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었다.
캄캄한 밤, 구치소 정문을 피해 뒷문과 뒷골목으로 해서 중앙정보부의 일종의 안가 형태인 한 호텔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새벽까지 기다리며 이것저것 구질구질한 당부를 들어야 했다.
새벽 먼동이 터오자 나는 밖에 있던 지주교님의 승용차로 옮겨 탔다. 지주교님과 사회개발위원장인 기획실장 영주(榮注) 형님이 동승했다.
용인쯤에 와서 해가 바로 정면으로부터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주교님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징조가 좋다. 태양을 바라보고 동쪽으로 가는구나!"
시커먼 벌판에 흰 빛의 밝음이 조금씩 어리기 시작하며 초겨울의 추위를 넘어 무엇인가가 싹터오르는 듯했다.
<사진>
그러나 그렇게 낙관적이기만 했을까. 이때를 나는 훗날 이렇게 시로 썼다. 그렇게 낙관적이지는 않고 매우 시니컬하다.
용인 갈림길을 지날 때
새벽 푸르름 물든 꿈꾸는 들판
지새는 먼동 스며 꽃다운 산봉우리들
가남휴게소에서 한잔
여주강에서 또 한잔
소주 취해 다시 보니 아뿔사 허허
새카맣게 까마귀떼 덮인
흰 소금덩어리, 흰 비닐덩어리, 흰 얼음덩어리
가끔씩
얼음에 갇힌 흙 꼼지락거려쌌고
풀씨 틔우려 이따금씩 보시락거려쌌고.
한 잔인지 두 잔인지 몇 잔인지는 모르나 주교님이 사 주시어 소주를 마시기는 마셨던 것 같다.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에는 없다. 다만 씁쓸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 마루밑 댓돌과 벽에 쓰인 숫자와 글씨들을 보자 몸과 마음이 소롯해졌던 일만이 기억에 환하다.
육년만에 디뎌 보는 대청 아래 댓돌에는
아버지가 울며 새기셨다는 내 재구속 날짜
'1975년 3월13일'
육년만에 올라선 대청위 흰 벽에는
선생님이 주역에서 끌어쓰신 글씨 한 폭
'하늘과 산은 몸을 감춘다.'
산아
숱한 네 깊은 골짜기
네 바위도듬 등성이며 봉우리들
한결같이 흰 눈 덮여
눈부신 치악산아.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알림>**
제2부 '혁명'부터 '출옥'까지는 241회로 끝나며 제3부가 계속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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