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단순한 역내 상품교역의 자유화가 아니다. 포괄적 경제통합으로서 한국경제를 세계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에 종속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상품의 범위를 넘어 자본-기술-용역-인력의 자유로운 이동을 뜻한다.
쉽게 말해 미국인이 한국에 와서 내국민과 동등하게 영역의 제한 없이 돈을 벌겠다는 것이 FTA이다. 상품은 물론이고 법률, 의료, 회계, 통신, 방송, 택배, 금융, 보험, 특허 등등 공공성이 강한 분야도 더 열라는 소리다. 여기에다 전기, 가스, 철도, 수도 등 공공서비스도 미국의 사업영역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협정에 맞춰 한국의 법령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추진 당시 최재천 의원(열린우리당)이 조사한 바로는 국내법 1163개 중에 15%인 169개가 협상내용과 상충한다는 것이다. 관련법령을 개폐해야 한다는 소리다. 이것은 그만큼 국민생활에 끼치는 영향이 광범위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경제제도-사회체제에 일대변혁이 일어난다. 경제주권-사법주권에 이어 식량안보까지 포기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 내용이 방대하고 난해하며 전문적이다. 이 중에는 국민경제-사회생활에 파괴적인 악영향을 끼치는 독소내용이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노무현 정권은 국민적 논의를 배제했다.
투자자국가제소권은 미국 투자자한테 한국법의 초월적 지위를 부여하는 제도이다. 미국 투자자가 한국정부의 정책이 협정을 위반하여 손해를 보거나 기대이익을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 국내법원을 떠나서 세계은행 산하의 국제분쟁중재센터에도 제소할 수 있다. 국내법원의 판결과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제소대상으로 삼는다. 미국 투자자의 이익이 국가의 공공정책과 법률체계를 우선한다는 점에서 헌법위반이다.
투자자국가제소권은 한마디로 미국기업이 한국의 국가정책에 간섭할 수 있는 길을 튼 것이다. 이것은 사법주권의 포기다. 식량안보 없이 국가독립은 없다. 식량자급률이 25%선에 불과하여 추가개방은 농촌붕괴로 이어진다. 식량주권 포기에 따라 340만 농민의 생존권이 위협받는데도 밀어붙였다.
세목과 세율은 국회가 정한다고 헌법은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협상단은 특별소비세를 비롯한 자동차 세제개편을 양보했다. 국회와 협의하지도 않고 조세주권을 협상대상으로 삼았다.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의료정책은 통상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신약 특허권 연장과 함께 약가산정에 대한 다국적 제약사의 이의신청을 보장했다.
정책결정권을 포기하고 국민부담을 가중시키는데도 국회는 강 건너 불처럼 쳐다봤다. 막상 미국에서는 민주당 하원의원 12명이 국민건강권보다는 특허연장에 역점을 둔 협상이라며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정부조달시장을 개방하면서 미국의 주정부는 예외로 했다. 명백한 불평등 협상이나, 국회는 이 또한 본 척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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