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 제국주의자 화형식(火刑式)'을 보고 있었다. 그날 나는 도서관 밑 숲속에 앉아 정문 안쪽에서 고장난 책상다리 등을 모아 불질러 일본 제국주의자의 허수아비를 태우는 동료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김중태 형이 연설을 했다.
과연 그는 웅변가였다.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지고 불길은 사납게 솟아오르고 기자들은 열심히 연설 내용을 따라 적고 있었다.
학생들은 땅바닥에 앉아 흥분과 격정으로 샛노오래진 얼굴들을 하고 이마에는 흰 띠, 손에는 플래카드들을 들고 환호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지나 대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본(日本) 외상(外相) 오히라와 한국쪽 특사 김종필(金鍾泌)의 불타는 허수아비들을 발로 짓밟으며 교문 밖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진압은 없었다. 시위(示威)가 전개되었다. 구호가 외쳐졌다. 주먹이 공중으로 공중으로 무수히 솟아올랐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뛰어들고 싶었다. 풍덩실 그 격정과 신념의 불꽃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성병(性病)!
나는 성병환자였다.
자격이 없었다.
한 시구가 그때 내 가슴을 맴돌았다.
'뛰어들고 싶어라
뛰어들고 싶어라
풍덩실 나도 저 속에 뛰어들고 싶어라
문둥이는 서서 울고
데모는 가고-'
한하운(韓何雲)의 시다.
문둥이보다 더 나쁜 성병!
나는 성병환자였다. 누우런 고름이 소변 마려울 때마다 속옷을 더럽혀 썩는 냄새가 주위에 풍겼다.
조동일 형은 모습을 감췄고, 서정복이나 하일민·주섭일 형 등 민통 멤버들은 보이지도 않았다. 보이는 건 김중태·김도현·현승일 형 등 신진 리더들, 뉴 페이스들이었다.
나는 그날 저녁 속으로 내내 울음을 삼키며 캄캄한 원주로 내려갔다.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