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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밥 될 뻔한 DJ, '납치 사건'의 진실은?
[김대중 평전 '새벽'·15] 도쿄, 1973년 8월 8일
김대중은 일본에서 일어난 '김대중 납치 사건'을 2007년 1월 23일 구술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34년이 지났지만 당시의 순간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죽음을 앞에 둔 시간 속에서 느꼈던, 전신을 휘감던 당시의 공포들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김대중은 살아서
김택근 언론인
2011.10.20 08:37:00
박정희는 언제 DJ를 죽이기로 결심했나?
[김대중 평전 '새벽'·14] "앉아 있어도 달리고 있었다"
1972년 10월 17일 김대중은 일본에 있었다. 고관절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도쿄에 머물렀다. 오후 5시쯤 서울의 친구가 숙소인 제국호텔로 전화를 해왔다. 친구는 오후 7시 대통령 박정희가 중대 발표를 할 것이라고 알려줬다. 매우 불길했다. 고향 친구인 김종충과 텔레비전
2011.10.17 07:56:00
DJ의 상징이 된 지팡이, 그 안타까운 사연은…
[김대중 평전 '새벽'·13] 다시는 뛰지 못했다
박정희 정권은 국회의원 선거를 1971년 5월 25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대통령 선거를 치른 지 한 달도 안 되는 시점이었다. 야당이 대선 패배의 후유증을 추스르기 전에 국회를 장악하겠다는 일종의 기습이었다. 부랴부랴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데 이번에는 총재 유진산이 자
2011.10.13 08:11:00
경상도 vs 전라도…1971년 4월 27일 갈라졌다!
[김대중 평전 '새벽'·12] 거대한 축제
1971년 4월 18일은 정치 인생에서 특별한 날이었다. 서울 장충단공원에서 유세가 있었다. 일찍 일어나 마당을 거닐었다. 선거는 열흘 정도만 남겨두고 있었다. 유세장에서 열광하던 청중들이 떠올랐다. 김대중은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문득 마당 한켠을 보니 꽃들이 피어
2011.10.10 10:32:00
노무현의 고백 "DJ는 ○○ 정치인이다!"
[김대중 평전 '새벽'·11] 쇠처럼 그리고 바람처럼
40대 대통령 후보 김대중은 정책 선거를 천명했다. 상대 후보 박정희에 대한 인신공격은 하지 않기로 했다. 정책으로만 승부하기로 했다. 향토예비군 폐지, 미·중·소·일 4대국의 한반도의 전쟁 억제 보장(4대국 안전 보장론), 남북한 화해와 교류, 공산권과의 관계 개선과
2011.10.06 08:27:00
YS 제치고 대통령 후보 된 DJ, 그 비결은?
[김대중 평전 '새벽'·10] 마침내 갑옷을 입다
기회는 천사의 얼굴로만 오는 것이 아니었다. 악마의 모습으로도 찾아왔다. 목포의 전쟁에서 이긴 김대중은 이미 정계 거물이었다. 정국을 보는 눈은 더욱 예리해졌다. 국회에서의 활동 또한 빼어났다. 한 번은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을 국회에서 호되게 꾸짖었다. 동백림 사건
2011.10.03 13:41:00
박정희의 '김대중 콤플렉스', 그 근원은…
[김대중 평전 '새벽'·9] 김대중 대 박정희
김대중과 박정희는 1958년 만날 뻔했다. 김대중은 인제 국회의원 선거에서 후보 등록도 못하고 쫓겨났고, 하도 억울해서 인제군청 근처에 있는 사단장 관사를 찾아갔다. 누군가 붙들고 호소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단장은 외출하고 없었다. 발길을 돌리며 당번병에게 물었다.
2011.09.29 10:29:00
DJ는 박정희가 심은 '첩자'였다?
[김대중 평전 '새벽'·8] 아름다운 꽃, 왕사쿠라
이희호를 처음 만난 것은 1951년 부산에서였다. 이희호는 대한여자청년단의 외교국장이었고, 김대중은 청년 실업가였다. 김대중의 눈에 비친 이희호는 맑은 피부에 이지적인 눈매를 지닌 활달한 여성이었다. 웃는 모습이 티 없이 맑았다. 그녀는 대학생들이 주축인 면우동지
2011.09.26 08:06:00
5·16은 '구국의 결단'? "박정희는 '어둠의 세력'!"
[김대중 평전 '새벽'·7] 4월 혁명과 5월 쿠데타 사이
정·부통령을 뽑는 3월 15일은 나라가 온통 불법·무법 천지였다. 사전 투표와 무더기 표 투입으로 자유당 표가 유권자보다 많은 지역이 속출했다. 경찰과 반공 청년단이 투표소를 포위했고, 야당 참관인은 매를 맞고 쫓겨났다. 그러자 마산 시민들이 일어났다. 경찰이 시위
2011.09.22 11:04:00
김대중, 평생 가슴에 묻은 그 여인은…
[김대중 평전 '새벽'·6] 세 번의 실패 그리고 슬픔
김대중은 정계에 뛰어들었다. 1954년 목포에서 제3대 민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입후보했다. 목포 지구 노동조합이 지지를 약속했기에 기대가 컸다. 하지만 관권이 개입하여 이를 간단히 무력화시켰다. 결과는 10명의 후보 중에서 5등으로 낙선했다. 무소속의 한계를 절감했
2011.09.19 08:1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