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청문회를 개최했지만 이 또한 소득이 없었다. 경제파탄은 특정인에 국한해 문책할 사안이 아니었고, 경제청문회를 연다고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성질도 아니었다. 경제청문회에서 당사자들이 아니라고 대답하면 그만이다. 경제정책은 양면성을 지녀 어느 부문이 정책실패에 해당하는지 단정하기도 쉽지 않다.
다만 1997년 11, 12월 외환부족을 적절하게 관리하지 못했다는 결론이나 얻을 수 있었다. 환율방어를 일찍이 포기하지 않아 외화유출을 촉진했다는 정도였다. 경제청문회 또한 정략적으로 이용된 측면이 있었다.
온 국민이 피와 땀으로 이룩한 30년간의 경제실적이 일순에 무너져 버렸다. 경제파탄은 경제정책의 누적적-총체적 실패에서 비롯된 만큼 그 원인은 상호 연관되어 복잡하다. 병인을 진단해야 처방이 가능하다. 원인을 다각적-심층적으로 분석해야 경제재건을 위한 방안과 방향을 도출할 수 있었다.
원인규명을 위해서는 권위 있는 전문가들로 구성하고 국무총리급을 위원장으로 하는 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 산하에는 사무국도 두고 분과별 위원회도 설치했어야 했다. 외환, 금융, 재정, 통상, 노동, 세제 등은 물론이고 표면적으로는 IMF 사태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농업과 같은 분야도 포함했어야 한다. 관료집단의 의식구조와 국민의 소비행태도 연구하고 분석해 정책에 반영하도록 했어야 한다.
원인을 진단한 다음에는 정책대안을 단기적-장기적 과제로 나눠 제시했어야 한다. 그런데 김대중 정권은 국민적 지혜를 모으는 작업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과거 정권과 마찬가지로 경제파탄에 일차적 책임이 있는 관료집단에 의존해 그들이 내놓는 즉흥적인 대책으로 위기를 순간적으로 모면하는 식으로 대처해 나갔다.
당시 구미언론이 동아시아 경제위기를 보도하면서 가장 많이 쓴 용어는 crony capitalism이었다. 심지어 buddy buddy capitalism이라는 용어도 썼다. 번역하면 '정실 자본주의' 또는 '연고 자본주의'쯤 된다. 국가경제를 놓고 끼리끼리 갈라먹고 봐주다가 나라를 망쳤다는 뜻이다. 정곡을 찌른 표현이었다.
나라를 살리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지배세력'을 배양해온 연고주의의 부패사슬을 끊어야 했다. 그것을 위해서는 과감한 경제-정치개혁을 단행했어야 한다. IMF 사태와 같은 위기적 상황에서만 가능했는데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경제-정치개혁에 대한 재벌, 관료집단, 정치권 등 기득권층의 저항이 드셌겠지만 원인규명을 위한 기구를 만들고 거기서 도출된 제안을 근거로 추진했다면 가능했다.
위기상황이 경제-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이끌어내는 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정치자금법을 개정해 자금조달-사용을 엄격하게 규제하여 투명성을 높였어야 했다. 공직자윤리법도 개정했어야 했다. 전담기구를 상설화하여 예금계좌추적권을 부여했어야 했다. 또한 존-비속의 재산도 합산하도록 했어야 했다.
의정사를 되돌아보면 독직사건에 연루되어 복역까지 한 인사가 의정단상에서 큰소리치는 모습이 너무 많다. 지역연고에 따라 맹목적적으로 투표권을 행사하는 유권자의 잘못이기도 하지만 국회의원 피선거권을 엄격히 제한하지 않은 탓이 크다. 정상배들이 국회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제도적으로 봉쇄했어야 했다.
