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권은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IMF 사태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경제관료를 문책하지 않았고 공적자금에 관한 전권을 부여했다. 그 결과 일부 경제관료는 경제위극(經濟危極)을 틈타서 권한확대에만 몰두해 마치 '경제경찰'처럼 행세했다. 결과적으로 위난을 틈타서 관료집단의 권한이 극대화되었고 이에 따라 관권경제 체제가 더욱 강화되었다.
IMF 관리체제가 도입된 지도 어언 15년이 지났다. 공적자금을 무려 168조3000억 원이나 투입하여 외견상으로는 외환-금융위기가 극복됐다. 하지만 그 후유증과 부작용이 아직도 세금증가의 형태로 국민경제에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2007년 5월말 현재 회수율이 절반 수준인 51.7%에 그쳤다는 자료가 나온 바 있으나 그 후 명확한 운영실태가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불가피한 손실발생은 인정되지만 상당한 액수가 공적자금의 방만한 운영, 허술한 관리로 인해 증발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든다. 당시로서는 부실채권을 정확하게 파악할 경황이 없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부실추정액이 당초보다 2.5배나 늘어났다면 정책의 신뢰성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다.
64조 원을 투입하면 금융체제가 정상화된다고 장담했는데 그것이 왜 168조 원 이상으로 늘어났는지 설득력 있는 해명이 없었다. 확실한 근거나 객관적인 기준도 없이 대충 어림짐작으로 정책을 수립-집행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
워크아웃이니 뭐니 해서 망한 기업에 돈을 퍼붓고 강제로 이른바 빅딜을 한다고 시간을 허송하며 부실규모를 키운 이유도 모르겠다. 그 돈으로 은행장의 연봉을 몇 배씩 올려주고 봉급도 주고 명퇴금도 줬다. 오죽하면 공적자금은 공짜자금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관리부실을 비판하는 소리가 높았다. 이 과정에 정치권력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다행이지만 그 개연성은 아직도 남아 있다.
지역 간의 발전불균형이 심각한 현실에서 수천억 원씩이면 살릴 수 있는 지방은행들을 대거 퇴출시키면서 부실덩어리 제일은행은 살렸다. 제일은행은 대우그룹의 주거래은행으로서 사실상 사금고 노릇을 했다. 따라서 퇴출은행의 선정기준에 대한 논란이 그치지 않았다.
공적자금을 무려 17조6532억 원이나 투입한 제일은행을 단돈 5000억 원에 정체불명의 외국투기자본인 뉴브리지캐피탈에 팔아넘겼다. 투기자본인 뉴브리지캐피탈은 5년 만에 1조1500억 원을 챙기고 제일은행을 영국의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에 처분했다. 세금을 한 푼도 물리지 않았고 공적자금 5조 원을 허공에 날린 꼴이 되고 말았다.
제일은행은 이제 100% 외국계은행이 되고 말았다. 이름도 그동안 SC제일은행이라고 하더니 2012년 1월부터 아예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이라고 바꿨다. 대우그룹은 IMF 사태 이전부터 지급불능상태에 빠져 있었고 그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우 회사채를 매입했던 투자자에게 95%까지 환매해 주면서 18조 원이나 날린 근거는 무엇인지도 의문거리다. 그것은 예금이 아니기 때문에 보호대상이 아니었다.
▲ 스탠다드차타드은행 나르골왈라 아시아 총괄 대표(오른쪽) 등이 2005년 1월 10일 서울 파이낸스센터 사무실에서 '제일은행 지분 100%를 인수하기로 뉴브리지캐피탈과 합의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64조 원이면 정상화된다더니 168조 원 투입…설득력 있는 해명 없어
김대중 정권은 2001년 2월 부랴부랴 공적자금관리위원회를 만들었다. 이미 100조 원 이상이 투입된 상태에서 또 40조 원을 조성해야 할 판이어서 집행과정이 방만하다는 비판의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여론을 무마하려고 관변인사들을 모아 위원회를 만들었다지만 당시 무엇을 하는지 모를 판이었다.
세 차례나 위원장을 바꿔치느라 시끄럽기만 했다. 경제관료들이 비판여론의 화살을 피하려고 위원회라는 들러리 간판을 내세운 꼴밖에 안 되었다. 마치 국민의 대표성이 있는 기구에서 논의하여 투명하게 공적자금이 집행된 것처럼 포장하려는 의도를 가졌을 것이다.
