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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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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36>

병사에서 1

서울구치소 맨 끝 한 귀퉁이에 병사가 있고 병사 2층 맨 끝 한 모퉁이에 내 방이 있었다. 창밖으로 인왕산과 무악재가 훤히 보였다.

창밖 가까이 구치소 벽돌담이 있는데 매일 정해진 시각에 매가 한 마리 날아와 그위에 앉아 있고는 하였다. 나는 매번 매와 눈을 맞추는 연습을 하고는 했으니 그 역시 참선이었다. 그러나 산 대상과의 선적(禪的) 관계는 매우 어려웠다. 내가 일정한 심리상태로 들어간다 해도 상대가 갑자기 푸드득 날거나 눈을 껌벅껌벅해 버리면 끝장이다. 어려운 만큼 그러나 해볼 만했다. 마치 매의 날개 깃처럼 싱싱한 포근함이 가슴에 번져 나갔다.

시작한 지 보름이 못 돼서 웬일로 매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때 병사의 책임자인 의무과장은 소설가요, 의사인 윤호영(尹虎永) 박사였다. 같은 문인으로서 나를 돌봐 주시는 일로 알고 거의 매일 한 번씩 문을 열고 의무과장실로 불러내 놀다 가도록 배려해 주셨다.

한번은 그렇게 의무과장실로 놀러 갔을 때 이상한 한 사람이 윤박사와 마주앉아 얘기하는 것을 보았다. 윤박사는 종시 웃으며 눈짓으로 내게 뒤에 있는 의자에 앉도록 했다. 뒤에 앉아 가만히 들었다. 전라도 사투리였다.

“아이고! 인자는 정치의 정자만 들어도 신물납니다. 절대로 정치는 안 할랍니다.”

눈이 툭 튀어나오고 얼굴이 새카만 사람, 꼭 촌사람 같은 그이가 바로 국선도(國仙道)라는 선수련(仙修鍊)의 대가(大家)인 ‘청산거사’(靑山居士)라고 알려준 것은 윤박사였다.

청산거사는 박정희가 죽고 세상이 흔들흔들하자 참선 끝에 자기의 사명을 크게 깨닫고 자기 추종자들을 총집결시켜 일종의 관제 데모를 통해 민심을 수렴한 뒤 정부와 협력해 사회를 안정시키는 쪽으로 의견을 정한 뒤 그것을 청와대와 보안사에 알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루는 느닷없이 보안사에 붙들려 가 보안사 기관원들에게 쇠파이프로 직신직신 몹시 얻어맞은 뒤 왈,

“너 임마, 김대중이 알지?”

“모르는디요.”

“이 새꺄! 네 말투가 벌써 그쪽인데 모른다면 말이 돼?”

그리고는 또 패고 또 패고.

“너 이 새끼! 관제 데모 한답시고 네 졸개들 모두 동원해 학생들하고 손잡고 진짜 데모하려고 했지? 야 임마! 빨리 불어! 김대중이 몇 번 만났어?”

“한 번도 안 만났는디라우.”

“이 새꺄!”

죽도록 맞았다고 했다. 그러나 자기가 수련을 많이 한 사람이어서 가까스로 버텨 냈다고도 했다. 이제 나가면 다시 산에 들어가 절대로 나오지 않겠다고도 했다. 청산거사를 돌려보낸 뒤에도 윤박사는 내내 웃고 있었다.

“왜 그렇게 웃으십니까.”

“하하하, 저 사람이 그래봬도 졸개가 수만 명이나 돼요. 그리고 우리나라 선도(仙道)의 정맥(正脈)을 이어받은 사람이라더만!”

기이했다.

그러나 기이하기로 말하면 청산만이 아니었다. 병사에는 소요(逍遙)라는 이름을 가진 한 이상한 스님이 있었는데, 이 사람을 가끔 보면 ‘묵’이라고 불리는 한 ‘아사리 깡패’와 형제처럼 붙어다니며 그 묵을 보살피는 것이 내 눈에는 똑 카아슨 맥칼라스의 ‘슬픈 카페의 노래’와 흡사했다. 한편으로는 우습고 또 한편으로는 슬픈 풍경이었다.

그 소요 스님이 툭하면 한시(漢詩) 몇 줄을 써서 ‘청소’를 통해 보내오고는 했는데 다 잊었고 그 중 괴상한 한 줄만 기억에 남아 있으니, 12월 한겨울에 버들 얘기여서 기이한 중에도 또한 기이했다.

‘이 겨울 한복판에 저 연못 버들의 새롭고 새로운 푸르름이라!’(冬中塘柳 新新靑)

하하하.

말이 되지 않으니 조금 삐딱한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소요혁명가’(逍遙革命家)던가! ‘동중신신청’(冬中新新靑)이란 혁명이 아니고 무엇인가.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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