비례대표제도 대수술이 필요했다. 직능대표제의 구실을 하지 못하고 계파끼리 갈라먹거나 정당 지도부의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실은 모르는 국민이 없을 정도였다. 국가경제가 거덜 난 마당에 국회의원 299명도 너무 많다. 집권당의 당직자로서 5년 동안 당-정협의를 맡아서 해온 인사들이 당시 '이제는 집권당이 아니니 책임이 없다'는 따위의 말을 서슴지 않았다. 이런 인사들이 의사당을 점령해 헛소리나 일삼았으니 국가경제가 파탄 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 1999년 1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IMF 환란조사 특위'에서 윤증현 재경원 세제실장,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 박재윤 전 통산부장관(오른쪽부터) 등 7명의 증인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제대로 된 원인 규명도, 과감한 개혁도 없었다
정권이 아무리 바뀌어도, 국민이 선출하지 않았는데도 영원히 권력을 장악하는 세력이 있다. 그것은 관료집단이다. 비관료 출신 장관이 오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연대하여 축출한다. 정책실패가 국민경제에 고통과 부담을 주어도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전문지식이 필요한 분야에도 인력을 외부에서 조달하지 않고 내부조직에 의존한다. 기술직에도 행정직을 배치할 정도이다. 서로 갈라 먹다보니 이런 일이 일어난다. 신진대사는 기득권 박탈로 알고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관료집단은 산하기관-단체, 유관기관-단체를 장악하고 상층부에 관료출신을 배치한다. 이렇게 방계세력을 구축하고 정책방향을 의도대로 조정한다. 은행장이 되고 싶다면 은행원이 되지 말고 재무관료가 되어야 출세의 길이 보인다. 재무관료 출신들이 금융기관-금융회사의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관치금융이 횡행한다. 재무관료의 명령과 지시만 이행하다보니 심사분석과 신용평가의 기능이 무력화되어 버렸다. 대출규모가 거액일수록 그렇다. 그 결과 부실채권을 양산하여 금융체제를 무력화함으로써 금융-외환위기를 초래했다.
고시출신을 주축으로 하는 관료조직은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고시서열과 학연-지연 같은 연고를 중시하여 비고시파를 배척한다. 이련 폐쇄조직이 국무를 담당하니까 국가가 발전역량을 발휘하는 데 한계가 따른다. 인력공급을 외부시장에 공개해서 무능력자를 색출하고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을 퇴출했어야 했다.
관료조직은 방대한 규모만큼이나 관리도 방만하다. 국민세금을 먹어 치우는 공룡 같은 조직이다. 정부조직을 재창출(reinventing)하는 수준으로 개편했어야 했다. 규제완화를 통해 불필요해진 조직을 과감하게 정비했어야 했다. 김대중 정권이 집권하자마자 단행한 조직개편은 재정의 효율성-투명성과 상관없고 방향도 잘못되었다. 금융, 예산, 통상업무의 이원화는 업무의 중복-분산으로 인해 오히려 효율성을 저해했다.
한국재벌은 혈족중심의 족벌체제다. 경영지식도 없는 친인척이 경영 사령탑에 앉아 지시와 명령만 일삼는다. 전문 경영인도 실력과 능력에 따르지 않고 정치실세와 관료집단의 학연과 지연에 맞춰 발탁한다. 그러니 시장동향과 경기변동을 알 리 없다.
금융자금에 의존하여 사업확대에 주력한 결과 다계열-다업종 체제를 구축했지만 시장동향과 경기변화에 따라 작동하지 않는다. 결국 금융부채를 부실화해 금융권을 부도위기로 몰아간 것이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했어야 했다. 부실경영에 따른 금융부채의 부실을 근거로 가능한 작업이었다. 총수의 돈줄인 위장 계열사를 색출하고 불황사업과 한계기업을 퇴출했어야 했다.
개혁을 가로막은 장애물, DJP연합
김대중 정권이 국가적 경제위기를 지렛대 삼아 과감한 정치-경제개혁을 단행하지 못한 것은 그가 호남 출신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이기도 했다. 불행하게도 영남지역의 보수층을 중심으로 형성된 맹목적적인 '김대중 거부세력'이 존재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들은 이 나라에서 가장 위험한 색깔론으로 무장하고 있어 그 장벽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데는 현실적으로 많은 저항과 반발이 예상되었다.
무엇보다도 DJP연합이 제도개혁을 단행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DJP는 대통령 김대중, 국무총리 김종필을 전제로 정권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단순한 정치적 연대체이지 이념적 결사체가 아니었다. 쉽게 말해 김종필이 대통령은 될 수 없으니 국무총리라도 하겠다는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에 불과했다. 김대중의 입장에서도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충청권을 배경으로 하는 김종필과 정치적으로 연대하는 것이 절실했다.
자유민주연합의 주력세력이 유신잔당이었다는 점에서도 정치-경제개혁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특히 '경제분야는 자민련의 몫'이라는 역할분담이 오히려 경제-사회제도를 신자유주의 방향으로 전환토록 만들었다. 이런 이유로 김대중이 그 한계를 넘어서기에는 정치적으로 너무나 큰 도박이었다. 그 까닭에 그의 경제-사회정책이 보수화했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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