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끼는 날이 많아질 테니 일조시간이 줄어 농작물 피해 또한 심각할 것이다. 안동댐, 소양댐이 그것을 말하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권의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집착은 거의 편집광적이었다.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여론의 향배에 따라 '한다', '안 한다'를 반복하더니 투자재원을 '재정'이니, '민자'니 하며 말을 예사로 바꿔 국민을 혼란케 했다. 또 '물류'라더니 '관광'과 '환경'으로 말을 뒤집었다. 사업비도 고무줄처럼 멋대로 '늘렸다', '줄였다'를 반복했다. 그래도 반대여론을 의식했던지 2008년에는 4월 총선거가 가까워지자 '대운하'를 관련부처 업무보고에서도 빼고 공약집에서도 감췄다.
'운하'라는 말을 숨기고 '치수'로 호도하더니 결국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가닥을 잡았다. 기어코 2009년 10월에는 착공한다며 막무가내로 나갔다. 이 과정에서 정권의 신뢰는 추락하고 4대강 사업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증폭되었다.
이명박은 대선후보 당시 한반도 대운하를 100% 민자로 추진하며 사업비는 10조 원을 약간 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민자로 재원을 조달한다더니 어떤 설명도 없이 슬그머니 재정으로 바뀌었다. 사업비 계산도 주먹구구식인지 사업규모를 대운하에서 4대강 사업으로 축소했는데도 22조 원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 여기에다 연계사업인 유람선, 문화공간, 자전거길, 산책로, 체육시설, 관광시설 따위를 더하면 사업비는 30조 원으로 불어난다. 당초보다 사업규모가 축소되었는데도 공사비가 3배가량 증액된 셈이다.
산출근거의 정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계산법이라면 과연 이 사업비를 가지고 정상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지, 임기 내에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는지 하는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그것을 의식했는지 '돌관공사'라고 해서 공사를 밤낮으로 밀어붙여 많은 부실공사와 함께 많은 인명피해를 초래했다.
이명박 정권은 대운하가 아니라 4대강 살리기 사업이라고 강변하나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비판과 함께 운하로 가려는 술수라는 전문가들의 질타가 그치지 않았다. "홍수피해는 주로 하천에서 일어나는데 4대강에 보를 설치한다고 홍수를 막을 수 있느냐?", "낙동강에만 8개의 보를 설치하는데 여기에다 갑문만 달면 운하가 된다", "낙동강에서 4.2억㎥의 엄청난 물량을 준설하는데 이것은 수심 6m를 확보해 화물선을 띄우려는 것이 아니냐?", "물은 산간지방이나 도서지역에서 부족한데 낙동강에 보를 설치해 13억㎥의 물을 확보하려는 것은 운하로 가려는 것이다" 등등 운하에 대한 의구심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보로 물을 막으면 저수량이 늘고 용존산소 공급이 느려져 조류가 발생한다.", "보를 건설해 악화된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3조4000억 원을 따로 투입한다는데 이것은 예산낭비다." "초대형 공사임에도 4개월 만에 마스터플랜을 확정하고 9개월 만에 착공하는데 이것은 졸속공사이다, 또 공사기간도 너무 짧다." 등등 수질악화와 졸속계획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집권당인 한나라당에서는 4대강 사업을 불촉의 성역으로 아는지 침묵으로 일관했다. 2009년 정기국회에서 2010년도 예산심의를 앞두고 한나라당에서 4대강 예산이 편중편성됨에 따라 지역숙원사업 예산이 줄자 불만이 표출되었다.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청와대에서 함구령이 떨어져 4대강 사업이 성역임을 다시 확인했다.
▲ 4대강 사업 공사 현장. ⓒ프레시안(최형락) |
성역이 된 4대강 사업, 귀를 닫은 집권 세력
이명박 정권이 말하는 4대강 사업이 운하이든 치수이든 한반도 남쪽의 물줄기를 바꾼다는 점에서 역대 최대의 국책사업임에 틀림이 없다. 한번 파괴된 자연은 복구가 불가능하다. 이 점에서 구간별-단계별-사업별로 면밀한 환경적 타당성 조사가 중요했다. 대운하를 추진하던 시기와 달리 2008년 9월 세계적 금융위기가 내습해 집단도산과 고용파괴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런 위기상황에서는 투자효율을 최대화하기 위해 경제적 타당성 조사도 필수적이었다. 2009년 재정적자가 51조6000억 원에 달해 국가부채가 366조 원으로 늘어날 전망이었다. 이렇게 재정적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자면 먼저 국책사업의 완급을 조정했어야 한다. 과연 토목사업인 4대강이 최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는지 면밀한 분석-검토가 선행되었어야 했다.
