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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45>
생명사상 세미나
누군가가 반론을 제기했다. 그러나 아무개는 막무가내로 나에 대해서, 그리고 원주사람들에 대해서 모욕적인 발언을 계속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때 자리에 앉은 채로 목소리를 높여 반론을 제기한 사람이 바로 지금은 고인이 된 빈민운동가이며 개혁정치가인 제정
김지하 시인
2003.03.13 08:52: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44>
새벽
동학에 대한 현단계의 수준은 매우 천박한 정도다. 이른바 사회경제사학을 한다는 나이 젊은 맑스 보이들이 그 무렵 아무렇게나 무책임하게 내뱉은 동학론, 소위 '갑오농민전쟁론'(이것부터가 문제다)이란 것은 한마디로 유럽에서 빌려온 기계제품인 고무신에 맞추려
2003.03.11 09:07: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43>
동학과 생명론
생명에 대한 관심은 동학에 대한 관심을, 동학에 대한 관심은 생명에 대한 관심을 끌고 들어왔다. 동학은 생명사상이었다. '모심' 곧 '시(侍)' 한 자야말로 천지만물의 생존의 비밀이었다. 우리는 모두 '모심으로써 살아 있다' '우리는 생명을
2003.03.08 08:54: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42ㆍ제3부 시작>
감시
내가 가는 곳이면 어디에나 정보부 원주 분실에 정보를 전하는 안테나들이 있고 다방, 술집, 성당과 사회개발위원회 사무실에도 각기 자기 나름의 독특한 정보창구가 있어서 몇시 몇분에 김아무개가 박아무개와 어디서 만나 무얼 했다는 정보가 싸그리 전달되었으니 가는 곳
2003.03.06 08:50: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41ㆍ제2부 끝>
출옥(出獄)
한 잔인지 두 잔인지 몇 잔인지는 모르나 주교님이 사 주시어 소주를 마시기는 마셨던 것 같다.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에는 없다. 다만 씁쓸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 마루밑 댓돌과 벽에 쓰인 숫자와 글씨들을 보자 몸과 마음이 소롯해졌던 일만이 기억에 환하다.
2003.03.04 08:48: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40>
광주
사흘을 넘기고 나서 나는 길고 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점호나 시찰할 때도 앉아서 잤다. 눈을 뜨고도 잤다. 나는 거의 죽은 것 같았다. 참선할 때의 그 시커먼 뻘구덩이들, 꺼뭇꺼뭇한 돌담부락들이 보이고 ‘모로 누운 돌부처’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흰빛과 검검한
2003.02.27 08:46: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39>
병사에서 4
아내가 ‘월간중앙’을 넣었다.웬 난데없는 월간중앙일까 하고 뒤지다 보니 지학순 주교님의 글이 실려 있었다.놀라운 내용이었다.첫째, 그 글은 신군부의 등장에 쐐기를 박았다. 둘째, 3김씨에게 비판을 가했다. 셋째, 학생들의 집단적 행동에 대해 당분간 자제할 것을 호소
2003.02.25 08:36: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38>
병사에서 3
3월1일.‘서울의 봄’이 왔다.구속되었거나 계류중이던 자 전원이 석방되었다. 나만 남았다. 까닭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또 다시 도전할 놈’이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날개 달린 컴퓨터’라는 거였다.서운했다.그러나 지난 몇 달간 밥도 제대로 먹고 운동시간도 한 시간
2003.02.22 08:57: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37>
병사에서 2
언제 나갈지 알 수는 없으나 이번에 나가면 새로운 대응, 아마도 사상과 이념에서부터 전략까지 전체를 수정해야 할 것이다. 이미 사태가 바뀌었다. 우리의 모든 것은 다 노출되었다. 스테레오 타입으로는 어림없다. 엇비슷한 해결책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근본적인 것
2003.02.20 08:51: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36>
병사에서 1
청산거사는 박정희가 죽고 세상이 흔들흔들하자 참선 끝에 자기의 사명을 크게 깨닫고 자기 추종자들을 총집결시켜 일종의 관제 데모를 통해 민심을 수렴한 뒤 정부와 협력해 사회를 안정시키는 쪽으로 의견을 정한 뒤 그것을 청와대와 보안사에 알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
2003.02.18 08:5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