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에 대한 현단계의 수준은 매우 천박한 정도다. 이른바 사회경제사학을 한다는 나이 젊은 맑스 보이들이 그 무렵 아무렇게나 무책임하게 내뱉은 동학론, 소위 '갑오농민전쟁론'(이것부터가 문제다)이란 것은 한마디로 유럽에서 빌려온 기계제품인 고무신에 맞추려고 큰 발을 잘라내는 억지춘향이었으니 엥겔스의 '독일농민전쟁론'에 꿰맞추려고 깊은 성찰이나 혁명적 감동도, 치밀한 과학적 조사와 검증도 거치지 않고 "북접(北接)은 반동이요, 남접(南接)은 온동", 그러니 혁명세력이라는 식으로 치켜세우는 등 엉터리 동학사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따위 엉터리 사학에서는 손화중(孫化仲)이나 김개남(金開南) 등 수련과 조직, 그리고 혁명적 예절을 엄수한 혁명의 조직적 주류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으로 폄하하고 극소수의 추종자밖에 확보하지 못한 일개 접주였던, 그러나 인물만은 출중했던 전봉준을 클로즈업시켜 난데없는 계(契)를 동원하고 두레를 항상적인 조직으로까지 키워놓는 사기극을 연출하게 된다.
이 폐해는 지금까지도 계속되지만 역사학적 대오류를 범한 당사자들은 도무지 자기반성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동학을 '아전유학(俄前儒學)'으로까지 폄하하는 자가 동학혁명사를 쓰거나 동학기념사업의 이론적 자문역을 하고 있고 동학혁명을 1894년 초에 일어나 그해 겨울에 패배한 전라도 일원의 농민봉기 정도로 축소하고 있는 전라도의 혁명기념사업이란 꼴불견들 모두가 바로 이같은 자칭 사회경제사학자들의 치명적 오류와 사기극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학에 깊지 못한 민중을 위해 일부러 쉬운 한자만을 골라쓴 동학경전이 어떻게 민중적 종교혁명경전이 아닌 아전유학이 될 수 있으며 무슨 놈의 혁명이 사상창조와 수련정진과 조직적 확산과 그리고 그에 이은 합법적인 대중운동의 단계도 없이 다만 눈앞의 경제사회적 모순 하나만으로 일시에 무장봉기할 수가 있다는 것인가? 가능하다하더라도 그것은 혁명이 아니라 소위 폭동주의, '푸치슴'일 뿐 아니던가!
만약 사상과 수련과 조직과 그 확산 그리고 대중운동의 일정체험이 축적되지 않고서야 어떻게 황매천(黃梅泉) 같은 반(反)동학적 유생의 눈에조차 신비하게 비친 '굶는 자 먹이고 아픈 자 치료하고 사악한 자 징치방면하는' 그 혁명 주류인 손화중포(孫化仲包) 양인농민(良人農民)들의 질서와 예절과 규율이 일거에 나올 수 있다는 말인가? 세상에 그런 혁명도 있는가? 아니 그렇다면 소위 자칭 사회경제사학자란 자들은 철저한 유생인 황매천과 똑같이 동학을 사이비종교에 불과하고 혁명주의자의 한때의 용무지지(用武之地) 즉 혁명적 이용물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가?
나는 출옥 후에 계속해서 이같은 사학도들의 오류에 대해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나 내내 그들의 대답은 나에 대한 비아냥과 모략중상뿐이었다. 그러나 원불교(圓佛敎) 영산대학(靈山大學)의 박맹수(朴孟洙) 교수처럼 동학 관련의 전국 각지를 샅샅이 훑어보고, 그리고도 모자라 일본까지 건너가서 4, 5년 동안이나 동학혁명 전후한 일제의 한국 침략과정에서 일본의 첩보기관과 언론, 그리고 장사꾼들과 낭인 집단의 정보망에 걸려든 동학 관계 첩보들에서 우선 1894년 고부기포 전에 해월 선생과 전봉준 사이의 빈번한 서신 연락 사실이 있었음을 확인하고 그것에 기초해서 동학혁명사를 다르게 보고 있는 것을 아는가?
동학을 모르면 형평사를 알 수 없고, 고려혁명당을 모르면 최초의 사회주의 물결인 고려공산당의 역사사회적 실체를, 그 이후 소위 남조선 노동당의 정체를 모르고, 그리되면 해방과 전쟁 이후의 혁신계노선을, 국내파 공산주의와 민족좌파를 모르고 천도교 청우당(靑友堂) 및 신간회(新幹會) 등 당시의 연합전선 노력을 알지 못하니 그럼에도 이 땅 위에서 4·19혁명의 물결을 알고자 하며 광주사태 이후의 학생운동과 민주민족통일전선을 역사적으로 해명하려 시도한다는 말인가?