다시 말해 미래산업에 집중 투자함으로써 성장동력과 함께 고용창출을 키우는 사업을 최우선순위로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4대강과 같이 시급하지 않은 사업은 후순위로 정하는 것이 옳았다. 그런데 생산적 토론이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토목사업은 건축사업과 달리 산업연관효과가 낮아 일자리가 별로 없다. 중장비를 동원해 흙을 파내고 덮고 싣고 하기 때문에 기술자-기능공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는다.
4대강을 따라 하천둔치에서 농사짓는 많은 농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났다. 하천부지는 국유지다. 점용허가를 받은 농민에게는 1㎡당 3533원의 2년치 영농손실 보상금을 줬다. 이 돈으로는 대체농지를 구하기는커녕 당장 생계를 꾸리기도 어려웠다. 문제는 지역에 따라 허가를 받지 않은 농민이 훨씬 더 많다는 점이 심각했다. 성주군의 경우 점용허가면적은 1ha에 불과한데 허가받지 않은 경작지가 57ha나 되었다.
국토해양부 자료에 따르면 4대강 하천부지 전체규모는 5425만3000㎡이었다. 이곳에서는 주로 감자, 참외, 오이, 수박, 토마토, 파, 배추, 무 등 밭작물을 재배해 인근도시에 공급했다. 신선 채소류는 저장성이 낮아 공급이 10%만 달려도 가격파동이 일어난다. 4대강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채소류 값이 폭등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명박 정권이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는 동안 종교를 달리하는 많은 성직자, 신도들이 4대강을 찾아가 죽어가는 강의 아픔을 달래려고 숱한 기도를 올렸다. 종교계가 아무리 자연재앙을 말해도 듣지 않자 생명의 강을 구하려고 행동에 나서 전경들과 몸싸움도 많이 벌였고 많이 연행되기도 했다.
하지만 강의 신음은 집권세력의 귀에 와 닿지 않는지 굴삭기의 굉음이 점점 요란해졌다. 강바닥을 파헤쳐 준설토사가 산더미를 이루었다. 퇴적물을 걷어내니 악취가 진동했고 그 일대가 중금속 오염으로 중병을 앓았다. 파일을 박고 강줄기를 틀어막으니 흙탕물이 넘쳐났다. 둔치를 갈아엎는 바람에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던 많은 농민들이 쫓겨났다. 강을 끼고 인류의 문명이 발상했으니 많은 매장문화재가 쏟아졌으나 덮기에 바빴다.
이명박 정권 들어 관변단체-어용단체의 활약상이 두드러졌다.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시민-사회단체들을 신문하단 통단광고를 통해 좌파나 '좌빨'이라고 매도하며 공격했다. 4대강 사업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 큰돈이 어디서 나는지 알 만한 일이다. 그들은 시민-사회단체 집회에 전경보다 먼저 나타나 욕설, 위협, 시비를 일삼고 구호도 연호했다. 법원판결이나 방송보도를 트집 잡아 규탄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런 모임에서는 전경이 곤봉을 접고 방관만 했다.
2010년 6·2 지방선거가 다가오자 정권 차원에서 우호적 여론조성을 위해 전 방위 홍보활동을 강화했다. 국토해양부가 4대강사업추진본부와 산하 5개 지방국토청에 홍보담당 전문인력을 배치하고 공직자 교육도 강화했다. 우호단체들로 하여금 찬성 성명서를 발표하도록 추진했다.
방송이든 신문이든 주류매체는 4대강 살리기가 죽이기라고 말하지 않았다. 방송은 낙하산 사장을 투하해 장악했고 신문은 종합편성채널이란 방송을 미끼로 낚았기 때문이었다. 이 나라에서 역사적으로 4대강 사업보다 더 큰 환경파괴 사건이 없었음에도 외면했다. 자연훼손, 수질악화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국론분열, 예산낭비 또한 막대하나 본 척도 하지 않았다.
기사가치를 집권세력의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져 판단하여 언론의 사명을 방기하고도 부끄러움을 몰랐다. 다만 소수의 비주류매체가 그 심각성을 고발하나 영향력이 미약해 거의 들리지 않는 형국이었다. 언론이 거짓말을 능사로 알고 참말을 마다하니 종교인들이 나섰지만 이명박 정권은 그들의 호소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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