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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과 놀다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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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과 놀다 <63>

한씨와 강씨의 뒤바뀐 신세

왕실의 상황도 바뀌었습니다. 불과 사나흘 전 덕빈으로 봉해진 정종의 부인 김씨는 정종의 즉위 당일 덕비(德妃)로 올려 봉해지고, 11월 18일에는 정식으로 책(冊), 보(寶)를 받았습니다. 봉책사(奉冊使)는 좌정승 조준, 부사는 문하부 참찬 이거이였습니다.

그동안 소외됐던 태조의 전처 한씨는 그 소생이 임금 자리에 오르면서 '복권(復權)'됐습니다. 임금은 어머니인 절비 한씨를 신의왕후로 추존(追尊)하고 우정승 김사형을 봉책사, 정당문학 하윤을 부사(副使)로 삼아 별전(別殿)에 모신 뒤 인소전(仁昭殿)이라 이름했습니다. 인소전에 신의왕후의 새 초상화를 봉안하고, 임금이 직접 거둥해 제사지냈습니다.

임금은 아우들도 포상했습니다. 이방의, 이방간, 이방원 등 세 아우는 개국한 공을 추가로 기록해 1등공신 조준과 같이 포상케 했습니다.

"세 아우들이 앞장서 대의를 부르짖어 나라를 세우고 왕업을 창건했으니, 그 공이 매우 커서 황하가 띠처럼 좁아지고 태산이 숫돌처럼 작아져도 잊을 수가 없다. 당초에 상왕께서는 친아들이란 점이 걸려 그 공을 기록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르렀지만, 공이 있으면 마땅히 상을 주는 것이 예나 이제나 변함 없는 법이니 과인이 핑계댈 수가 없다."

각기 노비 30 명과 토지 2백 결을 내려주고, 각(閣)을 세워 얼굴을 그리고 비를 세워 공을 기록하게 했습니다.

한편 상왕으로 물러난 태조는 고기 먹기를 거부했습니다. 세자였던 이방석 등이 죽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마침 쫓겨난 세력의 상징적인 구심점이었던 신덕왕후 강씨의 초상화를 정릉으로 옮겨 봉안했는데, 상왕은 임금에게 평소부터 만들려던 흥천사 탑을 완성하라는 명령을 전합니다. 흥천사는 강씨의 능인 정릉에 세운 절이지요.

상왕은 곧 북쪽 양정(凉亭)으로 옮겨 거처했습니다. 쿠데타 한 달쯤 뒤인 10월 11일은 상왕의 생일이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병이 회복돼 임금이 종친들과 공 후를 거느리고 북쪽 양청에서 잔치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상왕은 갇혀 있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이라도 하듯, 사람을 시켜 후원(後園)에서 기르던 들짐승들을 들판에 내놓게 했습니다. 임금은 그런 상왕을 달래려고 연말에 다시 공 후들을 거느리고 상왕에게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실록은 이때 상왕이 매우 즐거워했다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다음날 강씨의 능인 정릉을 지키던 군사 1백 명을 줄여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는 임금이었습니다.

임금이 된 정종은 즉위 전의 첩이었던 유(柳)씨를 후궁으로 맞아들였습니다. 유씨는 대사헌 조박의 집안 여동생이었습니다. 일찍이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서 불노(佛奴)라는 아들을 낳고 죽주(竹州)에 살고 있었는데, 이때에 조박이 임금에게 아뢰니 임금이 유씨와 그 아들을 맞이해 집에 두었다가 꾸미고 갖추어 대궐 안에 들어오게 했습니다. 유씨는 가의옹주(嘉懿翁主)로 책봉하고, 그 아들을 원자(元子)라 일컬었습니다.

이숙번이 이방원의 집에 가니, 이방원이 그를 침실 안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이숙번이 말했습니다.

"사직을 안정한 지가 이제 몇 달 되지 않았는데, 조박이 공의 가까운 인척인데도 그 마음이 조금 변했으니 나머지 사람의 마음도 알 수가 없습니다. 공께서는 스스로 편안하게 할 계책을 깊이 생각하셔야 하며, 병비(兵備) 또한 느슨하게 할 수 없습니다."

이방원이 화가 나 말했습니다.
"그대들이 부귀가 모자라 그런 말을 하는가?"

이숙번이 대답했습니다.
"부귀가 모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몇몇 수하들이 목숨을 돌아보지 않고 사직을 갑작스레 안정시키는 일을 도운 것은 공을 임금으로 추대하고자 해서였을 따름입니다. 지금 원자라 일컫는 사람이 궁중에 들어와 있으나, 우리가 감히 알 바는 아닙니다. 공께서 제 말을 듣지 않으신다면 틀림없이 후회하실 것입니다. 저야 필부(匹夫)일 뿐이니 머리를 깎고 도망칠 수도 있지만, 공은 귀하신 몸으로 장차 어떻게 대처하시겠습니까?"

이방원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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