동학에서 형평사로, 거기에서 고려공산당으로, 다시 상해와 모스크바의 국제공산주의 운동을 통해 조선독립혁명을 큰 스케일로 기획한 김단야(金丹冶)를 아는가? 해월 최시형 선생의 장자(長子)로 고려공산당의 우당(友黨)인 고려혁명당을 창건하고 해외의 민족독립혁명을 기획했던 최동희(崔東熙)를 아는가? 공산주의자와 카프와 천도교마저 모조리 친일파로 전락하던 태평양전쟁 말기, 전국적인 민중무장봉기를 기획하여 자금과 조직과 요인포섭을 공작하다 검거되어 반병신이 되도록 고문을 당하고서도 해방후 남북한 단독정부수립을 반대하기 위해 백범(白凡)과의 비밀약속 아래 월북하였다가 검거되어 피살된 청우당(靑友黨) 당두(黨頭) 김기전(金起田)을 아는가?
북한의 국내파 공산주의 리더이며 해방직후 고당(古堂)과의 협약 아래 남북통일민주정권을 겨냥했던 현준혁과 원산 함흥의 저 유명한 노동운동가 오기섭을 아는가?
그렇다면 박헌영은 아는가?
몽양 여운형은 정말 알고 있는가?
한마디 더 묻자! 북한의 고당과 남한의 백범은 아는가?
삼균주의(三均主義)의 조소앙(趙素昻)과 의열단(義烈團)의 김약산(金若山)을 아는가?
죽산(竹山) 조봉암(曹奉岩)은 아는가?
4 월혁명 직후의 민족통일혁명의 인사들은 아는가? 민족일보는 아는가?
자유주의자인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와 서재필(徐載弼)은 아는가?
이러한 인사들과 그들의 활동 및 그 역사사회적 배경을 검토하지 않고 지난 60년대, 70년대, 80년대의 민주화와 변혁운동을 설명할 수 있는가? 또 민족의 현재와 현재의 변혁기획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어떤가?
동학은 개벽사상이다.
개벽은 '종말 아닌 종말'로서 주역은 이것을 '종만물 시만물(終萬物 始萬物)' 즉 종시(終始)의 시간관으로 보는 바 그것은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그것은 한 집안일 뿐이고, 그 후천개벽사적 혈통은 최수운에서 20년 만에 김일부(金一夫)로, 김일부에서 또다시 20년 만에 강증산으로 이어지는 동양과 한국의 일대 풍운인 것이다.
우리는 서양에 의한 한 문명사가 저물고 동북아시아나 동아시아와 함께 전세계 인류가 새롭게 모색하고 창조코자 노력하는 새로운 전지구적, 전우주적 대문명사(大文明史), 후천개벽사를 알아야 한다. 그러자면 그 철학과 논리로서 변증법 대신 역리(易理)를 배우고 아니다, 그렇다(不然其然)의 생명문법을 철저히 적용하며 실천해야 한다. 바로 이 역리를 잘 아는 것을 가리켜 동학의 13자주문은 '만사지(萬事知)'라고 하여 수련의 완성점, 우주진화사의 이른바 '오메가포인트(Omega point)'의 동학적 개념인 지화점(至化点)으로 본다.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나는 이 말을 웅변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이미 원주캠프에서는 상식이 되어 있었고, 또 지난 3년여에 걸쳐 나와 나의 벗들, 아우들의 공부모임인 삼남민족(三南民族) 네트워크의 공부방향이 되어왔다. 이것을 공개적으로 검토할 용의가 있는가?
이 흐름 위에 유불도 및 기독교와 모든 동서의 철학, 과학 등 이슬람까지도 종합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초현대적인 풍류선도(風流仙道)를 일으켜볼 용의는 없는가?
이런 문제의식 위에서 다시금 20여년 전 원주에서의 공부테마를 제기하는 셈이다. 바로 이 노력이 새로운 생명문화운동의 동양적 에콜로지와 선불교적 디지탈 및 사이버네틱스 사이의 종합운동 등과 어울려 인류의 새 문화를 만들지는 않을 것인가?
그리하여 전인류문화의 기점인 아시아의 일대 문예부흥, 상고사(上古史)의 일대 원시기본(原始道本)이 일어나지는 않겠는가? 바로 그것이 이른바 '생명과 영성의 문명'은 아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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