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2일 15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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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vs 연세대…제중원 '뿌리 논쟁'의 진실은?
[근대 의료의 풍경·39] 제중원의 퇴장
1895년 6월과 1902년 11월(신문 보도만 있을 뿐 정부 기록은 없어 확실치는 않다), 정부는 제중원의 환수를 시도했지만 실제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1905년 4월 한국 주재 일본 공사관의 거중 조정으로 제중원은 10년 7개월 만에 대한제국 정부로 환수되었다(제24
황상익 서울대학교 교수
서울역 앞 세브란스병원 탄생의 비밀은?
[근대 의료의 풍경·38] 제중원 운영권 ④
헤론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털어놓았다(제5회). "정부 병원(제중원) 일을 가능하면 오래 잘하려고 합니다만, 우리 자신의 병원이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정부 병원에서보다 환자들을 더 잘 보살필 수 있고 기독교에 대한 교육
<제중원> 운영권, 에비슨에게 넘어가다
[근대 의료의 풍경37] 제중원 운영권 ③
에비슨이 제중원 의사직을 사임하겠다며 제시한 이유들에 대해, 외아문은 1894년 5월 22일자 공문으로 조선 정부가 취한 조치들을 설명했고, 다만 에비슨이 사용해온 사택은 원래 육영공원 소관이므로 속히 비워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미국 공사는 바로 다음 날인 5월
<제중원> 에비슨의 사표…진짜 이유는?
[근대 의료의 풍경·36] 제중원 운영권 ②
1893년 11월 1일부터 제중원 의사로 근무를 시작한 에비슨은 전임자 빈튼의 태만과 불성실로 2년 반 가량 제 구실을 못했던 제중원을 되살리기 위해 힘껏 노력했다. <기독신보> 1932년 4월 6일자 "에비슨 박사 소전"(12)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미국 vs 영국…<제중원> 운영을 둘러싼 막후 경쟁
[근대 의료의 풍경·35] 제중원 운영권 ①
제중원에 관한 논의의 마지막으로, 제중원 운영권이 에비슨(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에게 이관되고 제중원이 다시 대한제국 정부로 환수(반환)되는 과정을 몇 차례에 걸쳐 살펴보자. 1885년 6월 조선에 와서 5년 남짓 제중원에서 일한 헤론이 1890년 7월 26일 서른넷의 아까운
"아이를 먹는 의사"…유언비어 속에 진실이 있었다
[근대 의료의 풍경·34] 영아 소동
1888년 6월 18일 조선 주재 미국 공사 딘스모어(Hugh A Dinsmore)는 외아문 독판 조병식(趙秉式)에게 공문을 보냈다. "외국인들이 조선의 어린아이들을 잡아다 삶아 먹고 쪄 먹는다는 헛소문이 갑자기 생겼는데, 조선 정부에서 방(榜)을 만들어 한성 각처와 지방(城外)에 게
공포 영화 뺨치는 <제중원>…"내 손가락은 어디에?"
[근대 의료의 풍경·33] <제중원> 보고서 ⑨
생식기 질병으로 제중원에 입원한 환자 8명은 모두 남자로, 그 가운데 4명(평균 나이 20.8세)은 포경, 2명(30, 32세)은 생식기 부위의 부종, 2명(43, 45세)은 음경상피종양을 가지고 있었다.
<제중원>의 성병 환자…원인은 동성애 탓?
[근대 의료의 풍경·32] <제중원> 보고서 ⑧
지난 회에 이어 <조선 정부 병원 제1차년도 보고서>에 기록되어 있는 입원 환자들의 구체적인 치료에 대해 질병 별로 살펴보도록 하자. 종기로 입원한 환자 26명 가운데 20, 30대가 20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평균 나이는 31.9세였다. 여자 환자는 2명뿐이었다. 종
제중원 1년…입원 환자 265명, 사망 환자는?
[근대 의료의 풍경·31] <제중원> 보고서 ⑦
265명. 개원 첫 1년 동안 제중원에 입원했던 환자의 수이다. 이제 이 265명을 통해 제중원의 보다 내밀한 속살에 접근해 보자. 그리 많은 환자 수는 아니지만 1880년대의 우리나라 병원 기록으로 질병과 치료 등에 관해 이만큼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종기와의 전쟁…고약 vs 메스, 승자는?
[근대 의료의 풍경·30] <제중원> 보고서 ⑥
<조선 정부 병원 제1차년도 보고서>(15쪽)에는 외래에서 시행한 수술에 관한 기록이 있다. 그것을 시술 건수 순서대로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