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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철과 새만금은 득표용 날림 국책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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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철과 새만금은 득표용 날림 국책 사업

[1987~2012년 경제민주화 실패의 역사·③]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그것을 기점으로 소비에트연방공화국과 동구권에서 공산주의가 붕괴되었다. 1985년 소련에서 고르바초프의 등장은 공산주의의 대변혁을 예고했다. 그가 대내적으로는 개혁(perestorica)과 대외적으로는 개방(glasnost)을 주창하면서 철의 장막이 걷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노태우 정권도 집권 초기부터 북방외교, 북방경제로 요란했다. 방향은 옳았지만 성과에 급급한 나머지 시장에 대한 면밀한 조사도 없이 시끄럽기만 했다. 당시 많은 기업인들이 정부의 정책에 편승해 북방국가들을 드나들면서 합작투자니 뭐니 해서 금맥이라도 잡은 듯이 부산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정권 차원에서 소련과 동구권 국가에 경협자금을 지원하면서까지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소련에는 30억 달러의 차관을 줬지만 아직까지도 미수금이 남아 있는 실정이다. 소련이 해체된 이후 러시아가 채무를 승계했지만 상환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

당시 외채가 420억 달러에 달했다. 그 시점의 외환사정을 고려한다면 그 같은 거액의 차관까지 주면서 수교를 서둘 이유가 없었다. 공산체제가 하루아침에 붕괴되었지만 시장경제는 하루아침에 도입되지 않는 사실을 묵과했던 것이다. 당시 구공산국가들은 공통적으로 심각한 생필품난을 겪었지만 구매력이 없어 한국상품을 수입할 여력이 없었다.

밖으로는 돈 주고 수교, 안으로는 대형 국책 사업 남발

노태우 정권은 돈을 주고 수교(修交)를 사는 한편 국민경제에 막대한 부담을 주는 대형 날림 국책공사도 남발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경부고속전철과 새만금 사업이다. 사업의 타당성-경제성과 함께 환경영향을 따지지 않고 정치적 판단에 따라 막대한 재정투입이 필요한 대형사업을 잇달아 확정했던 것이다.

그것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득표전략으로 급조했다. 노태우 정권은 1989년 불쑥 공사비 5조8462억 원을 들여 1998년까지 경부고속철도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건설계획을 날림으로 만든 바람에 착공 후에 노선을 변경했다. 당초에는 대구~밀양~부산을 잇는 직선이었다. 그런데 1992년 대구~경주~부산으로 바꾸었다. 이것은 경주, 포항, 울산 지역의 표를 노린 득표전략이었다.

여기서도 말썽이 터졌다. 경주 도심을 통과하면 문화재를 훼손한다는 반대여론에 밀려 경주 우회로 바꾸었다. 이어 1992년 4월 천안~대전 구간에서 부랴부랴 착공식을 열었다. 땅 한 평도 매입하지 않은 채 하천부지에서 첫 삽을 떴다. 국책사업을 그해 12월 대통령 선거를 겨냥한 득표수단으로 이용했던 것이다.

착공한 지 1년여가 지난 1993년 6월 김영삼 정권이 건설계획을 대폭 수정했다. 완공시한을 당초보다 4년이나 늦은 2002년으로 미루고 공사비도 2배 가까이 증액했다. 그 이후에도 알게 모르게 완공기한과 공사비가 늘어났다. 2004년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경부고속철도가 개통됐다고 떠들었지만 그것은 부분개통이었다.

경부고속철도 1단계공사는 409.8㎞인데 광명~대구 238.6㎞는 고속철로로 달리고 나머지 서울~광명과 대구~부산은 기존철로를 전철화해서 운행하는 반쪽짜리 고속철도였다. 동대구~경주~울산~부산을 연결하는 이른바 2단계 구간은 169.5㎞이다.

그런데 그중에서 128.5㎞인 동대구~부산 구간을 2010년 11월 1일 서둘러 개통했다. 이 또한 정치적 행사여서 G-20 정상회담을 겨냥한 것이다. 나머지 대전~대구 도심구간 41㎞는 2014년에 가서야 완공될 예정이라고 한다.

1989년 노태우 정권은 고속철도 건설계획을 발표할 당시 완공시기를 1998년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공사가 지연되자 김영삼 정권이 건설계획을 수정해서 4년 늦은 2002년에 공사가 끝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그 완공시기를 10년이나 넘긴 2012년까지도 공사가 끝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당초 건설계획을 발표한 지 25년, 착공한 지 22년이 지나서야 완공된다는 이야기다.

