만, 중일관계, 그리고 나토(NATO)라는 세 개의 인화성 단층선이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구조적 비동시성의 동시성
이 현상을 국제정치학적으로 개념화하면 ‘구조적 비동시성의 동시성(synchronicity of structural asynchrony)’이라 부를 만하다. 양국 정상은 양자 차원에서 협력과 안정의 리듬을 맞추고 있으나, 다자·글로벌 차원에서는 미중 전략경쟁이라는 서로 다른 시간대 위에 서 있다. 정상 간 온기가 실무·안보 라인의 냉기를 완전히 상쇄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셔틀 외교의 재가동을 관계 정상화의 완성으로 오독해서는 안 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 외교가 보여준 대만, 인태 전략, 나토 협력 관련 메시지의 일관성 결여는 이러한 구조적 엇박자를 심화시키며, 결국 남북관계와 대중 외교 모두에 무거운 비용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첫 번째 단층선: 대만, ‘존재론적 안보’와 메시지의 혼선
중국 외교체제에서 대만은 협상 불가능한 ‘핵심 이익 중의 핵심’이자 시진핑 체제의 역사적 서사가 걸린 ‘존재론적 안보’의 영역이다. 이재명 정부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공식 재확인했음에도 베이징 조야의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 것은, 한국의 미시적 행보들과 다자무대에서의 발언이 거시적 선언과 어긋나는 신호로 읽히기 때문이다.
지난 봄 전자 입국 신고서의 중국(대만) 표기 변경 해프닝이나 여야 국회의원들의 대만 방문 및 정무차장 면담은 국내적으로 기술적 사안이나 의회외교의 자율 영역일지 모른다. 그러나 베이징의 렌즈를 통과하는 순간 이는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 동조하는 전략적 이탈로 재구성된다. 특히 한·EU 공동성명 등에서 북·러 밀착 규탄을 넘어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문제를 거칠게 건드린 점이나, 이종석 국정원장의 이른바 ‘대만 지렛대론’ 보도는 양국 간 인지적 불일치를 극대화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대만 카드를 압박 수단으로 쓰겠다는 발상은 중국 외교의 심장부를 겨냥하는 자충수다. 대만은 한국이 쥘 수 있는 지렛대가 아니라, 잘못 건드리는 순간 한반도 평화를 위한 중국의 건설적 관여 자체를 봉쇄하는 뇌관이다. 실제로 이러한 메시지 혼선 속에서 한동안 전략 소통 채널이 마비되고 북·중 정상회담 전 한반도 안정을 위한 물밑 대화가 무산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두 번째 단층선: ‘다카이치 리스크’와 연루의 딜레마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취임 이후 일본의 방위력 증강과 집단자위권 적용 범위 확대(대만 유사시 존립위기사태 적용)는 중일관계를 전례 없는 긴장으로 몰아넣었다. 이 지형에서 한국은 전형적인 ‘연루(entrapment)의 딜레마’에 직면한다. 한일 셔틀 외교 복원과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는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현실주의적 선택일 수 있지만, 중국의 시선에서는 일본의 팽창적 안보 노선 및 우익 군국주의 행보에 한국이 동조하는 신호로 읽힌다.
중국 외교부 아시아 담당국장의 방한이나 다롄 하계 다보스포럼 계기의 한중 총리 회담으로 갈등이 간신히 수면 아래로 내려갔을 뿐, 불씨는 그대로다. 한중일 정상회담이나 3국 FTA 협상에 대한 중국의 미온적 태도는 한국의 이중 포지셔닝에 대한 경고로 읽힌다. 미국이 대중 견제망에 한국을 연루시키려 하고 중국이 한국의 전략적 의도를 압박하는 형국에서, 정교함이 결여된 성급한 중일 중재론은 양쪽 모두의 불신을 사는 역효과를 부를 공산이 크다.
세 번째 단층선: 나토 밀착의 손익계산서와 북중러의 결속
최근 앙카라에서 개최된 나토 정상회의에 인도태평양 4개국(IP4) 가운데 한국 대통령만 참석한 대목을 베이징은 예리하게 주시하고 있다. 정부는 방산 수출이라는 실리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대외적으로는 한국이 ‘아시아판 나토’의 전위에 서거나 서방의 대중 견제 전선에 깊숙이 발을 들이는 모습으로 비칠 위험이 있다.
이러한 가치 중심의 진영 외교가 초래할 반작용은 가볍지 않다. 서방 안보체제와의 과도한 밀착은 북한이 그 틈을 타 중국과의 전략적 밀도를 높이도록 자극하며, 결과적으로 북중러 3국의 전략적 결속을 촉진하는 촉매가 될 수 있다. 북핵 공조와 한반도 관리에 반드시 필요한 중국을 잠재적 적대 진영으로 밀어내면서 얻는 단기적 방산 이익이, 한반도 평화의 창이 닫히는 거시적 안보 비용을 상쇄할 만큼 큰지는 냉정히 재계산해 봐야 한다.
전략적 자율성과 실사구시의 외교로
세 단층선은 개별 사안이 아니라 서로 연동된 하나의 구조다. 대만에서의 신뢰 훼손은 중일관계 인식에 투영되고, 이는 다시 나토 밀착에 대한 경계로 이어진다. 다가오는 11월 APEC 정상회의 등에서 한반도 평화 논의의 실질적 진전을 이뤄내려면, 지금 여기서 한중관계 발전의 준칙을 재정비해야 한다.
첫째, ‘역지사지’에 기반한 외교 메시지의 일관성 확보와 신호 발신의 정교화다. 한미동맹 현대화와 한일 협력이 중국을 겨냥한 변형된 ‘나토의 동진’이 아니라는 점을 고위급 전략대화를 통해 명확히 설득해야 한다. 특히 대만 문제처럼 휘발성이 강한 이슈는 ‘정돈된 수사’로 관리되어야 한다. 가령 의회 차원의 교류 시에도 ‘공식성’을 부각하지 않거나 상대의 민감성을 자극하지 않는 초당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신호는 발신자의 의도가 아니라 수신자의 해석에 의해 완성된다.
둘째, 9월 하순 예정된 시진핑 주석의 방미를 전략적 창(window)으로 활용해야 한다. 미중관계가 전술적 관리 국면에 들어설 때야말로, 한국이 한미중 3자 협력 공간을 선제적으로 여는 데 유리한 시점이다. 안보는 한미일 협력을 근간으로 하더라도, 한반도 안정และ 경제 영역에서는 중국과의 파트너십을 병행하는 ‘전략적 자율성’의 여지를 확보하는 것이 평화중견국 외교의 본령이다.
대통령의 연쇄 순방이 마무리된 지금은 엄격한 평가의 시간이다.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한국의 구상이 국제사회에 얼마나 실효성 있게 전달되었는지, 국익의 본질이 진영 논리에 가려지진 않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아울러 전략적 복합 외교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참모들의 정책적 상상력 부족과, 외교 안보 라인 내부의 인식 부정합을 노출한 숙의 시스템 역시 전면 점검 대상이다.
외교는 전부 아니면 전무의 게임이 아니다. 상대의 핵심 이익을 정면으로 건드리지 않으면서 우리의 실리를 극대화하는 냉정한 현실 감각이 지금 필요하다. 셔틀 외교의 온기 아래 흐르는 세 갈래 균열을 관리하는 섬세하고 유연한 외교적 가위질이 절실하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