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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과 놀다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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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과 놀다 <61>

정종 왕위에 오르다

쿠데타 세력은 그날로 반대파인 상산군 강계권, 순녕군 이지, 보성군(寶城君) 오몽을, 중추원 지사 정신의, 대장군 강택(康澤), 정도전의 아들 정진과 그 지지 세력들을 순군부 옥에 가두었습니다. 전 첨절제사 조사의, 삼사 우복야 이염, 완성군(完城君) 이백유, 이조 의랑 이조(李조)도 순군부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고는 즉시 이들을 수군에 편입시키거나 귀양보냈으며, 일부는 방면했습니다.

<표>

며칠 뒤 교서감(校書監) 유두명과 교서감 승(丞) 장윤화(張允和)를 순군부 옥에 가두었다가 용서해주었습니다. 이때 이염도 함께 풀려났습니다.

그러나 당초 사면 대상이었던 내시 김사행은 목베어 삼군부 문에 매달게 했습니다. 김사행이 교묘한 생각으로 궁실을 지어 임금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데만 힘썼다는 것입니다. 그는 고려 때에도 영전(影殿) 공사로 공민왕을 그르쳤는데, 건국 초에 다시 총애를 입어 벼슬이 가락백 겸 도평의사사 판사에 이르렀으며 대궐을 드나들면서 늘 견여(肩輿)를 타고 다녔습니다.

그가 죽는 날 사람들이 모두 통쾌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김사행과 함께 공사를 맡아 지나치게 정교한 것에 힘써 백성의 힘을 피폐케 한 문하부 상의 김주도 영주(寧州, 천안)로 귀양보냈습니다.

임금은 사건이 터진 뒤 며칠 후 서쪽 침실로 옮겨 거처하면서 병에 조금 차도가 있었습니다. 임금은 수정포도(水精葡萄)가 먹고 싶어 조순에게 지시해 세자와 왕자들에게 명령을 전했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계시지 않아 초상화를 그려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내가 비록 쇠약하나 아직 숨이 붙어 있으니 너희들은 다행한 편이다. 지금 병이 오래 낫지 않아 수정포도를 먹고 싶다.”

세자와 왕자들이 모두 소리내어 울면서 즉시 상림원(上林園) 사(史) 한간(韓幹)에게 지시해 유후사와 기내(畿內) 좌도(左道)에 널리 포도를 구했습니다. 경력 김정준(金廷雋)이 서리를 맞아 반쯤 익은 산포도 한 상자를 가지고 와서 바치니, 임금이 크게 기뻐했습니다.

김정준을 즉시 전농시 판사로 승진 임명했습니다. 한간도 수정포도를 구해다 바치니, 임금이 매우 기뻐하며 쌀 10 섬을 내려주었습니다. 임금은 목이 마를 때마다 한두 개씩 맛보았고, 이때부터 병이 회복되었습니다.

임금의 아들들이 공(公)으로 봉해져 정치 전면에 나섰으며, 종친들은 후(侯), 정1품은 백(伯)으로 삼았습니다. 세자의 동생들인 이방의(李芳毅), 이방간(李芳幹), 이방원(李芳遠)은 각각 익안공(益安公), 회안공(懷安公), 정안공(靖安公)이 돼 중군, 좌군, 우군 절제사로 군권을 맡았고, 태조의 서제 이화(李和)는 의안공(義安公)에 문하부 판사 겸 의흥삼군부 영사가 됐습니다.

태조의 장손(이방우의 아들) 이복근(李福根)은 봉녕후(奉寧侯), 태조의 사촌 이양우(李良祐)는 영안후(寧安侯), 태조의 사위 이백경(李伯卿)은 상당후(上黨侯), 역시 사위인 심종(沈淙)은 청원후(靑原侯)로 봉해졌습니다.

신하들로는 삼사 영사 심덕부(沈德符)가 청성백(靑城伯), 좌정승 조준(趙浚)은 평양백(平壤伯), 우정승 김사형(金士衡)은 상락백(上洛伯), 권중화(權仲和)는 예천백(醴泉伯)에 봉해졌습니다. 성석린(成石璘), 이지란(李之蘭)은 문하부 시랑찬성사로 두 정승과 함께 정부를 이끌게 됐고, 이지란, 이무(李茂), 장사길(張思吉)은 문하부의 고위직을 겸하면서 3 군의 절제사를 나누어 맡았습니다.

세자는 태조가 비운 동쪽 침실로 들어갔으며, 세자비 김(金)씨는 덕빈(德嬪)으로 봉해졌습니다. 임금 자리를 이어받기 위한 절차였습니다.

실록은 어디까지나 태조가 스스로 왕위를 내놓은 것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9월 5일, 태조는 도승지 이문화에게 이렇게 일렀다고 합니다.

“내가 병에 걸려 오랫동안 정사를 듣지 못했는데, 하루에도 만 가지 일이 생기니 어찌 그만둘 수 있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니 병이 더욱 깊어진다. 지금 세자에게 왕위를 전해준 뒤 마음을 편안히 먹고 병을 치료해 여생을 연장하려 하니, 네가 문신에게 지시해 교서를 지어 바치게 하라.”

이문화는 즉시 이조 전서 이첨으로 하여금 교서를 지어 바치게 했습니다. 그러고는 삼사 영사 심덕부를 시켜 종묘에 고하고 또 삼사 판사 설장수와 예조 전서 김을상을 중국에 보내 보고토록 했습니다.

임금이 측근 내시로 하여금 부축해 일으키게 하고 세자를 불렀습니다. 세자가 공복(公服)을 갖추어 입고 임금 앞에 나아가 땅에 엎드렸습니다. 임금이 직접 교서를 주니, 세자가 받아 품속에 넣었습니다. 다음에 두 정승을 부르니, 또한 공복을 갖추어 입고 들어왔습니다. 임금이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 세자에게 왕위를 전해주니, 경들은 힘을 다해 정치를 도와서 대업(大業)을 무너뜨리지 말도록 하라.”
그러고는 옥새를 주었습니다.

다음에는 이문화에게 지시해 세자를 모시고 나오도록 했습니다. 두 정승이 옥새를 받들어 앞에서 인도하고 이문화가 세자를 모시고 근정전에 이르렀습니다. 세자가 강사포와 원유관으로 바꾸어 입고 왕위에 올라 백관의 하례를 받았습니다. 이름을 경(경)으로 고쳤습니다.

면류관과 예복 차림으로 백관을 거느리고 부왕(父王)에게 상왕(上王)이라는 존호(尊號)를 올렸으며, 백관을 거느리고 절하면서 하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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