당초 공사비도 5조8462억 원이 들어가면 완공된다고 했다. 그러더니 완공시기와 공사비가 수시로 늘어나더니 2010년 전 구간을 완공하려면 당초보다 3배 이상 많은 18조4358억 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발표가 나왔었다. 이제는 공사를 완전히 끝내려면 공사비가 당초보다 무려 3.5배 이상 늘어난 20조7282억 원이나 들어간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선거를 앞두고 득표용으로 공사비와 공사기간을 주먹구구로 산정했다는 소리밖에 안 된다.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을 이렇게 엉터리로 계산해서 추진함으로써 국가경제에 막대한 낭비를 초래했지만 어느 누구도 책임진 사람이 없다.

고속철도는 평지에 적합하다. 그런데 경부고속철도는 전 구간의 70% 이상이 터널과 교량을 통과한다. 터널공사를 하다가 대규모 폐갱도를 만나 공사를 중단하거나 노선을 변경하기도 했다. 교량상판 설계에서 결함이 발견되어 공사를 멈추기도 했다. 정밀지질조사도 하지 않고 설계도면도 없이 공사를 벌여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숱하게 일어났다. 천성산 터널공사를 둘러싼 환경파괴 논란도 그 까닭에 발생했던 것이다.

▲ 방조제 완공 전, 새만금 공사 모습. ⓒ뉴시스

단군 이래 최대 국책 공사, 실상은 주먹구구

1987년 12월 당시 민정당 대통령 후보 노태우는 느닷없이 새만금 사업을 발표했다. 바다에 방조제를 쌓아 대규모 농업용 간척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 또한 호남지역 득표전략이었다. '호남 푸대접론'이 선거쟁점으로 떠오르자 공약을 급조했던 것이다. 경제적-기술적 타당성은 물론이고 환경파괴와 자연훼손에 대한 검토도, 여론수렴도 없이 서둘러 발표하여 공사과정에 많은 논란과 함께 말썽이 일어났다.

노태우 정권은 1991년 8월에야 공사를 개시했다. 공사착공시한 또한 1992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겨냥한 것이었다. 득표를 노린 정치적 포석이었다. 새만금 사업도 대역사이다. 바다를 막아서 길이 33.9㎞의 방조제를 축조하여 간척지를 조성하는 공사이다. 김영삼 집권 당시인 1996년 7월 시화호의 수질오염이 심각한 환경문제로 대두되면서 새만금 공사가 도마에 올랐다. 새만금도 시화호와 같은 꼴이 되지 않겠느냐는 여론이 비등했다.

이에 앞서 1993년 12월 우루과이 라운드가 타결되었고 1994년 1월 WTO(세계무역기구)가 출범하면서 쌀 시장이 부분적으로 개방되었다. 여기에다 식생활 변화에 따라 쌀 소비량이 줄면서 쌀이 남아돌자 농지 효용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됐다. 차라리 갯벌을 그냥 두는 게 경제적 이득이 크다는 논란이 일어났던 것이다.

환경단체의 반발이 드세져 1999년 5월부터 2년간 방조제 공사가 중단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관민공동조사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환경단체가 매립허가 취소소송을 제기함으로써 그 공방은 법정으로 넘어갔다. 2005년 2월 서울행정법원이 환경단체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은 공사를 강행한다며 이에 맞서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당시로는 공사를 중단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노태우 정권이 새만금 사업을 추진할 당시 총사업비를 8200억 원, 공사마무리 시기를 2012년으로 예상했었다. 그런데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업중지, 공사중지 가처분에 의해 두 차례나 사업이 중단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여기에다 어업보상비 4400억 원이 추가되었고 방조제 유실로 777억 원의 손실이 발생하면서 사업비가 1조3000억 원으로 증가했다. 이 사업비도 2002년에는 당초보다 2.5배에 가까운 3조489억 원으로 늘어났다.

2010년 4월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됐다. 1991년 첫 삽을 뜬 지 19년만의 일이었다. 완공된 다음에도 일부 구간이 유실되어 말썽을 빚기도 했다. 1998년 감사원이 감사를 통해 공사완료 예정시기인 2011년까지 추정공사비는 농지조성을 위한 비용이 5조9530억 원(외곽공사비 2조2930억 원, 내부개발비 3조6600억 원)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 감사원은 전라북도가 바라는 대로 용도를 변경해서 복합산업단지로 조성할 경우 28조5529억 원(외곽공사비 2조2930억 원, 내부개발비 26조2599억 원)이 소요된다고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완공시기도 2020년이니 2030년이니 하는데 그 막대한 재원을 과연 조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 선거전략으로 대형 국책사업을 날림으로 추진함으로써 공사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와 부실공사가 반복적으로 발생했고 그 과정에서 국가경제에 막대한 손실을 안겨줬다. 국책사업이라면 경제적-환경적 타당성을 검토하고 재원조달계획을 세우고 투자의 우선순위를 따져야 한다. 그런데 선거전략으로 이용하는 바람에 국민부담만 가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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