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2일 0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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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의 규칙은 누가 만들었나?
[근대 의료의 풍경·9] 제중원 규칙
지난회(제8회)에서 제중원 설립을 위한 외아문의 준비 작업은 일단 1885년 4월 3일로 마무리되었으며, 그 준비 과정에서 병원 규칙이 마련되었다고 했다. 이번 회에서는 제중원의 운영과 성격을 잘 보여주는 <제중원 규칙>에 대해 상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황상익 서울대학교 교수
<제중원>, 고종은 왜 미국을 선택했나?
[근대 의료의 풍경·8] 제중원의 탄생
제중원 설립에 우연적인 요소가 없지 않았지만 서양식 의료 기관을 세우려는 조선 정부, 특히 국왕의 의지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러한 점을 여러 대목에서 읽을 수 있는데, 우선 국왕은 묄렌도르프에게 서양식 병원과 의학교 설립 계획을 세울 것을 지시했다. 1884년 여름,
"인민을 위한 '우리' 병원 없는 것은 수치였는데…"
[근대 의료의 풍경·7] 의학교의 설립
한국에 사는 한국인만의 배타적, 폐쇄적 역사가 아니다. 한국이라는 지리적, 역사적, 문화적 공간에서 한국인뿐 아니라(물론 한국인 자체도 복잡다단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여러 민족과 인종이 어울려서 삶의 다채로운 모습들을 연출해온 것이 바로 한국사이고, 19세기 후
'스타' 알렌 없었다면 <제중원>도 없었다?
[근대 의료의 풍경·6] 알렌과 갑신정변
한국 근대사는 수많은 사건으로 점철되어 있지만(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닐 터이다), 그 가운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갑신쿠데타(갑신정변)이다. 3일 만에 실패로 돌아가 "삼일천하"라고도 부르는 이 사건으로 조선의 국내외적 정치 지형도가 크게 바뀌었을 뿐 아니라
'제중원'의 진짜 정체는 무엇인가?
[근대 의료의 풍경·5] 국립병원 제중원
지난 회에서 살펴보았듯이, 제중원이 세워지기 전에 이미 조선에는 근대 서양 의술을 시술하는 병원과 의사가 여럿 있었다. 그런데도 오늘날 우리들은 어째서 일본인들이 운영하던 그 병원들이 아니라 제중원을 최초의 근대 서양식 병원으로 꼽는 것일까?
日 의사들…제국의 첨병 혹은 조선의 친구?
[근대 의료의 풍경·4] 제국의 의사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서양식 병원은 무엇일까? 아마 대부분 1885년 4월 서울(당시 한성)에 세워진 제중원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질문을 조금 바꾸어, 그 성격이 어떠하든 간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근대 서양 의술을 시술한 의료 기관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대답
친일파 의사들의 생존법…"학도여 성전에 나서라!"
[근대 의료의 풍경·3] 친일 의사 17인의 행적
역사에는 밝고 어두운 면,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모습이 섞여 있게 마련이다.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고 연구하여 본보기로 세우는 일은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의 한 가지 역할일 것이다. 하지만 도가 지나쳐서 미화와 우상화에 이르면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개인, 집단, 국가와
이토 히로부미 추도한 지석영의 속내는…
[근대 의료의 풍경·2] 지석영의 두 얼굴
많은 사람들이 20일 가까이 텔레비전 앞에서 열광하였다. 나 역시 이름도 몰랐던 이상화의 눈물에 콧등이 시큰거렸고, 김연아가 연기를 끝냈을 때는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메달을 딴 한국 선수들만이 아니라 (얄미운 언행을 보인 몇몇을 제외하고는) 국적과
1919년 3월 1일, 의대생도 '만세'를 불렀을까?
[근대 의료의 풍경·1] 3·1운동 91돌을 맞으며
오늘은 3·1운동 91돌을 맞는 날이다. 3·1운동은 우리 근대 민족 운동사의 분수령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 피압박 민족 해방 운동의 한 가지 원류가 되었다는 데에는 다른 견해가 거의 없는 듯하다. 나는 3·1운동의 가장 큰 역사적 의의는 그것이 근대 한국의 출발점이며 또