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닭이 울 무렵 임금이 노석주를 안으로 부르고, 동틀 무렵 다시 이문화를 불렀습니다. 이문화가 서쪽 대청으로 가니, 세자와 이방번, 이제, 이화, 이양우, 심종과 중추부 재상인 장사길, 장담, 정신의 등이 모두 벌써 들어와 있었습니다.
여러 군(君)과 중추부 재상, 각급 내시들로부터 아래로 대궐 종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갑옷을 입고 칼을 찼는데, 내시 조순과 승지 김육, 노석주, 변중량만 갑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노석주가 이문화에게 교서를 지으라는 왕명을 전했습니다. 이문화가 쓰지 않겠다고 하니, 노석주가 말했습니다.
"한산군이 지은 「주삼원수교서(誅三元帥敎書)」의 뜻을 모방해 지으면 될 것입니다."
"그대가 아시오?"
"한때 적을 부순 공로는 있지만 임금을 무시한 마음은 만세에 용서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지금 죄인의 괴수는 누구요?"
"죄인의 괴수는 다시 임금께 여쭐 테니 먼저 초안부터 잡으시오."
급히 독촉하니, 이문화가 붓을 잡고 말했습니다.
"그대도 글을 지을 줄 아니, 직접 들은 내용으로 지으면 내가 받아쓰겠소."
그러자 노석주가 글을 지었습니다.
"아무개 등이 몰래 반역을 도모해 개국 원훈을 해치고자 했는데, 아무개 등이 그 계획을 누설시킴에 따라 모두 잡혀 죽었다. 억지로 따른 무리들은 모두 용서하고 죄를 묻지 않겠다."
초안이 만들어지자 노석주가 초안을 가지고 들어가 보고했습니다. 임금은 두 정승이 오면 의논하고 반포하라고 말했습니다.
조금 후에 도당에서 백관을 거느리고 임금에게 아뢰었습니다.
"정도전, 남은, 심효생 등이 작당하고 몰래 모의해 우리 종친 원훈을 해치고 나라를 어지럽히려 했는데, 신들은 일이 급박해 미처 아뢰지 못하고 이미 베어 없앴습니다. 원컨대 성상께서는 놀라지 마소서."
이제가 그때 임금 곁에 있다가 임금에게 아뢰었습니다.
"왕자들이 군사를 일으켜 함께 남은 등을 베었으니, 화(禍)가 장차 신에게 미칠 것입니다. 호위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치도록 허락하소서."
임금이 말했습니다.
"걱정 말아라. 화가 어찌 너에게 미치겠느냐?"
이화도 말리며 말했습니다.
"내부 문제니 서로 싸울 것 없네."
이제는 칼을 빼어 몇 번 노려보았으나, 이화는 느긋하게 앉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때 이방과는 임금을 위해 병을 빌어 소격전에서 재계를 드리고 있었는데, 변고가 났다는 말을 듣고는 몰래 종 하나를 거느리고 줄에 매달려 성을 나와 걸어서 풍양(豊壤)에 가 김인귀(金仁貴)의 집에 숨어 있었습니다. 이방원이 사람을 시켜 그를 찾고 궁성 남문 밖에 나가 맞았습니다. 해가 기울어질 무렵이었습니다.
이때 사람들이 모두 임금에게 청해 이방원을 세자로 삼으려 했다고 합니다. 이방원이 굳이 사양하면서 이방과를 세자로 삼기를 청하니, 이방과가 말했습니다.
"당초 의(義)를 세워 나라를 열고 오늘날까지 이른 것은 모두 정안군의 공로다. 나는 세자가 될 수 없다."
이방원이 더욱 단호하게 사양하면서 말했습니다.
"나라의 근본을 안정시키려면 적장자(嫡長子)가 이어야 합니다."
이방과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맡아 처리해야겠구나."
이에 이방원이 도당으로 하여금 백관을 거느리고 글을 올리게 했습니다.
"맏이로 적통(嫡統)을 세우는 것은 만세의 일반적인 도리입니다. 전하께서 맏이를 버리고 어린 아들을 세우시니 정도전 등이 세자를 끼고 왕자들을 해치려 해서 화가 불측한 상황이었으나, 다행히 천지와 종묘 사직의 신령에 힘입어 난신(亂臣)을 베었습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적장자인 영안군을 세워 세자로 삼으소서."
글이 올라가 이문화가 읽기를 마쳤는데, 세자도 곁에 있었습니다. 임금이 한참 만에 말했습니다.
"모두 내 아들이다. 안 될 까닭이 있겠느냐?"
이방석을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네게는 편하게 됐다."
임금이 즉시 윤허를 내렸습니다. 대궐 안에 있던 정승들이 무슨 일인가 물으니, 이문화가 세자를 바꾼다고 대답했습니다.
노석주가 교서 초안을 봉해 이문화더러 서명하라 하니, 이문화가 받지 않았습니다. 다음에 이화에게 청했으나 역시 받지 않았고, 다음에 자리에 있던 여러 재상들에게 청했지만 모두 받지 않았습니다. 이문화가 말했습니다.
"그대가 지은 교서인데, 왜 스스로 서명하지 않으시오?"
노석주가 좋다고 말하고는 서명하고 소매 속에 넣었습니다. 조금 후에 노석주가 안에 들어가 명령을 받고 나와 말했습니다.
"교서를 고쳐 써서 빨리 내리라십니다."
이문화가 어떻게 고치느냐고 말하자, 노석주가 말했습니다.
"개국공신 정도전과 남은 등이 몰래 반역을 도모해 왕자와 종실들을 해치려고 꾀하다가 지금 그 계획이 누설됐고, 공이 죄를 가리지 못해 이미 모두 주륙됐다. 억지로 따른 무리들은 죄를 다스리지 말라."
변중량으로 하여금 이를 써서 올리게 했습니다. 임금이 시녀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 서명하고 도로 누웠는데, 병이 심해져 토하려다가 토하지 못하고 말했습니다.
"뭐가 목구멍에 끼인 듯한데 내려가지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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