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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과 놀다 <68>
태상왕을 달래는 임금
5월 들어 문하부는 태상왕과의 갈등 관계가 딱했던지 글을 올려 태상왕에 대한 문안을 부지런히 하라고 건의합니다. 그러나 태상왕 궁전의 일 보는 사람들을 정리하고 절제사로 하여금 번갈아 호위하게 하며 중과 노예의 무리는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게 하라는 것은, 겉으로
이재황 실록연구가
2002.03.13 10:12:00
조선왕조실록과 놀다 <67>
태상왕의 불편한 심기
개성으로 옮겨가기 전인 1399년 설날, 임금이 종친을 거느리고 태상왕에게 인사하려 했지만, 태상왕은 수륙재 때문에 재계중이라며 하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임금은 안팎 옷감 한 벌만 드리고 돌아왔습니다.태상왕은 이때 개인 재산으로 대장경을 인쇄하고 있었는데, 경상도
2002.03.11 10:07:00
조선왕조실록과 놀다 <66>
개성으로 환도하다
1399년 2월, 임금은 참찬 이거이가 선영(先塋)에 성묘를 가겠다고 청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아 개성에 있는 어머니 한씨의 묘인 제릉에 가서 직접 제사지내려 했습니다. 행차를 움직이려 하니, 문하부에서 글을 올려 말렸습니다.“전하께서 제릉에 직접 제사하고자 하시니,
2002.03.08 09:32:00
조선왕조실록과 놀다 <65>
격구를 즐기는 임금
정종은 한동안 경연에 열심이더니 해를 넘기면서부터는 격구(擊毬) 쪽에 더 관심을 기울입니다. 격구는 말을 타고 공을 치는 놀이로, 고려 때 성행하던 것이었습니다. 실록에는 태조가 젊었을 때 격구를 잘 했다며 이에 대해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고려 때 단오절(端
2002.03.06 10:09:00
조선왕조실록과 놀다 <64>
경연을 중시한 임금
경연을 중시한 임금새로 임금이 된 정종에게는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임금의 공부인 경연(經筵)입니다. 부실한 정종 시대의 실록에 경연 관련 기사는 상당히 많은 것입니다.경연은 임금의 주요 덕목 가운데 하나입니다. 먼저 임금인 태조
2002.03.05 10:15:00
조선왕조실록과 놀다 <63>
한씨와 강씨의 뒤바뀐 신세
왕실의 상황도 바뀌었습니다. 불과 사나흘 전 덕빈으로 봉해진 정종의 부인 김씨는 정종의 즉위 당일 덕비(德妃)로 올려 봉해지고, 11월 18일에는 정식으로 책(冊), 보(寶)를 받았습니다. 봉책사(奉冊使)는 좌정승 조준, 부사는 문하부 참찬 이거이였습니다.그동안 소외됐던
2002.03.04 09:54:00
조선왕조실록과 놀다 <62>
쿠테타 세력 요직을 독차지
조선의 두 번째 임금으로 오른 정종은 즉시 쿠데타의 주역인 아우 이방원에게 인사권을 맡은 상서사의 판사를 겸하도록 했습니다. 이방원은 이듬해 2월까지 이 직책을 겸했습니다. 이방원의 장인 민제(閔霽)는 삼사 우복야, 이방원의 동서 조박(趙璞)은 겸 대사헌, 사돈 이거
2002.03.02 10:36:00
조선왕조실록과 놀다 <61>
정종 왕위에 오르다
쿠데타 세력은 그날로 반대파인 상산군 강계권, 순녕군 이지, 보성군(寶城君) 오몽을, 중추원 지사 정신의, 대장군 강택(康澤), 정도전의 아들 정진과 그 지지 세력들을 순군부 옥에 가두었습니다. 전 첨절제사 조사의, 삼사 우복야 이염, 완성군(完城君) 이백유, 이조 의랑
2002.02.28 10:09:00
조선왕조실록과 놀다 <60>
아비와 아우를 몰아내다 ⑤
이방원이 군기시 직장(直長) 김겸(金謙)을 시켜 무기고를 열고 갑옷과 창을 꺼내 화통군 1백여 명에게 주니, 군대의 형세가 조금 나아졌습니다.갑사 신용봉(申龍鳳)이 대궐에 들어가서 이방원의 말을 전했습니다.“흥안군과 무안군은 각기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의안군 이하
2002.02.27 10:06:00
조선왕조실록과 놀다 <59>
아비와 아우를 몰아내다 ④
아비와 아우를 몰아내다 이튿날 닭이 울 무렵 임금이 노석주를 안으로 부르고, 동틀 무렵 다시 이문화를 불렀습니다. 이문화가 서쪽 대청으로 가니, 세자와 이방번․이제․이화․이양우․심종과 중추부 재상인 장사길․장담․정신의 등이 모두
2002.02.26 10: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