2002년 6월 재정경제부가 발표한 '공적자금의 성과와 상환대책'에 따르면 공적자금 156조 원 가운데 69조 원을 회수불능액으로 추정했다. 그 타당성에도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뒤집어 말하면 회수액이 87조 원이고 예상 회수율이 55.6%에 달한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바로 6개월 전인 2001년 12월에는 4년간에 걸쳐 150조 원이 투입됐는데 회수율이 24.7%에 그쳤고 30조 원은 회수가 불가능하다고 발표한 바 있었다. 실적치에 비해 전망치가 너무 낙관적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가 보유한 자산을 처분하는 시점의 시장상황에 따라 회수불능액이 예측보다 크게 증가할 수 있었다.
예금보호공사와 자산관리공사가 공적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하면서 이자지급조로 18조 원을 재정융자특별회계에서 차입했다. 그런데 김대중 정권은 그것을 탕감해 줬다. 이것도 회수불능액에 포함시키는 것이 옳았다. 또 김대중 정권은 예금보험공사의 자회사인 정리금융공사가 회수해서 구조조정업무에 재투입한 2조6000억 원을 공적자금에서 제외했다. 이 거액을 회수불능액에서 제외한 이유도 모르겠다.
여기에다 김대중 정권은 국책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해 출자한 10조 원도 액면가대로 회수될지 궁금한 실정이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전체조성액과 회수가능액이 얼마나 정확하고 타당한지 의문이 든다. 실제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가 보유한 자산을 처분하는 시점의 시장상황에 따라 회수불능액이 예측보다 크게 증가할 수 있었다.
2002년 6월 김대중 정권은 앞으로 25년에 걸쳐 손실추정액 69조 원을 금융권이 20조 원, 재정이 49조 원을 분담하여 상환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정분담은 세목신설. 세율인상 또는 감세축소를 통해 해결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런 방식에 의한 공적자금 상환은 국민부담을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킨다는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금융권 분담은 예금보험료를 25년간 0.1% 부과하여 그 재원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 당시 정부의 방침이었다. 결국 은행은 대출이자 인상 또는 예금이자 인하라는 방법으로 그 부담을 국민에게 전가할 것이 뻔했다. 손실추정액이 69조원이라고 치더라도 그것은 원금에 불과했다. 이자를 포함하면 그 규모는 2배가량 늘어난다. 이 막대한 부담은 전 국민이 앞으로 한 세대에 걸쳐 갚아야 할 짐이었다.
문제의 심각성은 공적자금의 조성-투입-회수과정에서 도덕적 해이가 심각했다는 것이 당시 금융계의 지배적 시각이라는 데 있었다. 금융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공적자금을 공돈처럼 쓴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금융업 종사자들이 국민 세금을 저렇게 헤프게 쓸 수 있는지 걱정하는 소리를 사석에서도 자주 들을 정도였다. 감사원의 특별감사를 통해서도 방만한 운영실태가 부분적이나마 드러난 바 있었다.
금융부실화에 일차적 책임이 있는 부실기업-금융기관의 임직원들이 국내외에 빼돌린 재산규모가 7조 원이 넘는다고 했다. 또 판단오류로 11조 원이 과다하게 집행됐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것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데 있었다. 계좌추적권도, 수사권도 없는 감사원이 부실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김대중 정권은 금융부실 관련자의 은닉재산을 끝까지 추적해서 환수했어야 했다. 당시 국회도 각성했어야 한다. 정치권은 김대중 정권 집권 5년 동안 방탄국회니 뭐니 해서 국회를 공전시키면서 공적자금의 방만한 운영에 대해서는 무관심-무책임으로 일관했다. 입법부가 행정부에 대한 견제기능을 포기하니 그 엄청난 국민의 혈세가 삽시간에 증발하는 사태가 일어났던 것이다.
국정조사를 통해 정책실패와 함께 운영실태, 책임소재를 샅샅이 밝혀내고 모든 관련자에게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도록 했어야 한다. 극소수의 경제각료-관료들이 그 엄청난 국민혈세를 절대권을 갖고 집행했다. 정책실패에 대해서도 엄중한 문책이 있어야 했다. 국민은 선출직이 아닌 임명직에게 그 같은 과도한 권한을 부여한 사실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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