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9년 2월 임금은 참찬 이거이가 선영(先塋)에 성묘를 가겠다고 청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아 개성에 있는 어머니 한씨의 묘인 제릉에 가서 직접 제사지내려 했습니다. 행차를 움직이려 하니, 문하부에서 글을 올려 말렸습니다.
“전하께서 제릉에 직접 제사하고자 하시니, 효성이 지극하십니다. 그러나 임금이 선조를 받드는 도리는 봄 가을로 조상의 사당을 수리하고 철따라 제물을 올리는 것뿐입니다. 이 행차를 멈추소서.”
임금이 윤허하지 않자 낭사에서 대궐 뜰에 나와 두 번 세 번 청했지만, 임금은 태상왕에게 가 알리고는 개성으로 갔습니다. 임금은 도중에 노루를 잡자 사람을 보내 태상왕에게 달려가 바치게 했습니다.
개성에 도착한 임금은 수창궁 북쪽 동산에 올라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전 왕조 태조의 지혜로 여기에 도읍을 세운 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었겠는가?”
결국 개성으로 도읍을 옮길 뜻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임금은 한식(寒食)을 맞아 직접 제릉에 제사지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때에 중들을 시켜 재궁(齋宮)을 수리하고 있었는데, 임금이 말했습니다.
“올해는 마침 흉년이니, 잠시 이 공사를 중지하도록 하라.”
임금이 개성에 가 있는 동안 까마귀 떼가 궁성 주변 곳곳에 모여 울었습니다. 어느 날은 전각 위를 날며 울고, 어느 날은 궁성 북쪽 소나무에 모여 울었으며, 경복궁 주위를 빙빙 돌며 날기도 했습니다. 까치가 근정전 모서리에 집을 짓기도 했습니다.
서울로 돌아온 임금은 종친과 공신을 모아 도읍 옮기는 문제를 의논했습니다. 서운관에서는 이런 재이(災異)가 거듭 나타나니 반성해 변고를 없애야 하며 또 피방(避方)해야 한다고 건의했습니다.
임금은 종친과 좌정승 조준 등 재상들을 모두 불러 서운관에서 올린 글을 보이고 피방해야 할지 여부를 물었습니다. 모두 피방해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임금이 어느 방향으로 피방해야 할지를 물으니, 대답했습니다.
“경기 안의 고을에는 각급 신하와 숙위(宿衛)하는 군사가 의탁할 곳이 없지만, 개성은 궁궐과 신하들의 집이 모두 완전합니다.”
결국 개성으로 돌아가기로 의논을 정했습니다.
당초 도성 사람들은 모두 옛 도읍을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환도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 서로 기뻐해 손에 손을 잡고 이고 지고 해서 길에 연락부절하니, 성문을 지켜 이를 막도록 했습니다. 까치는 여전히 근정전 꼭대기며 종루(鐘樓) 모서리에 집을 지었습니다.
3월 7일 결국 개성으로 환도(還都)했습니다. 공 후는 모두 따라가고, 각 부서에서는 절반씩만 따라갔습니다.
태상왕이 행차를 움직이니, 회안군 이방간과 각 부서의 관원 한 사람씩이 따랐습니다. 태상왕은 강씨의 능인 정릉(貞陵)을 지나면서 두루 살펴보고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했습니다.
“당초 한양으로 옮긴 것은 오로지 내 뜻만이 아니었고, 나라 사람들과 의논한 것이었다.”
그러고는 눈물을 감추고 떠나갔습니다. 태상왕은 이튿날 새벽에 먼저 개성에 들어가 변안열의 옛집으로 갔습니다. 임금은 개성으로 가는 도중에 노루와 꿩을 얻으면 곧 태상왕에게 달려가 드리게 했으며, 개성에 도착해 태상왕에게 가서 의장과 시위를 동구(洞口)에 머무르게 하고 몇 필만 이끌고 들어가 뵌 뒤 수창궁으로 돌아갔습니다.
4월 들어서 임금은 의안공 이화를 새 도읍에 보내 종묘에 제사하게 하고, 예조를 불러 말했습니다.
“제릉의 제사도 종묘 제사 의식대로 하라.”
예조에서 아뢰었습니다.
“능(陵)에 제사하는 것은 옛 제도가 아닙니다. 우제(虞祭)를 지내 신명을 편안하게 하고 죽은 뒤에 섬기기를 생존했을 때에 섬기듯이 하면 효도는 지극한 것입니다. 신의왕후는 비록 종묘에 함께 모시지는 않았으나, 이미 따로 사당을 세우고 사철 제사를 올리고 있으니 능에 제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윤허하지 않고, 다만 제물만 없애도록 했습니다.
몇 달 지나 임금은 좌우에게 개성에 종묘 세우는 문제를 물었습니다.
“지금 과인은 옛 서울에 있고 종묘는 새 도읍에 있으니, 참으로 옳지 못하다. 종묘를 옮겨 내가 직접 제사를 받들고자 하는데, 어떤가?”
문하부 참찬 이거이가 대답했습니다.
“태상왕께서 창업하시고 한양에 도읍을 정하셔서 종묘 궁실이 모두 그곳에 있는데, 지금 옮기고자 하시니 실로 이어가는 도리가 아닙니다. 매번 대신을 보내 대행케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경의 말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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