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15일 11시 59분
홈
오피니언
정치
경제
사회
세계
문화
Books
전국
스페셜
협동조합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25>
계엄령
‘계엄령’이라는 알베르 까뮈의 작품이 있다. 다 읽고난 느낌은 ‘상황’이 주인공이라는 것. 그것이 지나쳐, 하긴 지나칠 만도 하지만, 종교의 신(神) 대신에 실존적인 신(神), 즉 ‘신적(神的)인 것’이 되었다는 나의 독후감이다. 그 날 오후, 방송반의 후배 참모들, 박
김지하 시인
2002.08.22 09:08: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24>
6ㆍ3으로 가는 길
5월 25일이던가 28일이던가, 일요일이어서 등교한 학생들도 별로 없었는데 20여명이 먼저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머리엔 흰 띄를 두르고 검은 작업복이나 교복 차림으로 가마니 위에 모두 누워 있었다. 그리고 마이크를 통해 방송반이 모든 의사표시를 하고 있었다.정문 밖과
2002.08.20 09:15: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23>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5월 20일이었다.당시 박정희와 김종필이 내건 정치이념이란 허명(虛名)은 ‘민족적 민주주의’란 것이었다. 우리들이 지향하는 민중 주체의 민족주의, 민중민족혁명의 이념을 도용(盜用)한 것이 분명했다. 말인즉슨 유럽이나 미국식 민주주의는 민도(民度)가 낮아서 아직 이
2002.08.17 09:17: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22>
최루탄 문학
원주에서 나는 매일 밤, 매일 낮 바로 그 선교사 ‘이발소의 땅’으로 갔다. 가서 속으로 서투르나마 기도했다. 조국과 나를 위해 나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조동일에게서 원주로 소식이 왔다. 상경(上京)하라는거였다. 반가워 쏜살같이 올라왔더니 대학가는 거의 매일 데모
2002.08.15 09:07: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21>
화형(火刑)
‘3.24 제국주의자 화형식(火刑式)’을 보고 있었다. 그 날 나는 도서관 밑 숲속에 앉아 정문 안쪽에서 고장난 책상다리 등을 모아다 불질러 일본 제국주의자의 허수아비를 태우는 동료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김중태가 연설을 했다.과연 그는 웅변가였다.여기저기서 플
2002.08.13 09:20: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20>
성병
요절(夭絶)한 영화감독 하길종(河吉鍾)을 기억할 것이다. 문리대 불문과를 나와 도미(渡美)하여 UCLA에서 ‘대부(代父)’의 프란시스 코폴라와 함께 영화를 공부하고 돌아온 하길종을 기억하는 사람도 아직은 많을 것이다.그의 ‘화분(花粉)’, ‘한네의 승천’, ‘병태와 영
2002.08.10 09:20: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19>
그 겨울
1963년 겨울.그 겨울 나는 원주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그 겨울 나는 원주의 한 다방에서 시화전(詩畵展)을 열었다. 현실과 몽상, 과거의 어두운 기억과 미래에의 판타지, 모더니스트적이거나 슈르적(的)인 것과 민족적이고 민요적인 것이, 국가적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2002.08.08 09:09: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18>
미국
미국은 한국에 대해서 무엇일까?이 질문 이상 바보소리가 없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치고 바보소리 아닌 것이 없는 것, 그것이 바로 미국이라는 존재다. 그러나 그 때 그 무렵 우리들 사이에서 미국은 누구나 잘 알 듯이 신식민주의, 패권주의, 제국주의 종주국이었고, 6
2002.08.06 09:14: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17>
광주공민학교
목포에서 서울로 돌아온 것은, 햇볕은 따갑고 그늘은 추운 초가을, 토용(土用)의 계절이었다. 학교에 들려보니 조동일형이 사방으로 나를 찾고 있었다.그때 서울대 선후배 등을 중심으로 한 전투적인 민족주의 그룹이 경기도 광주의 한 시골마을에 농촌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2002.08.03 09:11: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16>
황톳길
남도의 황토빛은 누른빛이 아니다. 그것은 핏빛이라 해야 옳다. 강변으로 난 그 핏빛 길을 따라 화당으로, 부줏머리로, 오감리로, 상리로 며칠을 일삼아 십리나 이십리 길을 걷고 또 걸었다. 호풍이네 과수원 너머 갓바위, 그 밑에서 물결치는 푸른 물에 출몰하는 돌고래떼도
2002.08.01 09: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